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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1. 2021

고맙구나 수고하였노라

-기록, 서울서 사라진 첫눈 명소


무릇 마음대로 열리는 열매는 없다!!



    서기 2021년 12월 21일 오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서울에 오셨던 첫눈 풍경을 사진첩을 열어 보고 있다. 새하얀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사뿐히 빨간 열매 위에 내려앉은 아름다운 풍경은 흔히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다. 



새빨간 열매의 이름은 배풍등(排風藤)이라는 약용 식물이다. 배풍등은 풍을 물리치는 덩굴성 식물로 학명은 'Solanum lyratum Thunb'.인데 속명이 '안정'으로 라틴어 Solamen으로부터 나왔다. 이 열매의 효능은 진정 작용이 있는 성분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빨간 열매가 발견된 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의 숲 공원 기슭으로 지근거리에 유치원이 위치해 있고, 대단지 아파트의 다른 동에서 유치원으로 가는 골목길 옆에서 자라고 있었다. 

녀석들이 나의 뷰파인더에 담길 때는 오래된 이 아파트가 곧 헐릴 것으로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이 골목길을 무시로 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 앙증맞은 몸짓 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양재천에서 가깝고 집에서 멀지 않은 이곳을 자주 들락거렸다. 오래된 이 아파트에 자생하는 수목들이 거의 자연의 숲을 닮았기 때문에 봄부터 겨울까지 무시로 카메라를 메고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서기 2017년 12월 18일) 서울에 폭설(첫눈)이 내리면서 나의 발길은 아름다운 숲 공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만난 녀석이 배풍등이라는 약용식물로 대모산 기슭에서도 만났던 귀한 녀석이었다.


나는 새하얀 떡가루를 뒤집어쓴 앙증맞은 새빨간 녀석들에게 말을 걸았다.


"고맙구나, 수고하였느니라!"


무릇 사람이든 식물이든 그 어떤 육축들이든 마음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조물주가 지은 세상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하나만 건재하지 못해도 주춧돌이 빠진 것처럼, 하나의 우주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갔던 것처럼 이들 또한 이곳에서 봄 여름 가울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어느덧 반백년은 다 되어 갔으므로 꽃샘추위를 기억할 것이며 세상이 떠내려 갈 듯한 장맛비와 폭우는 물론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물든 가을의 아름답고 쓰린 풍경을 더불어 안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것뿐인가.. 첫눈이 오시면 이 골목길을 오가던 어린 녀석들이 눈 장난을 하던 고사리 손을 기억해 낼 것이다. 또 있다. 그해 겨울은 얼마나 추었는지 봄이 되어도 두 번 다시 얼굴을 내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꽃잎을 내놓고 비를 맞으며 달님을 바라보고 뙤약볕 아래서 볕을 쬐고 있는 동안 작은 녹색의 열매는 핏빛처럼 물들어 갔겠지.. 얼마나 아팠으면 빨갛게 물이 들었을까.. 



그것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지내느라 마음고생은 또 어떻고.. 사람들이 당신들의 잇속에만 맞추어 배풍등이라 이름 지어놓고 약용 식물로 정리해 두었으니.. 그들의 삶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야만 했지.. 사람들이 그걸 알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사람들 곁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행복했는데 그 마저도 잊어야 하는 별리의 시간이 하루 이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무심치 않아서 어느 날 신의 그림자를 찾아온 한 사람의 뷰파인더에 발견되어 흔적이라도 남기게 됐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놀며 다니던 골목길을 서성이며 녀석들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고맙구나, 수고하였느니라!"


Un quartiere così bello se nevica_Gangnam COREA DEL SUD
il 21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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