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2. 2022

피렌체 수도원과 장미의 이름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서


그 수도원에는 왜 찾아갔을까..?!



    서기 2019년 1월 3일 아침, 하니와 나는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피렌체라 쓰고 '퓌렌쩨'라 읽는다)의 중심에 위치한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한 까뻴레 매디치(Capelle Medici, 메디치 예배당) 앞에서 뽀르따 로마나(Porta Romana)로 향했다. 뽀르따 로마나는 퓌렌쩨 시내 중심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달리 중세의 건축양식 다수가 남아있는 곳이었다.



삽입, 영화 <장미의 이름> 줄거리 먼저 알고 보면 더 재밌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내서 아르노 강을 건너 뽀르따 로마나 성문 앞까지 걸어간 것이다. 우리가 성문 밖까지 걸어간 이유는 아직 첫차(버스)가 운행되기 전이었다. 아울러 산책 겸 운동삼아 시내를 가로질러가면, 뽀르따 로마나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퓌렌쩨 중심에서 뽀르따 로마나 성문 앞에 도착할 때쯤 저만치서 갈루쪼(Galluzzo)로 가는 버스가 마침맞게 도착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갈루쪼에 위치한 체르또사 디 퓌렌쩨(Certosa di Firenze, 퓌렌쩨 수도원 )였다. 우리가 퓌렌쩨에 사는 동안 몇 번에 걸쳐 퓌렌쩨 중심에서 이곳까지 돌아본 바 있으며, 뽀르따 로마나 근처의 언덕 너머에 토스카나 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뽀르따 로마나 성문 앞에서 갈루쪼까지 거리는 4km가 채 안 되므로 버스는 대략 10분이면 도착한다. 서서히 동이틀 때쯤 우리는 퓌렌쩨 수도원 근처 정류장에 내려 수도원을 올려보고 있었다. 서두에 삽입해 둔 <장미의 이름> 줄거리를 참조해 가며 퓌렌쩨 수도원 주변을 돌아보기로 한다.



피렌체 수도원과 장미의 이름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를 찾는 관광객 다수는 이곳 수도원의 존재를 모르거니 알아도 찾아 나서기 힘든 곳이다. 짧은 여정으로 르네상스의 고도를 찾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들 가슴속에 퓌렌쩨서 만날 유물들을 품고 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멀지 않다고 하지만 시내 중심에서 떨어진 곳이자 다른 유적지에 비해 감흥이 떨어지는 것이랄까..


조금 전에 만난 을씨년스러운 수도원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가 이동한 곳은 수도원 주변을 흐르고 있는 천이었다. 수도원의 위치는 두 천이 하나로 합치는 이른바 두물머리에 건축되어 있었다. 수도원에서 바라봤을 때 우측으로는 에마(EMA), 좌측으로는 그레봬(GREVE) 천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두 천이 만난 다리 위에서 수도원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하니와 나는 수도원이 빤히 보이는 그레봬 천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은 1월 3일 아침이었으므로 여전히 겨울이나, 천변의 풍경은 금세라도 봄이 화들짝 놀라 깰 정도로 화창했다. 바람은 없었으며 따뜻한 햇살이 마구 쏟이지는 곳. 우리에게 낯선 수도원이라는 근처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수도원의 풍경은 매우 낯설었다. 그렇지만 수도원을 배경으로 촬영된(원작: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영화를 통해 수도원에 대한 이미지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수도원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곳이었으며, 수도사들의 비밀스러운 모습들 때문에 쉽게 친근감이 들지 않았다.



유년기 때 할머니 손을 잡고 가까운 사찰 입구에서 만난 사천왕을 처음 맞딱 드렸을 때의 오싹함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도원 혹은 수도사들의 직분이나 달란트를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수도원도 사찰의 승려들처럼 출가를 하는 것이랄까.. 출가 직후부터 그들은 수도원 내부의 규울 등에 따라 영성훈련을 하거나 필사 작업을 하거나 노동도 하며 하루를 소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도원 아래 천변을 걷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었다. 영화나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소설의 '개연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무한대로 생산되는 상상력이 독자의 흥미를 끄는 것이다.



영화는 1327년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을 전개해 나가는데.. 보통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수도사들이 제정신이 아니란 데 단박에 동의할 것이다. 장미의 이름으로 포장된 이 영화는 겉과 속이 다른 세상의 모습을 일주일간에 걸쳐 다루었다. 흥미진진 두려움과 공포..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밀폐된 공간에서 상상밖의 전혀 엉뚱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천변을 걷는 동안 고개를 들어 무시로 바라본 퓌렌쩨 수도원.. 우리는 가끔씩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뱅기로 12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어느 날 수도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건 나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어느 날 휴가가 주어진 날.. 우연히 수도원이 마주 보이는 올리브 과수원에 들렀다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수도원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올리브 과수원 언덕 위에서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천변에서 수도원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니는 천변을 걷는 동안 수도원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렇다면 수도원은 언제부터 활성화되었을까.. 수도원이 생겨난 이유는 로마 제국의 박해와도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박해를 피해 사막 깊숙이 피신하거나, (세속적인) 세상을 떠나 고독을 즐기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말이 그러하지 세상이 싫은 것이다.



그렇지만 박해가 심했던 시기에는 수도원이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과 더불어 박해가 끝나면서 교회가 점점 세력을 얻고 정치적 권력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수도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Editto di Milano


Si intende per editto di Milano (noto anche come editto di Costantino e Licinio, editto di tolleranza o rescritto di tolleranza) l'accordo sottoscritto nel febbraio-marzo 313 dai due Augusti dell'impero romano, Costantino per l'Occidente e Licinio per l'Oriente, e promulgato il 13 giugno del medesimo anno, in vista di una politica religiosa comune alle due parti dell'impero. Il patto fu stretto in Occidente in quanto il senior Augustus era Costantino. Le conseguenze dell'editto per la vita religiosa nell'impero romano sono tali da farne una data fondamentale nella storia dell'Occidente.

*Editto di Milano, 로마 제국 서편을 관장하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로마 제국 동편을 관장하던 리키니우스 황제가 313년에 공표한 문서.



나는 수도원 아래 천변을 걷는 동안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의 속 마을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겨울 소풍(?)을 나와 기분이 째지는 것이다. 암튼 그녀는 싸돌아 다니기 선수나 다름없다. 거기에 어디를 가나 카메라가 손에 들려있는 나..



서기 2022년 1월 21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웰케 크게 나왔어..ㅋ"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 도시 퓌렌쩨..



세상은 어느 소설가가 끼적거린 개연성처럼 한 때는 장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어느 날..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되는 날부터 미쳐버린 수도사의 마음을 알게 될까..



포스트를 끼적거리기 전에 열어본 대한민국의 커뮤니티 속에 반려견 동상을 향해 머리를 조이리고 있는 어느 얼간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녀석은 개망나니 출신의 대통령 후보였다. 그는 주얼리와 함께 평생을 장미의 이름으로 살아온 듯했으나, 쭉정이 육신만 남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었다. 영혼이 메말라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녀석들..



퓌렌쩨 수도원은 서기 1321년에 나폴리 왕국의 대왕 니콜로 아치아이우올리(Niccolò Acciaiuoli) 의해 지어졌으며, 그는 퓌렌쩨 가문의 가장 유명한 일원이었다. 수도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었을 때(1365) 거의 완성되었다고 전한다. 수도원은 수 세기 동안 많은 기부금으로 풍요를 누렸다고 한다. 천국으로 가고 싶었던 재벌 혹은 권력이 남긴 쭉정이에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비친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Italia con mia moglie_Certosa di Firenze
il 21 Genn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삶에 연습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