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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3. 2021

어떤 배려

-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3


만물의 영장이란..?!!






   참새 한 미리가 빵을 쪼아 먹고 있는 이곳은 남미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꼬자이께(Coyhaique)라는 도시이다. 인구 6만 명이 채 안 되는 이 도시는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니와 나는 이 낯선 도시에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한 달을 머문 이유는 어느 날 졸지에 내게 찾아온 불행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 밖의 허리병으로 한 달을 고생한 것이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허리가 온전해진 이후 중부 파타고니아 끝까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오게 됐다. 그리고 남부 파타고니아로 떠나기 위해 꼬자이께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비가 꽤 많이 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는 별리 여행으로 내린 하늘의 슬픔 때문이랄까.. 여행자들은 대체로 한 번 들른 곳을 두 번 다시 들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무심코 지나친 기적의 도시가 두 번 다시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할 줄 누가 알았으랴. 서기 2021년 12월 13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의 그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참새 한 마리가 빵을 쪼아 먹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챙겨둔 귀한 장면이다. 그녀와 함께 비 오시는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 주변을 오락가락하다가 한 여성이 종이 봉지를 나무 밑에 두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궁금했다. 그 나무에는 비를 맞으며 짹짹거리고 있는 참새 무리가 있었다. 그때 한 마리의 참새가 날아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봉지 속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오물오물.. 녀석이 먹고 있는 건 빵이었다. 한 여성이 참새들을 위해 빵을 건넨 것이다. 빵은 아직도 온기가 남은 듯 황금빛이 감돌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장면은 이런 때가 아닐까..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말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먹거리로 보이거나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면.. 그건 조물주를 심히 걱정 끼치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영성을 지닌 개체라고 자부한다면 세상 만물을 조물주 보듯 해야 할 게 아닌가.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깃든 곳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다. 빵 한 조각은 물론 참새와 한 여인과 세상 만물에..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Coyhaique Patagonia CILE
il 13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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