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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4. 2021

나의 동행자 신의 그림자

-우리 동네 바를레타의 12월 풍경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틀 전, 서기 2021년 12월 21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와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대형 슈퍼마켓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앞서 집 앞의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그녀가 작은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공원은 아직도 잎을 떨구지 못한 활엽수들 사이로 소나무와 종려나무가 드문드문 보인다. 



공원은 새파란 잔디와 풀들로 빼곡하다. 풍경을 보면 '12월인가' 싶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의 겨울은 마치 봄이 오시는 듯하다. 우기를 맞이한 이탈리아 남부의 날씨는 한동안 이틀이 멀다 하고 추적추적 비가 오셨다. 바람도 불었다. 썰렁하다 못해 추웠다. 영하의 날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체감 온도는 영하에 머물고 있는 듯 손도 시렸다.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는 날씨.. 



이날은 나의 양력 생일로 생일상차림을 위한 장을 보러 간 것이다. 서울에서 뱅기로 12시간이나 걸려야 닿을 수 있는 먼 나라.. 그곳에서 나의 생일을 챙겨줄 사람이 있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이런 호사를 마다한 때는 꽤 오래되었다. 나의 사정이 작용한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가야 할지도 모를 비밀이 생일상에 묻어난 것이다. 아무튼 나의 생일은 하필이면 성탄절 혹은 성탄 전야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외워둘 필요도 없었다. 언제인가부터 내 가슴속에는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한 분이 각인되어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예수.. 



사람들은 그를 일러 '하느님의 아들' 혹은 '구세주' 등으로 부른다. 불렀다. 당신께서 이 땅에 살아있을 때만도 사람들은 긴가민가 했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이 당신을 골고다 언덕으로 내몰았을까..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전지전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신의 능력을 시험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핍박까지 서슴지 않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며 사도신경(신앙고백)을 읊조리기도 했다. 한 때 내가 다녔던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랬다. 이렇게..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라틴어 원문 (Credo)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ae.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Amen.



어느 날 내게 일어난 이상한 일


이렇게 거창한 신앙고백을 시작으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성경을 통독하고 기도굴에서 주야로 기도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산상기도를 위해 집을 떠나 먼 산중 꼭대기로 향하기도 했다. 도무지 신앙고백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싶은데 도대체 당신께선 어디에 계신지 초신자를 헷갈리게 하시는 것이다. 



기록에 따라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며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도 이해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니..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당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지르며 펑펑 목놓아 울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사내자식이 철야기도를 하거나 새벽기도를 하면서 찌질대는 일이 늘어만 갔다. 찬송을 인도할 때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자 권사님과 전도사님이 손수건을 가져다주면서 함께 울곤 했다. 그분들만 감동을 받은 게 아니었다. 교회 내부는 울음바다가 됐다. 성령님의 감동 감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서서히 '예수쟁이'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예수는 나의 삶 한가운데 있었다. 누군가 이런 풍경을 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운 생각이 들까. 혹 광신자는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괴산의 한 기도원에 계시는 신령하신 목사님을 찾아 나의 달란트에 대해 기도를 했다. 아예 신학교에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모습은 집안에 소문이 파다했다. 전통적으로 유교와 불교가 대세를 이룬 종갓집의 셋째 아들이 형제들로부터 눈밖에 난 풍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장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통성기도로 엉엉 울부짖으며 기도를 했다. 곁에서 보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됐다. 모든 사고방식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나만의 신앙관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1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제야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통과의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내 속에는 자아라는 게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 신의 그람자가 채워졌다. 그게 요즘 우리네 삶을 기록한 잡기장에 자주 등장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의 실체이자 내가 만난 전지전능한 분이셨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내 삶은 온통 기적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 내 곁을 동행했다. 내게 하늘나라가 임한 것일까.. 나의 등 뒤 혹은 앞에서 누군가 나를 당기거나 밀어주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래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재벌도 권력자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 그런 어느 날 그녀와 함께 나의 생일상차림을 위해 우리 동네의 대형마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매우 평범한 풍경.. 그러나 내 앞에는 선홍색 핏빛을 닮은 꽃들이 한눈에 쏙 들어왔다. 이틀 후면.. 빛으로 오신 당신의 생일을 위해 세상 사람들이 축하를 하고 있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흘리신 피로 인류의 해묵은 죄를 말갛게 씻는 의식.. 나는 어느 날부터 매우 자연스럽게 주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진심으로 당신을 생각하며 이렇게..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아멘!



LA PREGHIERA DEL SIGNORE

Padre nostro che sei nei cieli,

sia santificato il tuo nome,

venga il tuo regno,

sia fatta la tua volontà

come in cielo così in terra.

Dacci oggi il nostro pane quotidiano,

e rimetti a noi i nostri debiti

come noi li rimettiamo ai nostri debitori,

e non ci indurre in tentazione,

ma liberaci dal male.


    오늘 저녁 하니와 다시 시내로 데이트를 나갔다. 이곳저곳 진열장을 기웃거리며 성탄전야를 즐기는 시민들과 함께 싸돌아 다니다 온 것이다. 성탄 트리가 환하게 켜진 바를레타.. 우리가 이곳에 둥지를 틀기 전까지 전혀 알 수 없는 낯선 도시였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의 삶을 위해 마침맞은 도시에 우리를 내려놓은 것이다. 우리가 계획하고 하늘의 도우심이 함께 했다. 도시와 사람들은 신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덩달아 우리까지.. 성탄절을 함께 기뻐하며 행복한 연말연시 되시기 바란다. 


AUGURI DI BUON NATALE E FELICE ANNO NUOVO!! ^^


La citta della illuminata da un albero di Natale_BARLETTA
Il 24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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