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설레는 이유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2011년 10월 7일 오후 4시경, 아내와 나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공항을 내려다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공항 활주로에는 국적이 다른 비행기들이 무시로 이륙하며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우리도 곧 어디론가 떠날 텐데 탑승도 하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출국장 주변을 배회하며 탑승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이다. 길어봤자 한두 시간일 텐데 그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맛있는 음식을 야금야금 아껴 먹는 것처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어떤 때는 공항에서 1박 2일 동안 비행기를 기다려 본 적도 있었다. 멕시코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쳐 간신히 다른 비행기를 타고 페루의 리마 공항까지 갔던 기억들. 공항 출국장 한편 기둥에 기대어 졸면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인천공항 계류장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설렘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때도 지루하다는 생각보다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생도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은 그랬다. 만약 일터에서 혹은 사업을 하다가 이런 난관에 부딪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우리는 2005년에 이어 다시 '파타고니아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남반구의 시간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맞추었다. 첫 번째 남미 일주를 통해 소홀했던 장비는 물론 여정을 꼼꼼히 챙겼다. 첫 번째 남미 일주는 마치 현지답사처럼 작용해 두 번째 여행은 한층 더 수월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쳐 놓친 풍경들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엄청나게 컸다.
우리에게 파타고니아는 그런 곳이었다. 살짝 간만 보고 온 것 같은데 가슴속에 남은 청정지역의 향취는 온몸의 세포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산이며 강이며 숲이며 바다는 물론, 우리가 지지고 볶고 살고 있던 세상과 너무도 다른 세상이 오롯이 펼쳐지고 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파타고니아'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면 곧이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잠시 후 우리도 이같이 하늘로 솟구치겠지..!
행운이었다. 탑승시간에 맞추어 출구로 나서는데 대한항공 직원이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이분이 맞다'며 티켓을 회수하고 다른 티켓을 건네주며 "축하드립니다"라며 공손히 대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그동안 적립된 마일리지 등으로 에코노미석에서 VIP석(비즈니스석)으로 자리를 바꾸어 준 것이다. 의외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호주의 시드니 공항까지 가는 직항노선의 비지니스석에서 황제의 대우(?)를 받았다. 드넓은 공간에 기내식은 마치 리스또란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승무원들은 서빙을 할 때마다 무릎을 꿇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매우 친절하게 손님을 대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다. 누군가 당신 앞에서 굽신거리고 있는 모습은 나 스스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머쥔 행운을 마다하고 조용히 지내며 당일자 신문을 펼쳐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전혀 뜻밖의 한 기사를 만나게 됐다. 신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스티브 잡스( Steve Jobs)의 얼굴이 실려있었다. 우리가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참 묘한 타이밍이었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비행기라는데 그 누구도 이견은 없을 것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 후 기수를 저 멀리 남반구의 호주로 돌리고 있을 때 펼쳐본 신문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우리를 향해 "삶을 낭비하지 마라.. 늘 배고프게, 늘 바보같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 외신을 통해 간간히 접한 잡스는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2011년 10월 4일 췌장암으로 결국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잡스는 애플의 CEO이자 공동 창립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공'의 대명사라고 말했고 현대인들의 영웅이었다. 그의 업적을 위키피디아를 통해 잠시 돌아볼까.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또한, GUI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하였다.
1986년 경영분쟁에 의해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다. 1996년 애플이 NeXT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게 이끌었다.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또한,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 PC 시대를 열었다.
기내 비즈니스석에서 만난 스티브 잡스의 특집 기사의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이 특집으로 실은 잡스의 사망 소식에 그의 유언과 다름없는 명언이 실려있었다. 잡스는 그야말로 세상을 확 바꾼 우리들의 영웅이었지만 당신 스스로는 너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공붓벌레, 일벌레, 돈벌레, 명예 벌레 등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렸지만, 정작 그가 누리거나 누려야 할 세상은 잡스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을 망정 병상에서 당신의 삶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렇게..
킹스포드 스미스 국제공항에서 만난 독특한 디자인의 여객기 외관에서 호주를 실감한다.
"나는 사업의 세계에서 정점을 이르렀다.
남들이 보기에 내 삶은 성공의 본보기였다.
하지만, 일 빼놓고는 즐거움이 별로 없었다.
결국 재산이란
내가 익숙해진 삶의 한 단편이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병상에 누워 삶 전체를 회고해 보면
그처럼 자부했던 명성과 재산은
곧 닥쳐올 죽음 앞에 빛이 바래고
아무 의미가 없음을 실감한다.
어둠 속에서
생명 연장 장치의 초록색 광선을 바라보며
윙윙 거리는 기계음을 들을 때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신이 쉬는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칠레 산티아고행 여객기 환승을 기다리는 동안 멋진 녀석을 만나게 됐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삶을 유지할 만큼 적당한 재물을 쌓은 후에는
부와 무관한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더 중요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저런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또는 젊은 시절에 가졌던 꿈..
쉬지 않고 재물만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이 뒤틀린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재물이 가져다주는 그 환상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안에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셨다.
내 일생동안 성취해 놓은
부를 가져갈 수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빠졌던 기억들 뿐이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호주에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공항으로 이륙했다.
그 기억들이야 말로
따라주고 같이 해주며
살아갈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다.
사랑은 1000마일을 갈 수 있다.
삶에는 한계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오르고 싶은 곳으로 올라가라.
모든 것은 마음과 손안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병상이다"..!
운전해 줄 사람이나 돈을 벌어줄 사람을 채용할 수 있지만
대신 아파 줄 사람은 구할 수 없다.
세계여행의 백미랄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언제나 경이롭다.
잃어 비린 물건은 다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잃은 후에 절대로 되찾을 수 없는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삶'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아직도 읽어내야 하는 책이 "건강한 삶에 관한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오크랜드 공항으로 다가서는 비행기의 동선이 내비게이션에 나타났다. 이번 여행은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호주까지 남하해 호주에서 오클랜드 공항을 거쳐 다시 대권 항로를 따라 남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공항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의 여행이며 파타고니아 투어의 시작이다.
지금 삶의 어느 순간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장막의 커튼이 내려오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의 오크랜드 공항(계류장 모습)은 다른 공항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드는 곳.
가족을 위한 사랑을 귀하게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자신에게 잘 대하라..!
남들을 소중히 여겨라!
오늘날 잡스의 유언이자 명언은 인터넷에 널려있다. 그는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대인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는 정작 당신이 누려야 할 삶을 누리지 못한 채 병상에서 값 비싼 대가를 치르며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만난 란칠레 항공, 이 비행기가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설렘의 연속이다.
오래전 유년기를 기억하는가. 아이들은 옹알이는 물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로부터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 자기를 구속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한 걸까. 두 발로 서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미운 일곱 살(요즘은 다섯 살이라고도 한다) 티를 낸다. 이 같은 일은 자라면서 점점 더 도드라진다. 여행이나 소풍을 떠나기 전 마음이 설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세상 모든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사회생활 혹은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눈 앞에 다가왔으므로 어찌 설레지 않겠는가. 잡스가 병상에 눕기 전에 좀 더 일찍 당신의 삶에 눈 떴다면 당신의 성공이나 자랑은 저만치 버려두고 먼 여행길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간섭할 그 어떤 권한도 이유도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결정하고 행할 뿐이다.
그러나 잡스의 유언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삶을 잘 보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잡스가 세상에 없어진 것처럼 우리도 언제인가 유명을 달리할 것이다. 그때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들이 없다면 얼마나 후회막급하겠는가.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설레는 이유를 잡스가 넌지시 일러주었다. 고마웠어요 잡스..!!
GALLERIA DELLA NOSTRA VIAGGIO
Aeroporto Internazionale Kingsford Smith
e Aeroporto di Auckland. verso alla Patagon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