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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3. 2022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빨간 우의

-돌로미티 리푸지오 누볼라우 걸어서 가는 길


어디론가 멀리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하니와 나는 최초의 약속을 어기고 마침내 빠쏘 디 누볼라우(Passo di Nuvolau)로 가는 길에 접어들면서 그저 앞만 보고 걸어야 했다. 우리 앞에 길게 그어진 산길은 생각보다 길고 멀었다. 이때부터 입고 온 우의를 배낭에 챙겨 넣고, 안 청춘의 고난의 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누군가 등 위에서 떠미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래서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한 법이지..!



우리가 등산복 차림 위에 우의를 입은 장소는 빠소 디 지아우(Passo di Giau) 고갯마루였다. 참고로 처음 이 포스트를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관련 정보 일면을 전해드린다. 빠소 디 지아우의 해발 높이는 2,236m이며, 이탈리아 벨루노 지방(provincia di Belluno)의 꼬르띠나 담빼쬬(Cortina d'Ampezzo)에서 가깝다. 꼬르띠나 담빼쵸는 2026년 동계올림픽을 밀라노와 공동 개최하는 장소로 정해져 있다.



 처음 돌로미티를 여행할 계획이 있으면 이 도시를 알아주시는 게 매우 바람직 하다. 돌로미티는 동부지역에 담빼쬬에 이어 서부 지역에는 볼싸노(Bo;zano)가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지역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위치를 확인하게 될 것이나 초행길의 트래커 혹은 여행자들이 이 지역의 입체적인 지형에 대해서는 난감할 수 있다. 


군에서 독도법을 숙지한 사람들이라면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또 요즘에는 GPS 내비게이션 앱이 휴대폰에 장착해 있어서 특정 목적지로 이동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 보면 사방이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당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할 것이다. 워낙이 방대한 지역이자 곳곳에 널브러진 풍광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곳을 다녀간 적지 않은 분들이 길라집이를 대동하고 길을 나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 포스트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하니와 나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 적지 않은 이미지 트레이닝과 자료를 챙겼지만, 길을 찾아 나서는데 적지 않은 혼란을 겪기도 했다.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저만치 돌아다니는 수고를 일삼았던 것이다. 그렇게 두 해를 다녀오니 돌로미티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값비싼 수업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쏘 디 지아우 고갯마루에서 목적지인 리푸지오 누볼라우(Rifugio Nuvolau) 쉼터의 현재 위치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빨간 우의




    서기 2022년 3월 2일 저녁나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우리가 다녀온 리푸지오 누볼라우로 가는 길을 들여다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 빠쏘 디 퐐싸레고(Passo di Falzarego)의 8부 능선에 위치한 야영지에서 빠쏘 디 지아우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이틀 전 야영지에서 멀지 않은 친쾌 또르리(Le Cinque Torri)를 다녀오면서 피곤을 느껴 한 이틀 쉬었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트래킹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영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아우 고갯마루까지 바람이나 쇨 겸 다녀오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곳은 돌로미티 여행을 할 때 여러 번 이상 오르내렸던 곳으로 매우 친근한 곳이었다. 돌로미티에 첫눈이 오실 때도 발도장을 찍었던 곳. 그런데 그곳에서 바라본 웅장한 봉우리 뒤로 리푸지오 누볼라우가 감추어져(?) 있는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너무 커 보였던 암봉이 쳐다봐선 안 되는 곳쯤으로 여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하니와 나는 봉우리 앞까지만 다녀올 요량으로 빗길을 재촉하며 우비까지 챙겨 입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웬걸.. 봉우리 앞까지 이동하자 슬슬 마음이 달라지며 자꾸만 누볼라우 쉼터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게 아닌가..



이때까지만 해도 발걸음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도무지 몸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돌로미티 풀꽃들이 손을 들어 환영해주고 있었다. 이맘때 돌로미티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풀꽃 요정들.. 돌로미티 여행의 백미 중의 백미가 오솔길 곁에 빼곡하지만 사람들은 곁을 잘 주지 않는다. 그저 앞만 보고 걷기도 힘이 든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고 리푸지오 누볼라우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리푸지오 아붸라우(Rifugio Averau) 쉼터가 빤히 보이는 곳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돌아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미련 곰탱이처럼 갈 때까지 가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말 중에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저만치 우뚝 서 있는 암봉 아래로 리푸지오 아붸라우 쉼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갈 길이 멀다. 아니 까마득하다. 아붸라우 쉼터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빠쏘 디 자아우 고갯마루 아래에 위치한 승강장에서 쉼터까지 운행하는 승강기에 몸을 싣는 것이다. 그다음 우리가 묵었던 야영장에 있는 친퀘 또르리로 가는 승강기에 몸을 실으면 된다. 


우리는 먼저 친퀘 또르리로 갈 때도 승강기 대신 오솔길을 따라 걸어 완주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승강기 대신 발품을 팔고 나선 것이다. 아붸라우까지 가는 여정이 힘들 줄 알았다면 승강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 포스트를 만나신 분들은 승강기를 이용하여 목적지로 이동하시기 바란다. 꽤 힘든 여정이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니 우리와 같거나 비슷한 형편의 트래커들이 부지런히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슬슬 몸이 풀리기 시작하자 풀숲의 풀꽃들이 환하게 웃어준다. 


"(와글와글) 아더찌.. 방가방가~ ㅋ"


"안넝~ 아이들아 반갑구나. ^^"



어디를 가더라도 뷰파인더 앞에 등장한 녀석들과 나누는 인사는 이러하다.  어떤 때는 가볍게 소리를 내뱉으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녀석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아더찌.. 뚝모(숙모) 님이 금방 지나가떠요. ㅋ"



그리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씩 웃는 게 아닌가. 


"아더찌.. 뚝모 님 빨강 우의 있잖아요. 넘 잘 어울려요. 이뿌다니까요.ㅋ"


자료사진은 북부 파타고니아 오로노삐렌의 바닷가 이슬비에 젖은 풀꽃과 하니.. 10년은 더 된 아스라한 풍경


하니는 먼저 빨간색 우의를 입고 있었지만 거추장스러워서 내가 입고 있던 파란 우의와 바꿔 입었다. 그녀의 빨간색 우의는 파타고니아 여행에 동참한 옷으로 10년도 더 된 옷이지만 멀쩡했다. 슬슬 몸이 풀리면서 찬기운도 막을 겸 앞이 터진 우의 대신 판초우의를 닮은 옷과 바꾸어 입은 것이다. 몸이 플리면서 온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녀가 입은 빨강 우의를 볼 때마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오르노삐렌 바닷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는 샛노란 풀꽃들이 그녀와 동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에도 없었던 길을 따라 리푸지오 누볼라우 쉼터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힘이 들어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을 것이다. 힘이 들 때면 그저 앞만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래서 풀꽃들에게 다시 물어봤다.


"아이들아 뚝모님 표정은 어땟어..?"


"아더찌.. 뚝모 님은 우리를 보는둥 마는둥 해떠요. ㅜ"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새까맣게 모르고 그저 앞만 보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돌로미티 금강초롱 꽃(그렇게 부른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세상은 그런 법이다. 당신이 옮다고 믿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릇될 수도 있지.. 그뿐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함부로 말하는 버릇도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풀꽃들은 하니의 속마음을 잘 모른다. 앞만 보며 걷는 것 같아도 주변을 모두 살피고 가는 것이다. 힘이 덜 들 때 그녀는 아이폰을 끄집어내어 풀꽃 요정을 휴대폰에 담기도 했다. 그래서 녀석들에게 묻지도 않는 말을 해 주었다. 이런 걸 팔불출이라고 했던가.. 히히




"아이들아.. 뚝모님 있짜나.. 요즘 그림 선생님 루이지와 이웃의 칭찬이 자자하단다."

"왜죠..? (갸우뚱)"

"응 그건 말이다. 뚝모님 소묘 작품이 여태껏 만난 학생들 작품 중에 최고란다. BRAVA! 씩~"

"와~ 뚝모님 최고~~!"

"그러니까 삐치지 마알기.. 알찌? ^^"


코 앞에 보이던 리푸지오 아붸라우까지 걷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빠쏘 디 지아우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상황을 사람들은 '빼박'이라고 한다. 좌충우돌의 트래킹은 우리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아넣는 한편 천상의 나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Verso Passo Nuvolau 
il 02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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