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바를레타에 찾아온 봄소식
그 언덕에 서면 봄은 저만치..!
서기 2022년 2월 15일 오후, 하니와 나는 시내 중심에서 아드리아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통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로부터 "응, 우리 봄나물 캐던 데.."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볼 일이 있어서 사정상 그녀가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 그녀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종려나무 가로수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후드득거렸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으므로 낭패가 생기기 직전 다시 통화를 했다. 근처에 비를 피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다행히 그곳에는 바를레타 평원에 지어놓은 한 농막 근처였다. 그래서 일단 "그곳으로 몸을 피하라"라고 말하고 바쁜 걸음으로 농막에 도달했다.
그때쯤 하늘은 빗방울을 멈추었다.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황순원 작가가 그린 아름다운 단편 <소나기>의 주인공이라도 될 뻔했을까.. 세상일은 늘 이 모양이다.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은 소년과 소녀.. 바를레타 평원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소나기를 닮았다면, 우리는 그칠락 말락 한.. 한두 방울의 빗방울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있을라고..ㅜ
우리는 그 즉시 바를레타 평원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그녀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떠나기 전 함께 걸었던 곳이다. 아드리아해가 저만치 내려던 보이는 언덕에 서면 봄이 가슴 한가득 안기곤 했던 곳. 겨우내 비바람이 할퀴고 다닌 바를레타 사구의 평원은 봄볕이 이미 지나고 있었다.
내 조국 한국은 여전히 영하권에 머물고 있는데 이곳은 봄이 등을 보이며 아드리아해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어때.. 내 곁에는 그녀가 함께 걷고 있고 무시로 "이것 봐.. 저것 봐"라며 좋아라 말을 시킨다. 농부들이 땀 흘려 가꾼 작물 곁으로 봄나물이 지천에 널린 것이다.
나는 조금 전, 그녀와 만나기 전 평소에 걷던 길을 조금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며 봄나물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집에서부터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바닷가 사구를 구간별로 나누고 각 구간에 자생하는 봄나물을 하나씩 써넣는 것이다. 요긴 냉이 요긴 비에똘라 요긴 씀바귀 요긴 달래 요긴 미나리 등으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놓으니.. 마치 내가 이곳에 농사를 짓고 있는 듯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를 접고 언덕 위에 서면 표지를 완성하겠지.. 그다음 표지에 <그 언덕에 서면 봄은 저만치>라고 쓰고 <하니와 함께>라고 읽는다. 히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녀와 함께 겨울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얼마나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지.. 그뿐인가. 엊그제 만난 봄 같은데 봄날이 저만치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듯 잘 모르는 게 있다. 내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 시간이 늘 곁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사람들은 "다음 기회에.."라며 미루는 일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그린 영화가 있었다. 빠삐용(Papillon)..
내게 매우 감동적으로 남은 영화 빠빠용은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ère, 1906-1973)가 쓴 반(半) 자전적 소설이다. 참 오래전에 봤던 영화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이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명 높은 감옥에 갇혀있다가 탈출을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소설이 아니라 사실을 다룬 영화 빠삐용..
주인공 빠삐용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이유는 감옥살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여 당신의 누명을 벗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유 속에는 장차 당신을 감옥에 보낸 검사색휘와 판사색휘 혹은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빠삐용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하게 된 동기부여가 어떠한지 누명을 써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하필이면 요즘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2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낯 뜨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냥 낯 뜨거운 게 아니라 한 검사색휘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대통령에 출마한 이유를 보면 간단하다. 스스스로 지은 죄를 세탁해 보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래서 상대편에서는 이를 두고 <본부장> 비리라고 말한다. 본부장이란 본인 부인 장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검찰의 본분을 망각한 무리들의 수장을 가리킨다. 검찰 쿠데타의 주역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기막힌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의 낯 뜨거운 풍경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검찰의 역할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법집행기관이자 인권보호기관이다. 그런 까닭에 검찰은 헌법가치를 수호하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며, 적법절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정의 실현에 기여한다. 아울러 부정부패 범죄에 적극 대응하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판으로 도망쳐온 한 대통령 후보란 녀석, 본인은 물론 마누라와 장모 등 주변의 인간들 전부가 검찰의 역할은 물론 공정과 상식을 망각하고 양아치와 조폭 혹은 포주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랄까.. 나라의 근간이어야 할 검찰색휘가 돈과 권력과 계집질에 미친 나머지 나라와 국민을 볼모로 생쑈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은 이런 색휘들 때문에 고도 기아나의 악명 높은 감옥에 수감되었을 것이라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죄가 전무한 조국 전 법무장관을 탈탈 턴 것을 참조하면 녀석은 장차 개망나니로부터 세꼬시 만들 듯 난도질을 당하고도 남을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같거나 비슷한 처지의 빠삐용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 이유가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탈출에 실패하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사느냐 죽느냐.. 요즘 대통령에 출마한 한 녀석이 빠삐용과 더불어 겹쳐 보이는 건, 녀석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 때문이자, 두 사람이 준 매우 중요한 메시지 혹은 교훈 때문이다.
어느덧 사흘 전.. 하니와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평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곳은 사구 너머로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가 빤히 보이는 곳으로 양배추의 추수가 끝나는 한 농지였다. 우리는 평원을 가로질러 평원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로 나아갈 요량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를 만나 허락을 얻어야 했다. 길도 없는 남의 토지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하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허락을 받기 위해 도착한 그곳에 수확을 마친 양배추들이 나의 뷰파인더를 유혹하는 것이다. 나는 그 즉시 주인에게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양배추를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 "네, 그렇게 하세요"란 대답은 단박에 이어졌다. 내 앞에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애원하듯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남긴 기록들이 포스트를 장식하고 있다. 독자님들과 이웃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사진과 여행을 취미로 살아왔던 나를.. 수렁(?)에서 건진 건 다름 아닌 세상천지 빼까리로 널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큰 기쁨을 만나는 일이자 삶의 목적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 50년을 지나면서부터 운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운명을 깨닫게 된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며 좋은 것만 먹는 등 좋은 것과 사랑하는 일에만 매달려도 인생은 너무 짧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인생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하늘나라에서 떠난 여행지..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이었으며, 수 조개 이상의 별들이 빼곡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고 있는 지구였다. 우주에 비교하면 모래 한 알 크기보다 더 작은 우리 행성에서 생물로 태어 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인간으로 태어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 보다 더 어려운 인간의 탄생.. 그 인간의 유효기간(?)은 100년도 채 안 된다. 100년도 채 안 되는 인생들이 불로초를 찾아다니는 세상..
일찍이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기막힌 삶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녀의 작품 <예술가의 십계명>을 통해 신을 갈망하는 인간에게 해답을 던진 것이다. 우리네 인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당신의 작품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랄까.. 그녀가 던진 십계명 중 첫째 계명에는 이렇게 썼다.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예술가의 십계명 원문_Decálogo del artista
I. Amarás la belleza, que es la sombra de Dios sobre el Universo.
II. No hay arte ateo. Aunque no ames al Creador, lo afirmarás creando a su semejanza.
III. No darás la belleza como cebo para los sentidos, sino como el natural alimento del alma.
IV. No te será pretexto para la lujuria ni para la vanidad, sino ejercicio divino.
V. No la buscarás en las ferias ni llevarás tu obra a ellas, porque la Belleza es virgen, y la que está en las ferias no es Ella.
VI. Subirá de tu corazón a tu canto y te habrá purificado a ti el primero.
VII. Tu belleza se llamará también misericordia, y consolará el corazón de los hombres.
VIII. Darás tu obra como se da un hijo: restando sangre de tu corazón.
IX. No te será la belleza opio adormecedor, sino vino generoso que te encienda para la acción, pues si dejas de ser hombre o mujer, dejarás de ser artista.
X. De toda creación saldrás con vergüenza, porque fue inferior a tu sueño, e inferior a ese sueño maravilloso de Dios, que es la Naturaleza.
추수가 끝난 평원에서 만난 양배추의 잎사귀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충만했다. 여태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만나지 못한 조물주의 걸작을.. 먼 나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평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앞에서 두 사람을 소환했다. 빠삐용과 어느 검사 색휘..
빠삐용은 더 썩을 데도 없는 검사와 판사 색휘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감옥 생활을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판검새는 나라와 국민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
빠삐용은 탈출에 성공하여 그들을 고발할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검판새들은 허구한 날 룸살롱을 들락거리는 등 국민들의 바람을 뒤로하고 사회악을 자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이 포스트를 접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어떠할까.. 빠삐용이 절해고도에서 절치부심(切齒腐心) 세 번째만에 탈출에 성공한 후에 듣게 된 하늘의 음성을 놀랍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에게 정곡을 찌른 하늘의 음성.. 어느 날 그는 염라대왕 앞으로 가게 된다.
"네 죄를 알렸다..?!"
"난 죄가 없소! 내 죄가 뭐요..?!"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야..!!"
"무슨..?!"
"인생을 허비한 죄로 너를 고발한다. 유죄!!"
하니와 함께 다녀온 봄나들이.. 바를레타 평원에 널브러진 양배추 잎사귀에 깃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만나 행복했던 시간들..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고 하늘나라에서 잠시 허락한 소풍을 통해 "무엇을 보고 돌아갈 것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깃들면 신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지.. 양배추 잎사귀에도 신의 그림자가 깃든 아름다운 봄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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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17 Febbr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