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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9. 2021

우습게 보지 마라 멸치도 생선이다

-세계 최고의 식재료 한국에 모두 다 있어요


너무 흔하면 귀한 줄 모르는 법이다. 


    작다고.. 잘다고 얕보지 마라! 지금 내 앞에는 멸치가 잔뜩 쌓여있는 풍경을 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눈길을 끄는 풍경은 아니며 보는 순간 즉시 "멸치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차린다. 이곳은 을지로에 있는 중부 시장의 건어물을 파는 상점이자 단골집이다. 하니는 이곳에서 멸치와 다시마 등 건어물을 구입한다. 질 좋은 건어물들이 잔뜩 쌓여있는 곳.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집의 식재료는 최고급이다. 



멸치만 해도 등급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며 맛도 천 차 별 만차 별 서로 다르다. 어떤 것은 짭조름하고 어떤 것은 달콤하며 어떤 것은 쌉쌀하다. 멸치도 종류에 따라 건조방법 등에 따라 맛이 서로 다른 것이다. 아무튼 그녀가 가끔씩 찾아 나서는 단골집에서 구입한 멸치가 어느 날 이탈리아까지 먼 여행에 동행했다. 케리어 가득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육젓과 갈치속젓 등을 빼곡히 공수해 온 것이다. 그 가운데는 죽염과 죽염된장과 고추장도 끼어들었다. 



나는 이런 양념과 식재료를 보물이라 부른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부터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 세계 최고라는데 밑줄을 쭈악~긋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끼적거린 <우리나라서 맛본 세계 최고의 요리>에 등장한 생굴도 그중 하나이자,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식재료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한 번 이상 맛을 봤을 해산물들의 가치가 진가를 발휘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만약, 늦깎이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물 안의 올챙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었던 대한민국의 가치가 그저 고만고만할 것이라 생각하며, 선조님들을 뒤따라 금수강산에 머리를 뉘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기 시작하면서 눈높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요리 왕국 이탈리아에서도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에서 일을 하면서 이탈리아 요리에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요리들이 현란한 옷(?)을 입고 접시애 오르고, 사람들은 그 요리를 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리사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로 불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미식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으며, 미식가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요리에 탐닉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의 요리가 탄생할 때까지 과정을 곁에서 유심히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법의 세계가 셰프의 손놀림으로부터 발현되는 게 아닌가.. 나는 더욱 분발 헸다. 내 손에서 언제인가 '나만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런 한편, 현대 이탈리아 요리의 철학에 대해 열심히 열~쉬미 공부하고 노력했으며, 어느 날 대가로부터 전수받게 된 요리 철학으로 이탈리아 요리를 깨닫게 됐다. 무릎을 탁 쳤다. 나는 속으로 "바로 이거야!!" 하며 쾌재를 불렀다. 맨날 지지고 볶고 구워내고 삶아내던 음식들에 작은 노력과 발상의 전환만으로 이른바 '럭셔리'한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글을 쓰는 지금까지 여전히 내 마음은 내 조국 대한민국에 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그러니까 우리 선조님들은 당신을 낳아준 조국을 '금수강산'이라 불렀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금실로 수놓은 강과 산이라 불렀을까.. 우리나라에서 세계여행을 꿈꾼 유소년기 때부터 우리 행성을 바라보니 금수강산은 너무 초라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았다. 남태평양 카리브해 파타고니아 혹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책이나 영화 등으로 내 가슴에 안겼다. 그때마다 내 조국 대한민국과 비교하는 나쁜 버르장머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더 초라해지는 금수강산.. 



다만, 머리가 큰 다음 우리나의 명산으로 여행을 떠나고 우리가 즐겨 찾았던 설악산 등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나마 위안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은 여전히 금수강산과 동떨어져 보였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 인면수심의 한 위정자가 4대 강을 파헤치면서 스트레스는 극도에 달했다. 적폐 세력들이 선조님들을 욕보인 것도 모자라 금수강산을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치 않었다. 우리가 긴 여정으로 파타고니아 여행을 떠나면서 갈기갈기 찢겼던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 내 조국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어느 날부터 금수강산의 진면목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조님들의 혜안에 비친 금수강산은 단지 강과 산뿐만 아니었다. 한반도의 강과 산이 만들어낸 개펄은 물론 삼면에 인접한 바다에 오묘한 기운이 넘쳐나는 것이다. 오묘한 기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어서 개펄을 소환했다. 



개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갯벌을 지닌 나라이며 개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세계 최고이다. 굳이 개펄에 머리를 박고 자라나지 않아도.. 개펄은 물론 강과 천이 퍼다 나른 금수강산의 모래와 흙은 동해와 남해 서해 바다의 연안에 고루 분포되어 마법의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행성에서 생산되는 같은 종의 해산물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 연근해서 잡히거나 생산되는 해산물의 맛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선조님들은 두루뭉술 이런 현상을 "우주의 기운이 다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토양에서 생성된 미네랄 풍부한 개펄의 영향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안의 물고기나 해산물 등은, 우리나라와 같은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잡히는 생선이나 어패류 등 해산물의 맛과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잡힌 해산물이 달짝지근한 맛을 낸다면 이곳 이탈리아의 해산물의 맛은 그저 간간한 바닷물 맛과 어우러진 맛이랄까.. 



이런 식재료를 미슐랭 리스또란떼에서 '날고 기는' 셰프들이 창조적 기술을 덧입혀 식탁에 내놓으면 손님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식재료 본연의 형태는 사라지고 접시 위에는 요리사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요리가 시선을 압도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만..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서 예약을 하고 찾아온 식도락가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때 한 꼬레아노는 무덤덤한 것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맨 처음 만났던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무덤덤.. 왜 그랬을까.. 작다고.. 잘다고 얕보지 마라! 지금 내 앞에는 멸치가 잔뜩 쌓여있는 풍경을 보고 있다. 내 고향 부산에서는 멸치를 '매래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매래치.. 부산의 서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기장에서는 기장 매래치 축제가 해마다 열리곤 한다. 우리는 그 멸치 맛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한 걸음에 기장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멸치 혹은 매래치가 우리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다. 


위 멸치 자료사진은 서울 을지로의 중부시장에서 담아온 귀한 풍경이다.


멸치 멋을 아는 사람들.. 그들은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를 찾아가는 식도락가처럼 멸치 떼가 깃든 바닷가에 모여드는 것이다. 지져먹고 생으로 먹고 말려먹는 등 요리방법이 오만가지인 멸치.. 그 멸치가 어느 날 푸대접을 받는 순간에 포스트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멸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생선 크기에 비해 조족지혈이다. 어떤 멸치는 눈에 뜨지 않을 정도로 작다. 잘디 잔 녀석들의 종류는 우리 행성에 대략 140종에 이르고 민물고기까지 포함한다. 녀석의 이름은 남미와 유럽 혹은 이탈리아에서 엔쵸비(anchovy_Engraulidae) 혹은 아츄게(Acciughe_Engraulis ringens)라 부른다. 멸치이다. 


위 멸치 사진은 마산 어시장에서 고이 모셔온 풍경이다.


그런데 하니와 내가 맛 본 녀석들은 두 번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맛 짜가리 1도 없었다. 한 번 맛보고 두 번 다시 맛보지 않았다. 누가 거저 준다고 해도 먹지 않는다. 퓌렌쩨서 살 때는 일부러 생멸치가 먹고 싶어서 아츄게 1kg을 구입했다가 전부 버렸다. 웬만하면 음식을 버리지 않을 텐데 도무지 젓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서 엔쵸비를 소금에 절여 삣싸(Pizza)에 올려먹기도 한다. 또 빵과 함께 먹기도 하는 고급(?) 식재료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조차 최고의 멸치를 구입해 먹던 우리 입맛에는 하품이 날 정도로 하품이었다고나 할까.. 며칠 전 하니가 된장찌개를 끓였다. 이탈리아에서 끓이는 된장국의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함께 끓여낸 것이다. 그런데 육수를 끓여낸 멸치와 다시마가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려지기 직전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생선을 말리는 정겨운 풍경은 마산 어시장에서 모셔왔다.


그때 발견된 매래치.. 그 즉시 촉촉이 젖은 한 마리를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이빨 사이로 삐져나왔다. 그러면서 "이거(멸치를 가리키며) 왜 버렸지..?"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어물쩡 중얼중얼.. 당신의 입맛에는 맞지 않아 버리려고 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즉시 멸치 전부를 긴급구조에 나서는 한편 요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씩 웃으며 "멸치도 생선이다!"라고 말했다. 


대합을 여럿 쌓아둔 모습도 마산 어시장에서 만난 귀한 풍경이다. 이탈리아서 흔치않은 광경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귀하디 귀한 멸치는 상품이었으며, 한 번 끓여내도 여전히 달짝지근한 맛을 내고 있었다. 나는 멸치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녀석들은 곧 잔치국수가 흉내 내지 못할 '멸치 스파게티' 등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조적 역발상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게 틀림없다. 이탈리아의 셰프들이 머리를 짜내 만든 세계 최고의 요리가 흉내 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식재료가 내 조국 대한민국에 무궁무진하게 널려있다. 


본문에 삽입된 개펄 풍경은 강화도 외포리와 동검도에서 만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깃든 풍경이다.


생굴처럼 숟가락(?)만 올려도 최고의 요리로 변신하는 것처럼.. 금수강산 혹은 주변에서 태어난 식재료는 그 자체로 최고의 요리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흔하게 봐 왔던 터라 귀하신 몸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나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식재료가 한국의 바다에 널려있으며, 그 주인공 중 하나가 멸치이자 매래치이다. 우습게 보지마라. 멸치도 생선이다!!


I migliori ingredienti del mondo_Engraulis encrasicolus
il 28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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