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5
비경이란 무엇인가..?!
비경(祕境).. 알듯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낱말이다. 하니와 나는 대략 1년 동안 작정하고 떠난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무시로 비경을 만나게 됐다. 지금 펼쳐진 뽀얀 안개에 싸인 비경도 그중 한 장면이다. 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다섯 번째 포스트를 이어간다.
먼저 비경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비경이란 말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 신비로운 경지, 남이 잘 모르는 곳 등을 말한다. 숨길 비(祕) 자를 사용했으므로 숨겨둔 어떤 장면들이 눈에 띄는 즉시 눈동자가 갑자기 커지면서 입을 딱 벌리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지.. 등등 그래서 남들이 잘 모르게 꼭꼭 숨겨둔 것을 비밀이라고 했던가..
뿐만 아니라 특정 조직원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도 있다. 국가의 비밀, 군대의 비밀, 기업의 비밀, 출처불명의 라면 수프의 비밀 등 자칫 비밀이 공개되면, 그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비밀을 취급하는 사람은 그만한 예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지키는 자가 있으면 훔치는 자도 있는 법..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음료회사인 코카콜라(Coca-Cola)의 경우에도 오랫동안 영업비밀을 지켰으나 결국은 제3 국으로 유출되고 말았다. 코카콜라의 영업비밀을 훔친 자는 샤넌 유로 그는 미국 레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에서 고분자 과학 및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미국 시민권자이며, 1992년 5월부터 미국 기업에서 일했다.
그가 훔친 기술을 가격으로 따지면 대략 1억 1,960만 달러(약 1,336억 원)로 알려졌다. 그는 이전 고용주인 코카콜라(Coca-Cola)와 이스트만 케미컬 컴퍼니(Eastman Chemical Company)를 포함해 여러 기업이 소유한 비스페놀-A-프리(Bisphenol-A-free, BPA 프리) 기술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으며, 내부자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례를 보면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이자 사람이 관여하는 비밀은 제한적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수 천 수만수억수십억 년 전의 비밀도 밝혀지는 세상에, 비밀이 설 땅은 매우 좁거나 제한된 것이다. 그런데 비경은 다르다. 비경의 취급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뽀얀 비단 안개에 싸인 비경
서기 2021년 12월 19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남미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있다. 그곳에는 지금 막 조각 작업을 끝낸 듯한 작품들이 줄이어 서 있었다. 내가 꿈꾸는 그곳 이웃분들이나 독자님들은 이런 풍경을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나의 표현에 익숙할 것이다. 신이 하는 일은 주로 이러하다.
당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대자연을 통해 우리가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 그녀는 안데스 기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첫사랑에 실패한 한 여성 페미니스트이자 시인이며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당신의 작품 <예술가의 십계명>을 통해 신의 존재를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구체화한 것이다. 맹목적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세태에서 바이블을 통곡하는 등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세계관과 우주관이 한순간에 바뀌에 됐다. 함축하고 또 압축한 신의 영역 내지 신의 모습은 아랬다.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버스가 꼬자이께(Coyhayque)를 떠나 뿌에르또 이바네스(Puerto Ingeniero Ibáñez)로 달리는 동안 나는 버스 차 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꼬자이께서 이바네스까지 걸리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니는 피곤했던지 나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차 창 밖을 보면서 "유리가 좀 더 깨끗하게 닦여 있었으면.." 싶은 푸념이 생기곤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파사체를 좀 더 아름답게 담고 싶었지만 신의 그림자 앞에서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 길을 두 번째로 이용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중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으로 갈 때 이용했으며, 이번에는 다시 반대의 여정으로 돌아와 루트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첫 번째 이 길을 지나칠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비경이 어느 날 뽀얀 베일을 두르고 나의 뷰파인더를 유혹하고 나선 것이다. 찰나의 순간들.. 그 가운데 비경이 둔탁한 셔터음과 함께 기록되었던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왜 첫 번째 이 길을 지나칠 때는 눈에 띄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니 그때는 날씨가 맑았으며 우리 마음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가 있었다. 최초 파타고니아의 봄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서부터 뿌에르또 몬뜨를 거쳐 오르노삐렌 등을 거치는 동안 비경에 취했던 탓인지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풍경들이 비경을 저울질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초행길의 파타고니아는 신의 영역이자 신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여행자를 위해 감추어둔 선물이었던 셈이다. 나의 사진첩에 기록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들 다수가 신의 그림자가 빼곡하다. 어떤 때는 하찮아 보이는 돌맹이와 나뭇가지와 뿌리까지 또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Coyhaique Patagonia CILE
il 19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