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13
님아 그 호수를 함께 건너요..?!
바람의 땅은 여전하겠지만.. 그동안 우리의 겉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남아있던 검은 머리가 점차 파뿌리처럼 변하더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것이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았으며, 호수는 여전히 푸르고 미루나무는 바람에 순응하며 잘 자라고 있었다. 전망대서 바라본 바람의 땅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흔적이 배암처럼 길게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과 땅과 바람의 땅을 딛고 선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은 늙지 않는 것이랄까.. 나는 여전히 바람의 땅으로 들어서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던 미루나무 숲에 마음이 빼앗기고 있다. 세월이란 우리 곁을 스쳐 지나는 바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바람에 실려온 기억들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동행하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좋은 풍경 앞에서도 감동하지 않는 당신이라면 새해 벽두부터 자동차 점검하듯 당신의 감성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감동을 앗아가는 현실은 매몰차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최소한 밥만 먹고살 수 있다면 당신의 윤택한 삶을 위해 돌아봐야 할 때이다. 재산이나 권력이 많거나 넘쳐도.. 사회적 지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을지라도.. 그 속에 빠져 살면 감성은 당신의 가슴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슬퍼할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웅크린 감성을 알기는 한가..
서기 2022년 1월 13일 오전 6시 30분경(현 지시 긱),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티에서 노트북을 켜고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뿌에르또 인제니에로 이바네스(Puerto Ingeniero Ibáñez) 마을이 포구와 함께 등장했다. 10년이 더 되어가는 사진 속에서 여행자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나는 꼬자이께(Coyhaique)에서 출발해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기사님과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그는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땅을 떠나 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도시로 떠나고 싶어 했다. 이런 사정은 버스 기사님 뿐만 아니라 이곳 파타고니아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운명 같은 것이었다. 반면에 파타고니아의 바람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우리는 두 번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까이꺼.. 가죽을 남긴 호랑이 그리고 이름을 남긴 사람..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아무런 쓰잘데기 없거니 소용없는 게 속담에 묻어있는 눈속임(?)이다. 한 인생이 이 땅에 태어나서 목숨이 다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나의 자화자찬이란 다름 아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러나 사람보다 위대한 여행자는 사진을 남기는 것이다.
세상의 기록 수단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바뀌어왔다. 파티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만난 최고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9천 년 전부터 1만 2천 년 전 원시인들이 바위동굴에 그려놓은 그림(Cueva de las Manos)이었다. 또 볼리비아의 알띠쁠라노에서 만난 띠아우아나꼬(Tiahuanaco) 문영에서는 글 대신 그림으로 남겨진 역사를 만났다. 그리고 우리가 학습한 갑골문자나 파피루스 등 인간은 종이가 발명된 이래 다양한 기록 수단을 지니게 됐다.
필기구도 달라졌다.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의 동굴벽화는 동물의 뼈를 사용했으며 알띠쁠라노(Altiplano) 문영의 흔적은 돌에 새겨 넣었다. 동굴이 되었던 점토판이 되었던, 그 어떤 기록 수단이 되었던 ,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은 당신이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게 오늘날 아이패드와 휴대폰 등 IT변천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파피루스로부터 발전된 양피지와 PC로 옮겨올 때까지 기록 수단의 변천사는 눈부시다. 나는 그중 카메라를 택했다. 사진을 찍는 일이 무엇 보다 행복한 것이다. 그게 어느덧 50년의 세월을 지나고 있다. 매일 아침 혹은 짬이 날 때마다 노트북 앞에 앉는 일도 호모 사피엔스의 오래된 습관 때문일까..
하니는 노트북 곁에 앉아 휴대폰을 열어놓고 눈이 빠지게 들여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대도시에나 가능하지만, 한국의 전철 속 승객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철에 오르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누가 보거나 말거니 낄낄대는 일이 쉽게 목격된다. 낄낄낄.. 보는 사람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낄낄낄..ㅋ
그런데 여행자가 남긴 파타고니아의 기록 속에는 낄낄대기 보다 조금은 신중해진다. 우리 앞에는 무사히 건너야 할 바다를 닮은 호수가 있으며, 그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거대한 호수를 자주 다녀본 사람들은 호수의 성깔을 잘 알겠지만, 초행길의 여행자 앞에 놓인 호수는 사정이 다른 것이라고나 할까..
어떤 독립영화의 흥행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제목을 보는 것 같은 느낌.. 혹은 영화 <타이타닉>의 운명이 단박에 떠오르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니 두 편의 영화가 시사하는 바 커서 여행자의 가슴에도 적잖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인가 우리가 살고 있던 행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어있다. 숙명이다. 그때 당신이 사랑한 사람과 별리를 하게 된다. 별리..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식 앞에 강이 놓인 것이다. 누구나.. 그 누구라도 반드시 건너야 하는 운명의 강..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리움도 없을 것이며, 눈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동시에 별리를 잉태하고 있는 것.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새삼스럽게 기록이 중요해진다. 사진이 중요해진다.
먼 길을 다녀온 후에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누군가 먼저 이 땅을 떠났을 때 그 헛헛한 자리를 무엇으로 메꾸겠는가.. 그래서 <님아 그 호수를 함께 건너요>라는 카피를 생각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바네스 포구에 서서 저만치서 다가오는 훼리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면 선상에서 바다를 닮은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호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놀라운 장면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호수가 바다로 돌변하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사진첩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우리가 남긴 여행 기록들이 위대해 보인다. 자화자찬.. 그 속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라고 말한다. 이 속담은 보다 더한 자화자찬이 아닐까.. 있었다. 우리네 삶을 쏙 빼닮은 호수 위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Puerto Ingeniero Ibáñez Patagonia CILE
il 13 Genn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