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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6. 2022

봄이 오시는 길목에서

-우리 동네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가 빤히 보이는 언덕 위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Il mare leggendario l'aspetta su una collina che si affaccia sul mare Adriatico.



    서기 2022년 2월 6알 이른 새벽(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새벽을 깨웠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새벽 04시를 막 지나고 있다. 잠시 컴 앞에서 동영상을 편집하면서 뭉기적 거리니 어느덧 새벽 4시 반을 향하고 있다, 한국은 휴일 정오를 지나 12시 반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각..


내가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요즘 우리가 자주 들락거렸던 바닷가 언덕이 펼쳐져 있다. 아드리아해가 무시로 떠밀어낸 바람이 봄을 재촉하고 있는 현장.. 나는 꽤 오래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주말이면 찾아뵙던 조카들을 생각하고 있다. 녀석들이 가장 행복해할 때가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있을 때란다. 왜 그랬을까..




봄이 오시는 길목에서


영상에 등장하는 하니는 지난주 그림 수업이 없던 날을 택하여 바닷가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갔다. 나는 나대로 볼 일이 있어서 그녀의 부름을 받고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가 빤히 보이는 언덕으로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니 그녀가 보이지 않었다. 조금 전 그녀는 전화기 속에서 "응, 계단 아래거든.. 여기서 기다릴게.."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내가 약속의 장소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응, 지금 어디에 있어..?"라며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종려나무 가로수가 끝나는 지점보다 더 먼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략 난감.. 

해돋이 장소에서 해돋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나.. 그녀가 찍어준 몇 안 되는 사진이다.


종려나무 가로수길의 길이는 대략 2.5km이고 그녀가 이동하고 있는 곳은 해돋이를 만나던 장소로 대략 4km 지점이었다. 왕복 8km가 되는 셈이다.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어서 그녀가 나섰던 길을 따라 걸으며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아서 처음 만난 자연산 미나리 한 움큼을 채취하고 언덕 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기다림.. 



봄이 오시는 길목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미나리를 키운 풀숲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든 봄이든 기다림이든 그 무엇이든.. 누구를 향한 기다림 혹은 무엇을 위한 기다림은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 속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거나 잊고 살던 끈끈한 정(情)이 깃들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 국민가수 조용필 님이 부른 노래 <정이란 무엇일까>의 노랫말은 이랬지..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라고 노래한 정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며 냄새도 맛도 없다. 그래도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가슴에 무지개가 뜬단다. 오래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조카들은 주말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떠났다. 형님과 형수님이 맞벌이를 하시던 때였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일까.. 어른들을 뵐 겸 요양 중이던 할머니를 찾아간 아이들은 그곳에서 끈끈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맞벌이 때문에 바빠서 놓아기른(?) 녀석들이 어느덧 할머니 할아버지와 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한 적 있다. 녀석들은 엄마 아빠로부터 받지 못한 정을 할미 할배로부터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봤더니 그게 정 때문이란다. 정이란 기댈 언덕이자 질기고 끈적거리는 마음이 서로를 이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면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되고 정서가 불안하게 되면 감정 기복이 심하거니 심한 우울 중세를 보인다고 한다. 이런 증상을 불안장애(不安障碍, Anxiety disorder)라 한다. 



불안장애는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이라고 말한다. 불안장애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폐해는 심각하다.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SAD)와 공포증(Specific phobia), 광장 공포증(Agoraphobia), 공황장애(Panic disorder) 등에 빠져든다고 한다.


마른 풀숲 습지에서 자라고 있는 이탈리아 미나리..원산지가 대한민국이란다. 신기해!! ^^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엄마 아빠가 사사건건 "하지 마라"는 부정적인 말을 통해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할 게 뻔하다. 그런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잘 따르기 마련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도 그러할 것. 뜨겁게 사랑하던 사람들도 언제부터인가 사랑이 식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칠 때가 있다. 이때 등장하는 게 '미운 정'이란다. 그래서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연합하여 살게 되면 고운 정 미운 정이 동시에 드는 것이랄까.. 정을 쏟고(고운 정) 정에 울며(미운 정) 살아온 살아온(운명적으로)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란 노랫말이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가 빤히 바라보이는 언덕 위로 겹쳐 보이는 것이다. 


정이란.. 아이가 어미탯줄로부터 이어져 오면서, 아이와 엄마가 소통을 하게 되고 장차 분가하여 멀리 떨어져 지내도 여전히 끈끈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일이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 언덕 위에 서면 봄이 오시는 소리를 마른풀 숲이 듣게 된다. 그 풀숲에는 미나리든 냉이든 달래든 씀바귀 등 봄나물을 내주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며 언덕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행해 손을 흔드는 것이다. 봄이 오시는 길목에서.. 


Notizie di primavera arrivate nel sud d'italia_Buona notizia BARLETTA
il 06 Febbr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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