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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5. 2022

꿈꾸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대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가 바꾸고 싶었던 세상.. 그리고 통째로 바뀐 세상..



하니와 나는 소금사막 깊숙한 곳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때 남긴 기록들.. 스티브 잡스 덕분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오래 전의 기록을 들추어 보며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잡스는 세상을 바꾸었는지 모르겠다먄 정작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당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당신의 말년은 병석에서 초라한 명언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우리네 삶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은 실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시간관리에 실패하며 시간 저편으로 멀어진 것이다. 그가 남긴 명언을 다시 돌아본다. 우리네 삶에 있어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를 통해 넌지시 알게 된다. 


"My favorite things in life don't cost any money. It's really clear that the most precious resource we all have is time."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 즉, 우리 모두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은 시간이다.)



꿈꾸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우유니 소금사막에 발을 들여놓기 전 반드시 챙겨가야 할 게 있다. 선글라스이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은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만난 한 어린이.. 그는 여행자를 상대로 괭이를 들어 보이며 돈을 요구한다. 1달러.. 녀석은 운이 좋은 날이면 1달러를 벌게 된다. 



남미 12개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서 운 좋은 날 벌어들인 1달러는 적지 않은 돈이다. 매일 1달러를 벌 수만 있다면 한 해에 적어도 300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금사막에서 앵벌이를 하고 있는 녀석이 꿈꾸는 세상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소금사막 밖에 볼 수 없는 곳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우리와 일행을 포토시에서 이곳까지 데려온 지프차 운전자는 평생의 꿈이 소금사막을 횡단하는 가이드가 꿈이었으며 30대 중반에 꿈을 이루었다. 소금 사막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가 만난 세상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우유니 소금사막을 여행할 당시 볼리비아의 1인당 GDP는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로부터 대략 1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경제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제규모는 1/10 정도로 1인당 GDP는 3,322 달러(2020년 기준)이다. 



볼리비아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원천은 천연가스로 매장량은 무려 9조 9,400억㎥로 베네수엘라에 이어 남미에선 2번째로 가장 많은 매장량이라고 한다. 그밖에 주석, 금, 은 등 광물 자원들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는 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 때 소금사막 근처에 자리 잡은 포토시(Potosí)는 침탈자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세계 최대의 은광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자료에 따르면  포토시는 안데스 산맥의 고도 4,000m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불과 헸다. 이 도시가 빛을 보게 된 때는 1542년~1545년, 세로 데 포토시(Cerro de Potosí) 산에서 커다란 은 광맥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침탈자 스페인의 본격적인 수탈이 시작된 것이다. 좀 더 살펴볼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기록한 포토시(Potosí)



포토시는 1572년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Francisco de Toledo)의 방문 이후에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바로크 양식에 인디언 문화를 접목시킨 양식이 건설되어 안데스 중부 지방의 건축과 기념비적 예술 발전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쳤다. 포토시는 눈부시게 성장해 나갔다. 1572년 인디언 방법으로 건설을 시작했다. 17세기에는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한 13,500명의 인디언들과 더불어 16만 명의 식민지 주민이 있었다. 한동안 체계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광맥을 개발하다가, 1580년 페루에서 개발된 파티오(patio)라고 알려진 광산 기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이후 세로 데 포토시의 은 생산은 최대에 이르렀으며, 16세기에는 여러 수압 제재소에 의존하여 은 광석을 추출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단지로 이름을 떨쳤다.



포토시는 월등히 뛰어난 현대 시대의 주요 은 광석 광산 중 하나이다. 이 도시와 이 지역에는 이러한 활동의 자취가 장관을 이루며 보존되어 있다. 산업 기반은 22개의 작은 연못 혹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강제로 유입된 수량으로 수압을 발생시켜 은 광석을 제련할 수 있는 140개의 제재소를 운영한다. 제련된 광석은 단단한 흙으로 된 가마(huayras 또는 guayras라고 불린다)에서 수은과 합쳐져서 막대기 모양으로 주조되어 왕립 조폐국(Royal Mint, 1759년에 재건되었음)의 인장이 찍혔다. 광산에서 왕립 조폐국까지의 전체 생산 과정은 댐과 수로, 제분 센터, 그리고 가마와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한 곳은 포토시로부터 당도한 곳이다. 건기 때는 새하얀 소금사막이 연출되고 우기가 되면 소금사막 전체는 호수로 변하며 거대한 거울을 연상케 한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더 마를 곳도 없는 소금사막 한편에서 소금물이 안데스의 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소금사막은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라고 부르며, 면적은 10,600 km²에 이른다. 이곳은 해발 3,660m 높이의 안데스 영봉과 가까운 볼리비아 남서부 포토시주와 오루로주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한 때 은광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포토시를 출발해 소금사막 한편에 와 있다. 그곳에서 한 어린이를 만나는 등 기념촬영을 하고 선인장으로 빼곡한 이슬라 잉까우아시(Isla Incahuasi, 물고기 섬)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얼마 후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휴게소(Hotel de Sal)에 들러 쉬었다 가기로 한다. 소금으로 만든 호텔.. 이곳은 온통 소금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소금 밖에 볼 수 없다. 나라도 가난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소금밖에 없는 땅에서 무슨 꿈을 꾸며 살아갈까.. 



내 고향은 부산.. 그곳의 유소년 기를 돌아보면 까마득하지만 엊그제 일 같기도 하다.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규모 혹은 사정은 볼리비아 못지않았다. 오늘날 볼리비아의 경제 규모는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그런데 나의 유년기 때 만난 풍경과 이곳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부산에는 서면을 중심으로 황령산과 백양산 그리고 금정산이 도시를 휘감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산을 만날 수 있고 계곡을 만날 수 있었으며 바다와 강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한 백양산에 오르면 발아래(?)로 부산 앞바다가 불쑥 솟아오르고 뒤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를 뿐만 아니라 김해평야가 을숙도와 함께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유소년기에 형들과 함께 산토끼 사냥을 다녔던 그곳에서 꿈꾸었던 세상.. 당시 내 손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진 백지도와 지구본이 늘 함께 헸다. 요즘은 쉽게 상상할 수 있거나, 매시각 우리 행성의 소식이 손바닥 위로 오르지만. 당시에는 어린 내가 넘볼 수 없는 꿈이 자라고 있었다고나 할까..


"언제인가 세계일주를 하고 말 테다..!!"



유년기를 지나 소년기 청년기를 지나는 동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꿈꾸었던 세상은 점점 더 멀어지거나 아예 기억에서 조차 멀어졌다. 먹고사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자 흙수저 집안에서 분에 넘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돌아보는 여행도 힘들 판국에 어린 녀석이 꾼 꿈은 세계일주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소년기의 한 녀석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는 <김찬삼의 세계여행>이 들려있었다. 친구의 형이 소장하던 두껍고 무거운 책(국배판 이상 대형 판형에 아트지 사진 인쇄)이었다. 나는 그 책을 집으로 빌려갈 수 없어서 자주 친구 집으로 들렀다. 책 속에는 백지도와 지구본에서 만나지 못했던 세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가 1970년대였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0년 전 내 가슴에 콕 들어박힌 세상.. 



하니는 가끔씩 이런 말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기 2022년 1월 14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남미 일주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단상에 잠겼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꿈꾼 세상을 이룰 것이며,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것이다. 성공의 척도도 서로 다를 것이다. 



다시 펼쳐본 사진첩 속에서 나는 이 시대 최고의 사업적 성공을 거둔 한 사람을 기억해 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잡스는, 어느 날 세상을 떠나면서 병석에서 한 메시지를 남겼다.


What is the most expensive bed in the world? "Sick bed"..

어떤 것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일까? 그건 "병석"이다. 



서두에 등장한 괭이를 든 한 어린이는 어느덧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며, 결혼을 했을 나이로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어쩌면 그는 여전히 포토시를 끼고 있는 우유니 소금 사막 근체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나 깨나 지프 한 대를 구입하여 여행자를 태우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던지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살아갈 것이다. 장차 무엇이 되고 싶고 어디로 따나고 싶을 것이다. 유명세를 타고 싶기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할 것이다. 천하를 흔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싶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꿈을 꿀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조건이 존재한다. 당신이 장차 이루게 될 꿈은 하나밖에 없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 잡스는 사업에 성공했지만 건강관리에 소홀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 '병석'이라 회상했다. 잡스는 위대한 IT 세상을 남겼지만, 김찬삼 선생이 기록한 세계여행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건강할 때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꿈을 꾸고 실행하시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La scelta migliore della mia vita_Il Nostro viaggio Salar de Uyuni
il 14 Genn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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