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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8. 2021

누구나 한 번쯤 꿈꾸게 된다

-우리 동네 바를레타의 12월 풍경


누구나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서기 2021년 12월 17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앙증맞은 승합차 한 대가 빨간색 립스틱 바르고 조용히 서있었다. 빨간 색과 하얀색의 조합.. 이탈리아에 살면서부터 이와 비슷한 외양을 가진 차들은 잠시 후 신랑 신부가 허니문을 떠날 때 사용되는 것이라는 걸 학습했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Side-view mirror)에 아름다운 꽃장식을 한 자동차가 교회(성당) 앞에 서 있으면 곧 결혼식 미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사흘 전(수요일)의 일이다. 하니의 그림 수업을 마치고 이곳 바를레타 재래시장(Mercato di San Nicola)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밌는 풍경을 맞딱 뜨렷다.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동차 내외부를 살폈다. 아마도 그녀뿐만 아니라 혼인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이런 풍경 앞에서 마음이 설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이런 풍경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설렘 설렘.. 신랑 신부는 결혼 서약이 끝날 때까지 생애 최고로 긴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두 사람만 함께 있고 싶을 거라는.. 오죽하면 라틴어 명언에 "사랑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을까..



나도 그녀와 함께 앙증맞은 차량 곳곳을 들여다보며 잠시 후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들은 미사가 끝나는 직후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고 허니문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며 하객들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단다. 달콤한 신혼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미쳐갈 것이다. 어쩌면 미리 미쳐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달콤한 신혼이 시작된 어느 날 그들 앞에 둘의 모습을 섞어둔 아이들이 하나 혹은 둘셋.. 신혼의 환상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현실 직시..



누구 아빠는 돈도 잘 벌고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던데.. 당신은 뭥미?! 이때부터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는 여자 사람은 남자 사람을 출세가도를 달리게 하는가 하면 티격태격.. 이웃과 비교가 심화되면서 성격차이를 말하게 된다. 될 수도 있다. 최초 사랑에 미친 사람들이 슬슬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본전 생각.. 이런 거 때문에 영화 타이타닉의 시놉시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도박에서 딴 티켓으로 당신을 만난 거야"



딴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당신만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라고 힘주어 말할 때.. 두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일까.. 애당초 좋은 것만 취했던 둘 사이는 어느 땐가부터 방귀를 터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된다. 방귀는 용서가 된다. 거울 앞에서 지내는 시간을 볼 수 없게 되자 그녀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그냥 생얼이 아니다. 마음까지 앙칼지게 변한 그녀는 바가지를 하프 켜듯할 것이다. 그 남자가 잠자리에서 등을 돌린 지 꽤 오래됐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누가 그럴 줄 알았는가.. 돌리도 돌려달라고 내 청춘.. 그땐 이미 지천명의 세월을 보냈다.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간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때 들여다본 자동차 속 모습에 결혼식 마시가 치러질 교회의 울타리가 비쳤다. 창살 없는 감옥.. 그 시작이 곱게 단장한 작은 승합차에 드리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미쳤던 두 사람의 미래는 전혀 다른 꽃을 피우기도 한다. 알콩 달콩..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대어난 사람이라며 앵무새처럼 입을 맞추고 어디를 가나 밀착된 모습을 보인다. 그 틈새를 채운 어린 녀석의 표정도 흐뭇하고 예쁘다. 꼭 깨물어주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바를레타 사람들의 모습이 주로 그러했다. 잠시 사랑에 미친 두 사람의 어두운 면을 보다가 다시금 밝은 면을 보니 그곳에 신세계가 깃든 것이다. 사랑의 묘약..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게 되지만 아무에게나 해당되지 않는 게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일까..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줄거리 속에는 묘약으로 가장한 가짜 포도주가 등장한다. 약으로 살 수 없는 행복.. 진짜 사랑의 묘약은 따로 있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인간 세상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미쳐 날뛴 사랑도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행복이 오랫동안 지속될 떼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음과 양 혹은 빛과 그림자..



요즘 일주일에 세 번 이어지고 있는 하니의 그림 수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흑과 백 혹은 빛과 그림자이다. 소묘 대상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까르본치노(Carboncino, 목탄)가 대상의 밝고 어두운 부분을 잘 표현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최초 평면이었던 대상에 생명이 더해지는 것이랄까..



예컨대 누드 그림이 살이 포동포동한 입체적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예쁘장한 차량 한 대를 앞에 두고 단상이 길어졌다. 두 사람이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려면 소묘의 기술처럼 빛과 그림자의 역할이 교차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묘약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데서 흘린 눈물이 만든 아름다운 신의 그림자인 셈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신의 간섭이 사랑에 미친 당신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 줄 게 틀림없다. 휴대폰에 담긴 일상의 기록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휴대폰에 담긴 일상의 기록



서기 2020년 10월 23일 스위스 루체른 호수 곁에서 코로나를 피해 하니와 별리 여행을 앞두고


서기 2021년 11월 1일, 그림 수업을 위해 그녀가 깐띠나 델라 스퓌다(Cantina della sfida)를 지나고 있다.


서기 2021년 12월 2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밤 데이트에서 만난 풍경들


Chiunque può farlo. Ma non si può fare a nessuno_BARLETTA
il 17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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