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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9. 2019

63일 동안 죽었다 깨어나다

-내가 겪은 인터넷 금단현상

유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먼저 브런치 이웃분들 및 독자 여러분들께 안부의 인사 전해드린다. 지난 63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안부의 인사를 전하지 못했으므로, 생환(?) 즉시 글쓴이의 존재를 알리고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에 대해 몇 자 끼적거리고자 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줄거리와 내가 겪은 인터넷 금단현상


꽤 오래된(1990년)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신 분들이라면 유령의 역할을 맡은 패트릭 스웨이지(은행원 샘 역)를 기억할 것이다. 너무 유명했던 영화였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했다. 샘은 도예가 연인 몰리(데미 무어)와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칼(토니 골드윈)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샘은 맨해튼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몰리와 동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샘은 칼이 관리하는 계좌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잔액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조사하려 하는데, 그 날밤 몰리와 함께 길을 걷던 샘은 어느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때부터 샘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구천과 이승을 떠도는 유령의 역할을 하게 된다. 샘은 사랑했던 여인 몰리를 볼 수 있지만 몰리는 샘을 볼 수 없는 처지로 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한다. 그동안 샘은 몰리 주변을 서성거리며 자신을 죽인 강도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의 뒤를 밟아 이름이 윌리 로페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유령의 신분으로 보복을 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 조차 없었다. 샘은 윌리 집을 나와 우연히 심령사 오다 매 브라운 (우피 골드버그)의 가게에 들렀는데 오다 매 브라운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샘을 보지는 못하지만 샘의 말을 듣는 오다매에게 샘은 몰리를 찾아가 위험하다는 경고를 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샘은 칼을 따라가다 자신의 친구 칼이 강도 윌리를 고용했으며 마약상의 돈을 세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샘을 죽인 것은 칼이었던 것이다. 유령의 신분이 아니라면 당장 보복이라도 해야 할 심정이었을 것. 샘은 배신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지하철을 거닐다가 지하철 유령을 만나게 되었다. 


그 유령은 사물을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샘은 그로부터 물건들을 만지는 방법을 전수받고 오다매를 찾아간다. 이하 자신을 죽인 칼과 칼이 고용한 강도 윌리의 복수로 이어지는 내용과 몰리에게 자신의 심정과 존재를 알린 후 하늘나라로 떠나는 장면 등은 생략한다.(보다 상세한 영화의 내용은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지난 63일 동안 나의 처지는 마치 육신을 잃은 유령 샘과 같거나 비슷한 처지였을까.




나는 그동안 지독한 인터넷 금단현상을 겪고 있었다. 눈만 뜨면 잘 때까지 늘 눈 앞에서 세상과 소통하던 인터넷이 어느 날부터 내 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때가 지난 8월 15일이었으므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만 63일 동안 소통을 하지 못해 숨통이 막혀버릴 지경이었던 것. 이런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생각하다 영화의 줄거리를 생각해 본 것이다. 마치 육신을 잃은 유령의 모습이 떠오른 것. 내게 나타난 인터넷 금단현상은 영화 속 주인공 샘을 쏙 빼닮거나 비슷했다. 하지만 샘의 처지는 나 보다 훨씬 더 나았다.(영화의 설정상) 유령이 유령 고수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소통은 숨통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동무들 몇이 다대포의 물운대로 해수욕을 떠났는데, 물운대 아래 해변 한편에는 큰 바위들과 절벽이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는 그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거나 다이빙을 하며 놀았다. 낙동강 하구와 이어진 다대포 해수욕장은 수심이 너무 얕아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해 형들과 따라나섰던 물운대를 가끔씩 이용한 것. 


형들은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한 후 깊이 잠수하여 멍게와 해삼 소라 등을 잡아오곤 했다. 신기했다. 마치 해녀들처럼 바다 깊숙이 잠수한 후 한동안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즈윽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단 몇 분의 시간이 까마득히 느껴졌던 것.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형들처럼 바위 위에서 잠수를 시도해 봤다. 심호흡을 한 후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으고 다이빙한 후 잠수를 시도한 것이다. 




처음엔 물속이 너무 무서웠다. 해초들이 넘실넘실 유령처럼 달려드는 듯했다. 따라서 잠수한 직후 곧바로 뭍으로 나오곤 했다. 그리고 잠수 횟수가 늘어나면서부터 해초를 피해 바위 밑 깊숙한 곳으로 잠수해 소라와 해삼을 채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하마터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경험을 한 후 더 이상 물운대로 가지 않았다. 내 능력 밖의 잠수가 숨통을 조이며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의 욕심은 수면 아래서 채집에 열중하다가 물 밖으로 나갈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물아래 바위틈에서 수면을 바라보니 까마득해 보였다. 이때 숨을 참지 못하고 단 한차례라도 들숨을 들이켰다면 유령의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난 63일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인터넷 금단현상은 소통이 숨통이란 걸 절실히 깨닫게 해 준 것.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 인터넷을 떠나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63일 동안 무슨 일이


오늘(18일 현지시간) 오전 11시경, 마침내 인터넷이 개통됐다. 어제저녁(17)에 모뎀이 도착했지만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따라서 대리점에 들러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후 집으로 돌아와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새벽까지 먹통이었다. 오늘 오전 다시 모뎀을 붙들고 애타게 개통을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인터넷에 연결된 것이다. 

지난 63일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주로 이런 식이었다. 이탈리아의 인터넷 보급 시스템은 우리와 많이도 달라 짜증을 넘어 체념을 그리고 나중에는 실성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 대리점에 매일 들러 문제가 뭔지 알아보고 언제쯤 개통될는지 묻고 또 물었으며, 그때마다 일주일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한 일이 한 달 보름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 회사는 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를 걸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전화를 받는 즉시 전화는 끊기고 "전화를 했어요"라는 메시지만 남겼다.(누구 약 올리는 건지ㅜ) 그런 일이 한 달 이상 계속됐다. 그리고 인터넷 라인을 점검하는 기사와 겨우 약속 시간을 정하고 라인을 점검을 했는데 모뎀은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는 이틀 중으로 모뎀을 가져올 것이라 했다. 그게 지난 월요일이었다. 


희한하지. 우리나라 같으면 기사가 라인 점검 후 모뎀을 연결(설치)해 놓고 갈 텐데, 어제 저녁 작은 꾸러미의 소포를 받고 보니 그 속에 모뎀이 들었다. 그리고 발신처를 보니 밀라노에서 소포로 부친 것이었다. 상품 판매는 대리점에서 라인 점검은 바를레타에서 모뎀은 밀라노에서 부친 것. 그리고 설치는 발주자(Cliente)가 하는 희한한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인터넷 개통이 왜 63일씩이나 지체되었을까. 통신 판매점(대리점)에서 인터넷을 주문하면 필요한 서류 중에 현지 은행의 계좌가 포합 된다. 현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것. 이게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처럼 당일치기가 안 된다. 계좌 개설 주문을 해 놓고 대략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으므로, 주중에 은행에 방문하면 일주일이 훌쩍 넘어간다. 


지난 8월 15일에 현지에 도착한 후 서둘러 계좌를 개설한 시점이 9월 2일이었다. 이때 한국 운전면허증을 아탈리아 운전면허증으로 바꾸는 일을 동시에 했다. 그리고 이날 인터넷 주문을 한 것. 이탈리아 운전면허증 교환도 인터넷과 별로 사정이 다르지 않다. 10월 2일에 발급된다고 했던 면허증이 한 주만 더 기다리라더니 다시 또 한 주, 그리고 이틀 전 약속 날짜에 갔더니, 아예 한 달 더(11월 중에 전화한단다) 기다리라고 한다. 하지만 일단 숨통이 트였으므로 운전면허증은 될 대로 되라지 뭐..!!





63일 동안 일어난 작은 변화


그동안 숨통이 막혀 답답한 일도 많았지만 정든 도시 피렌체를 떠나 새로운 도시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로 자리를 옮긴 후부터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정리되지 못한 외장하드를 다시 정리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였다. 매일 바닷가로 나가 걷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또 가까운 대형 매장에 들러 요리 재료를 구입하고, 이틀이 멀다 하고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는(연구) 재미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두세 시간씩(8~10km) 해변을 걸으며 운동을 시작한 이래 체력이 부쩍 좋아진 것을 느낄 정도이므로, 인터넷 금단현상이 가져온 또 다른 대가도 솔솔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인터넷 금단현상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마치 63일 동안 죽었다가 깨어난 느낌이랄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힘든 경험이었다. 




*글쓴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러분들이 구독과 라이킷으로 응원해 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본문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v=E2d7ghy6qdI



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17 Ottobre 2019 Puglia in Ita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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