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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23. 2019

풀꽃들의 대합창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해변의 가을 풍경

우리가 잘 모르는 식물들의 세상..!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에서 거처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로 옮긴 후 집 대문 앞에 로즈마리와 멜론 등을 장식해 두었다. 화분을 구입하고 나무와 풀꽃을 심었는데 흙이 부족하여 동네의 공원에서 마른흙을 조금 옮겨다 화분에 채웠다. 그리고 물을 듬뿍주고 식물들이 잘 자라기를 바랐다.


그런데 대략 일주일 후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됐다. 대문을 나서니 화분에서 새파랗고 아주 작은 싹들이 무더기로 돋아나고 있었다. 


내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매마른 흙 속에 잠자고 있던 녀석들이 너나 할 것없이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은 자기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인지하자 마자 떡잎을 내놓고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대견했다. 녀석들 때문에 집안을 들락거리는 동안 생기가 느껴졌다. 


우리 건물 윗층에 살고있는 이탈리아인들도 덩달아 좋아했다. 이름 모를 식물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바를레타 해변에서 만난 풀꽃들의 대합창


이틀 전, 나는 평소의 습관에 따라 바닷가로 나섰다.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후 바닷가 해변에서 매일 두 세시간씩 걷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바닷가에서 운동을 시작할 때는 먼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준비해 둔 봉지에 담아 배낭에 넣고 맨발로 바닷가를 걷는 것. 맨발이 촉촉히 젖은 해변에 닿자마자 발가락 사이로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스며드는 모래 알갱이 때문에 단박에 기분이 좋아진다. 힐링의 세계로 접어들며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날은 다른 해변을 찾았다. 집에서 대략 10분도 채 안되는 지근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여름 한철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붐볏던지 해변에 서식하고 있던 식물들이 거의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지난 8월말경 바캉스 시즌이 끝나고부터 재밌는 현상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초록빛 기운이 감돌더니 9월이 접어들면서 모래밭은 축구장처럼 파란 싹들로 뒤덮였다. 그리고 10월로 접어들 때 장관이 빚어졌다. 풀꽃들이 연보라빛 꽃을 피우며 대합창을 시작한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놀라운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 직후 넋 놓고 이를 바라보다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풀꽃들은 사람들로부터 밟힘을 당할 수 있는 시절을 피해 아무도 모르게(?) 새싹을 내놓고 그들만의 세상을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이곳은 찾은 사람은 글쓴이 포함하여 대략 10명도 채 안돼 보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녀석들의 대합창 소리에 귀기울이며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다.



풀꽃들의 대합창












풀꽃들의 대합창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된다. 얘들아 안녕..



CORO LA SPIAGGIA DEI FIORI
il 21 Ottobre 2019,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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