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24. 2022

그녀의 소묘(素描)에 깃든 시간들

-기록, 그녀의 시간


도전의 도시(La Disfida di Barletta)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기적 같은 일..?!!



   

Disfida di Barletta


La Disfida di Barletta fu uno scontro tenutosi il 13 febbraio 1503 nella mattina di Sant'Elia (in territorio di Trani, all'epoca dei fatti sotto giurisdizione veneziana), fra tredici cavalieri italiani (sotto l'egida spagnola) e altrettanti cavalieri francesi. Il confronto finì con la vittoria degli italiani.

Ancora nel XXI secolo si può osservare l'edicola con l'epitaffio che Ferrante Caracciolo, I duca di Airola, fece erigere nel 1583. [1] Il monumento fu recuperato nel 1846 a cura del Capitolo metropolitano di Trani. Nel 1903 vennero aggiunti i versi di Giovanni Bovio.



루이지의 화실로 가는 길에 만나는 바를레타의 정체성이 담긴 라 깐띠나 델라 스퓌다(La Cantina della Sfida).. 1503년 2 월 13일 아침, 이곳에서 13명의 이탈리아(통일 이전 스페인 점령 당시) 기사와 많은 프랑스인 기사들이 묵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프랑스 기사들이 이곳의 기사들을 '겁쟁이' 등으로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자, 이를 참지 못한 이탈리아인들이 프랑스 기사들과 13:13의 결투(Sant'Elia: 오늘날 뜨라니(Trani) 지역)를 벌이게 된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인들이 승리를 하게 된다. 그 역사적인 장소가 이곳 깐띠나 델라 스퓌다에서 기념되고 있는 것이다. (위 자료 번역: 역자 주)



그녀의 소묘(素描)에 깃든 시간들




    서기 2022년 2월 23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의 그림 수업을 끝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밀린 숙제(?)를 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2월 현재까지 벼르고 벼르다가 사진첩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첩 속에는 대략 2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기록에 빼곡했다. 그 가운데 몇 장의 기록들만 간추려 포스트에 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다시 그녀의 작품 한 점이 완성되면서 기록의 속도에 힘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기록들을 살펴보니 그녀의 소묘 가운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시간들이 연필과 까르본치노(Carboncino, 목탄)에 묻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간 싸움.. 집중에 집중을 더한 그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먼저 기록된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란다> 편을 통해 우리가 이곳 바를레타에 온 이유 등에 대해 설명을 곁들인다.




기회는 단 한 번 뿐이란다


우리가 바를레타에 둥지를 다시 튼 이후 잠시 돌로미티를 다녀온 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월 수 금) 하니의 그림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평생을 미룬 소원이 그림 그리기였지만, 한국에서 다년간 그림에 매달렸어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을뿐더러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은 늘 불만이었다. 한국 화단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녀의 작품에 묻어나면서 '당신만의 작품'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된 기초 과정이 소묘(Disegno)였다. 



루이지의 지도로 이어지고 있는 소묘 수업은 그녀를 매우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하루 3시간씩 이어가고 있는 수업은 까발레또(Cabaletto, 이젤)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무념무상.. 그녀는 집중에 집중을 더하며 행복해하는 것이다. 


최근 두 달 동안 그녀의 소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졌으며, 루이지로부터 "흡족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한 달에 12번의 수업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 장면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록하는 나 또한 흡족해하고 있는 것. 



그림 수업 초기에는 루이지의 질타가 이어지면서 기가 많이 꺾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소질이 없는가 봐.. 그만두고 싶어"라며 투덜거리곤 했던 그녀가 요즘은 수업이 있는 전날부터 소풍 가는 날을 계수하는 아이들처럼 설레곤 하는 것이다. 또 수업이 끝나면 피곤할 텐데 그녀를 흥분시킨 만족감 내지 성취감은 능력 이상의 체력을 소모시키다가 잠시 후 곯아떨어지곤 한다. 



나의 유년기.. 잔대가리 굴리며 한 달치 일기장을 미리 써놓고 동무들과 놀기 바빴던 녀석이 밥도 안 먹고 노는데 정신이 팔린 거랑 무엇이 다를까.. 살다 보니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삶.. 한 번 밖에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잠들 때도 머리맡에 두고 지야 한다. 이번에는 꼰대 소리를 들어볼까..



공부하지 마시라. 제발 공부하지 마시라.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당신의 아름다운 동심에 황칠을 하게 된다. 지울 수 없는 황칠이 당신의 감성을 깊이 잠들게 할 것이다. 아들 벌에 불과한 루이지는 그녀의 그림 수업 중에 늘 이와 같거나 비슷한 말을 한다. 그가 오히려 인생의 선배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는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가볍게 시작하여.. 보다 세심하게 하는 작업은 마지막 단계라고 말한다. 대상을 그대로 베끼는 복사기가 되지 말고 대상을 이해하려 애쓰시라.. 그렇게 진행된 소묘 작품이 누드 소묘 외 어느덧 여덟 점이나 탄생했다. 불과 두 달만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이다.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며 꼼꼼하고 치밀한 그녀의 취미는 음악 감상과 그림 그리기 그리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다. 요즘 그녀는 가끔씩 후회 같은 말을 흘리곤 한다. 안 청춘이면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해 본 말이다.


"10년만 더 젋었다면.."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씩 그림 수업을 한다. 한 달에 대략 12번의 수업이 이어지고 한 번의 수업은 3시간 동인 이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하소연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3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까발레또 앞을 지키는 것이다. 청춘들도 힘들거나 지겨울 수 있지만 불평한 번 내놓지 않는다. 한두 번 내놓았을까.. 아주 가끔 내뱉은 불평이 10년만 더 젊었으면..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동시통역으로 그녀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저렇게.. 루이지의 지도를 그대로 통역하는 한편 그의 가르침이 어떤지 등에 대해 설명을 곁들이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나의 통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림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자꾸만 재촉하는 듯한 뉘앙스가 말끝에 묻어나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며 매시각 칭찬해도 모자랄 터인데 수정에 수정을 더하는 통역이 잔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일이 못마땅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당신의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면 이혼하게 된다"는 말이 그것일 것이다. 듣는 사람은 얼마나 힘이 들까.. 그땐 속이 뒤집어진 듯한 발언을 쏟아낸다.


"니가 한 번 해보셈!!(투덜)"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 자나요!!(투덜)"



그런 얼마 후부터 나는 꼭 필요한 통역 외에 어떤 말도 거들지 않았다. 자칫 좁쌀염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잘하자고 하는 일에 조급함이 깃들면 더 늦어지는 것이랄까. 그때마다 루이지는 두 사람의 심기를 파악하고 이렇게 말했다.


"천천히 가는 게 빨리 가는 지름길입니다. 차근차근히.. Piano Piano..! ^^ "



이렇듯 욕심을 부리는 우리에게 아드리아해는 드 넓은 가슴을 내주며 토닥토닥..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우리 곁을 지나는 동안 그녀의 소묘 작품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루이지가 놀랐다. 나도 속으로 즈음이 놀라고 있었지. 그동안 대여섯 작품이 그녀의 손에서 탄생을 한 것이다. 처음.. 수업 횟수가 서너 차례 많게는 여섯 차례에 이르던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세밀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 그녀는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눈에 습포를 하고 쉬며 짬짬이 눈에 점안을 한다. 안구 건조증에 피로감이 더한 것이다. 당신의 전부를 담아 연필과 목탄을 백지 위에 옮기는 일.. 수업이 시작되면 그녀가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화실 밖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쐰다. 그때 만난 풀꽃들이 한 번 두 번 내 앞에서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일부러 집에서 데워온 우유는 물론 따뜻한 차가 있어도 시간이 아까워 시종일관 까발레또 앞은 떠나자 못하는 그녀.. 어느 날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퓌렌쩨서 만난 한 예술가..



그녀는 루이지의 화풍애 매료되어 이곳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겼다. 도전의 도시 바를레타..



누가 일부러 그러자고 한 일도 아닌데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 바를레타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과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를레타의 경우의 수만 놓고 보더라도, 바를레타 인들이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방지고 모욕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프랑스 기사들을 물리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콧대 높은 프랑스 기사들을 물리친 데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법칙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서기 2022년 2월 23일에 완성한 마에스크로 카피(Maestro copia) 작품


인생을 사노라면 기회가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잘해봤자 한 두 번이 고작인 기회.. 그 가운데는 위기로 부르는 '위험한 기회'도 있다. 언제인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할 때 그녀와 나눈 이야기가 있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챠이텐 화산(Chaitén (volcano))이 폭발했을 때 남긴 이야기 속에 그녀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에게 기회가 없을 것이라 절망하고 있을 때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챠이텐 화산이 사화산이라 믿고 있었지. 그런 어느 날 폭발을 한 활화산이었어. 당신 속에 잠재하는 용암들이 언제 들끓어 폭발할지 아무도 몰라.."


다음 수업에 시작될 마에스트로(Maestro)의 남자 누드 작품


그땐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의 그림시장(?)을 무한 기웃거렸다. 전시회도 했다. 그러나 당신의 헛헛한 속을 달래주기는 커녕 실망만 더해주었다. 그런 어느 날 퓌렌쩨서 살면서 한 예술가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감동의 언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심장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듯한 묘한 마력이 느껴져.."



그녀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겠다고 말한다. 그녀를 둘러싼 시간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그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하늘이시여.. 이 여인을 도우소서!!



*오늘 브런치북 AI클래스 프로젝트 <더 멀리 더 먼곳으로>를 발행했습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Un ottimo record per una settimana della Disfida di Barletta
il 23 Febbr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