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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31. 2019

잊혀진 계절, 소주가 생각났다

-목삼겹살에 곁들인 상큼한 비에톨라

언제쯤 소주가 땡길까..?!


출출할 때 시장에서 만난 환상적인 풍경


서울에 살고 있을 때 가끔씩 들른 광장시장의 풍경(아래)이다. 아마도 서울시민들이라면 최소한 한 번은 들렀을 법한 이곳은 '마약김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한 번 먹기만 하면 다시 찾게 되는 묘한 마력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중독성이 대단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중독성 때문에 진짜 마약이 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출출할 때 먹는 김밥이 맛이 없을 리 없겠지만 이곳의 김밥은 입에 넣는 순간부터 그야말로 천국을 경험하게 만든다. 


김밥의 속재료를 분해해 보면 집에서 만든 김밥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에서 만든 김밥은 마약을 넣은 듯 먹는 순간부터 황홀경에 빠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파는 잡채며 순대며 국밥이며 돼지 부산물 등은 애주가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풍경이다.  광장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마약김밥처럼 땡기는(당기는) 게 있는 것. 소주다. 



출출할 때 식전주로 한 잔 들이킨 소주는 식욕을 돋구울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첫 잔의 짜릿한 맛을 이기지 못하고 낮술로 변하여 술이 사람을 은근히 휘잡는 것. 소주는 희한한 사이클을 긋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혼술'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들은 시장의 풍경이 한몫을 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마약김밥이든 혼술이든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분위기에 빠져드는 것. 처음에는 가볍게 한 잔 하고 돌아서고 싶었지만 엉덩이가 밀착된 작은 의자에서 만나는 동석한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당신의 입으로 들어간 음식도 맛있지만 옆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것이다. 마약 김밥이나 소주보다 분위기가 힐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도취된 건 오래된 일이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변한 부산의 자갈치 시장의 노천에서 먹던 곰장어구이는 마약김밥 못지않은 중독성이 있었다. 


연탄불 위의 석쇠에서 구워낸 녀석들은 꼬물꼬물 매콤한 양념을 두르고 소주잔 앞에 놓였던 것. 바로 곁 남항에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비릿한 바닷바람이 한몫 더 거들며 취기를 싹 앗아간다. 물론 종국에는 막차에 몸을 싣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맛 때문에 주말만 되면 산행 후 혹은 일부러 전국의 유명한 맛집 탐방이 이어지는 것. 


요즘 인터넷에 등장하는 맛집과 전혀 다른 차원의 맛이 항구도시 주변 혹은 전국의 재래시장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고 생활중에 몸에 밴 스트레스가 절로 씻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고급 술집에서 마시는 술과 전혀 차원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표 음식이랄까. 






이탈리아인들이 즐겨먹는 야채 비에톨라


이틀 전 오후, 운동을 마치고 귀가한 직후 서둘러 물을 끓였다. 요즘 글쓴이가 즐기고 있는 운동은 해변의 모래밭을 따라 걷는 것으로 왕복 대략 8km에 이른다. 걷기 운동이 마무리될 쯤이면 허기가 몰려들곤 했다. 이때쯤 되면 귀가 후 어떤 음식을 먹을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 든 식 재료를 떠올리게 되는 것. 이날 내가 잠시 미루어 두었던 비에톨라(위 자료사진)가 생각났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가게에서 구입한 녀석은 이탈리아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국민 야채나 다름없다. 우리 식단에 상추 혹은 배추가 국민 야채라면, 이탈리아인들의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녀석인 것. 비에톨라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날 내가 구입한 녀석은 비에톨라 베르데(Bietola verde)였다. 


비에톨라 베르데는 다른 종과 달리 줄기 부분이 약간 질겨 생으로 그냥 먹을 수 없어서 끓는 물에 데쳐야 한다. 따라서 귀가 직후 녀석을 데친 후 냉장고에 보관하고 잠시 숙성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렇게 보관된 녀석은 적당한 크기로 썬 후 '비에톨라 무침'으로 탄생하는 것.(따로 소개해 드린다) 






잊혀진 계절, 소주가 생각났다

-목삼겹살에 곁들인 상큼한 비에톨라


이날은 출출했던 나머지 냉장고에 보관되었던 목삼겹살과 함께 먹기로 했다. 자료사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잘 데친 비에톨라를 돼지 목삼겹살과 함께 먹는 식단을 구상하고 요리에 들어간 것이다. 이른바 돼지 목삼겹살에 곁들인 비에톨라(Coppa di suino con le verdure_bietola cotto)였다. 


한국에서 우리가 먹던 목삼겹살 혹은 삼겹살에 곁들이는 야채나 반찬이 약간 자극적이라면, 이 식단은 매우 담백한 게 특징이다. 


데친 비에톨라에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돼지 목삼겹살을 구울 때 약간의 소금과 후추가 첨가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염장한 올리브 열매를 접시에 올렸다. 매우 단출하며 균형잡힌 식단이다.


또 맛을 음미하는 순간부터 생각이 단박에 달라질 것이다. 비에톨라의 상큼하고 향긋한 식감이 고소하고 말랑거리며 달콤한 돼지 목삼겹살과 어우러지면 천하의 진미가 부럽지 않은 것. 광장시장에서 만났던 풍경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만약 글쓴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음식만 그냥 먹지 않았을 것. 목삼겹살을 비에톨라에 싸 먹기 전(그냥 한 조각 한 조각 잘라 먹어도 된다)에 한 잔의 소주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주가들의 습성이 연이어 나타날 게 아닌가.(후훗 ^^) 어느 날, 배가 출출하고 소주가 급 땡길 때 후다닥 대략 10분 만에 장만한 요리 리체타의 '꿀팁'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목삼겹살에 곁들인 상큼한 비에톨라 맛있게 먹는 요령


우리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 맨 먼저 경험하는 게 있다. 음식은 입으로 먹기 전에 먼저 눈으로 먹는 것. 이탈리아 요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거장 괄띠에로 마르케지(Gualtiero Marchesi선생께서는 후학들을 위해 이 같은 요리 철학 등을 전수한 바 있다. 나는 선생께서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 당신의 요리 철학을 전수받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요리가 제 아무리 화려하다 할지라도 당신이 만든 요리에 대한 철학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로 음식은 혀 끝에 닿는 순간부터 맛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보기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맛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랴. 그리고 음식은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처럼 우리 몸에 매우 유익해야 한다. 세상에 신약이란 따로 없다. 우리 몸에 유익한 음식을 꾸준히 잘 섭취해야 하는 것. 




그래서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라고 했던 게 아닌가. 음식에 포함된 인체에 유용한 성분들은 종국에 당신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명약으로 탄생할 것이다. 물론 돼지 목삼겹살이나 비에 톨라를 섭취하면 그 같은 경지에 도달한다는 건 아니란 건 자명한 사실. 


돼지 목삼겹살은 버터를 약간(프라이팬 위에 묻을 정도이며 대략 5그램이면 족하다) 두른 팬 위에서 노릇하게 잘 굽는다. 이때 센 불로 팬을 달군 다음 고기를 팬 위에 올리고 약불로 천천히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5분 정도 후 고기를 뒤집고 다시 뚜껑을 덮고 5분만 기다리면 끝!  


그리고 다 익은 고기를 건져내 주방용 키킨타월 위에 올려놓고 지방(il Lardo)을 흡수시켜 제거한다. 그다음 중요한 공정은 불규칙하게 둥근 모양의 돼지 목삼겹살을 적당한 크기로 정리(사각으로)해 준다. 그 즉시 목삼겹살은 깔끔하게 변신을 하며 시선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손님상에 올리면 두고두고 칭찬이 자자할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비에톨라 대신 나물무침을 곁들이면 환상적인 궁합을 이룰 것 같다.


본문에 삽입된 마지막 자료사진 한편에 놓인 녀석들이 잘라낸 '자투리'로 인증숏을 남긴 후 내가 먹었던 것. 아울러 접시 위에 몇 알 놓인 염장된 올리브는 씨앗이 포함된 것으로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씨앗을 발라먹는 재미가 있다. 염장 올리브는 약간 짭조름한 맛을 띄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긋한 맛이 우러나며 요리를 맛깔나게 한다. 

그런데 이날 한 가지 빠진 게 있었다. 내가 만든 혼밥용 요리에 소주가 빠진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주변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포도주를 곁들였지만, 가끔씩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재래시장의 추억에 살짝 금이 간 것이다.  소주가 간절히 생각난 리체타였다. 잊혀진 계절.. 구룡령에서 별이 마구 쏟아지던 시월의 어느 마지막 밤, 아내와 함께 마셨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한 날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Coppa di suino con le verdure_bietola cotto
il 30 Ottobre 2019,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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