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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7. 2022

봄이 오실 때마다 보고 싶은 풍경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서


재는 자의 몫은 없단다. 기회는 꿈꾸는 자의 몫이자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어느 봄날.. 날씨는 소풍 가기에 마침맞은 날이었다. 우리는 죽기 전에 딱 한 번만이라도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 중심에서 가까운 퓌에솔레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원을 풀고 퓌렌체서 살고 있었을 때였다. 하니와 나는 퓌렌쩨 중심으로부터 대략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퓌에솔레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우리는 퓌렌체 대성당의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앞에 위치한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적지까지 걸어서 가면 대략 3시간은 소요되는 거리였다. 왕복 6시간.. 퓌렌쩨를 가로질러 퓌에솔래로 가는 길은 관광객들이 쉽게 선택하는 루트가 아니었다. 버스를 이용하면 10분 남짓하는 가까운 곳이지만, 짧은 일정에 쫓긴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내가 이곳 사정을 잘 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어느 날 퓌에솔레애 발도장을 찍게 된 것이다. 그 언덕 위에서 먼발치에 보이는 두오모의 꾸뽈라(Cupola, 돔 혹은 신들이 사는 곳)를 바라보면, 시간을 돌려 미켈란젤로가 살던 시대로 돌아간 듯한 아스라한 느낌이 드는 명소였다. 


사람들이 코 앞에서 두오모 위에 올라 사내를 굽어보는 재미에 빠져있는 동안 나는 먼발치에서 퓌렌쩨를 굽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참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고도.. 그녀와 평생의 소원을 이룬 이곳에서 어느 날 소풍을 떠난 것이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분들이나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이탈리아의 건축물들의 구조가 우리 혹은 다른 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곳의 유명 리스또란떼서 일할 때 묵었던 숙소도 그랬다. 외부와 단절된 높은 담을 가지고 있거나 건물 안쪽에 정원을 만들어 놓고 겉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이탈리아서는 이런 구조의 건축물을 빨라쬬(Palazzo, 궁전)라 부른다. 우리가 아는 궁전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대체로 도로변의 큰 건물이나 아파트는 모두 궁전이라 부르는데 그 의미를 살펴보면 집의 구조가 '어머니의 자궁'을 닮은 것이다. 사방이 막혀있는 구조로 아늑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의 집을 처음 본 꼬레아노 1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문화가 이탈리아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지을 때 담장을 나지막하게 지었다. 주로 돌과 흙을 이용해 쌓은 담장은 듬성듬성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이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구조이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아무개를 불러 음식을 나눌 수도 있고 춘향이가 몽룡이를 훔쳐볼 수도 있는 구조인 것이다. 


퓌렌쩨 시내 중심은 물론 중심에서 점점 외곽으로 멀어지는 퓌에솔레에 입구에 들어서면, 이번에는 성처럼 높게 만들어진 담벼락을 만나게 된다. 담벼락은 내부가 보이지 않거나 석축을 쌓은 곳도 있다. 아무튼 이곳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한 구조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외부와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





봄이 오실 때마다 보고 싶은 풍경


    서기 2022년 3월 16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컴에 로그인 하도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의 모습이 오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사진첩 속의 풍경들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그 풍경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참한 지 꼬옥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풋풋하다. 유년기 때 먼길을 나섰다가 엄마 품에 안기면 폴폴 풍기던 젖 냄새 같은 그리움이 덕지 더억지 달라붙어있는 것이다. 젖 냄새 같은 그리움..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봄이 오실 때마다 열어보고 또 열어본 사진첩 속에 하니와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 현장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던 퓌렌쩨 중심에서부터 퓌에솔레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은 높은 담벼락들이 좌우를 가리고 있다. 서두에 잠시 살펴봤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다. 보다 더 잘 살면 살수록 담장은 드높고 견고하게 쌓여 성(城)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하니는 퓌에솔레 언덕까지 걸어가는 동안 메모지에 빼곡히 적힌 이탈리아어를 주절주절 외우며 이동하고 있다. 


이런 광경은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림 수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초기에는 일일이 동시통역을 하며 수업을 진행하다가, 요즘은 그녀와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와 단 둘이서 수업을 진행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그동안 거실에서 아이패드를 열어놓고 무료함을 달래며 커뮤니티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짬짬이 글을 끼적거리고 있으며 그때마다 3월의 아스라한 추억을 음미하게 된다.


퓌렌쩨 시내 중심에서 도시를 가로질러 이곳 퓌에솔레 언덕 아래까지 천천히 걸어오면, 양쪽이 담벼락에 가로막혀 약간은 답답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찻길에 들어서면 이때부터 막힌 숨통이 확 트이는 듯하다. 이때부터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제정신이 아니랄까.. 


풀냄새와 꽃향기가 흩날리는 천국을 쏙 빼닮은 풍경들이 시선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리고 속 마음은 "이런 데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새들이 우지지는 숲 속이며 먼지 한 톨 날리지 않는 곳이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정치판의 땡칠이의 가십(gossip) 등에 대해 신경을 쓸 일도 없고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릴까" 싶은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 우리와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닌 나라들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도시 퓌렌쩨는 그런 곳이었다. 



그중에 퓌에솔레(Fiesole)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주도 퓌렌쩨에 속한 으뜸의 고장이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퓌에솔레의 역사는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유적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유서 깊은 도시가 어느 날 퓌렌쩨 공국(Ducato di Firenze)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퓌렌쩨 공국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까를로 5세(Carlo V)가 퓌오렌띠나 공화국(Repubblica Fiorentina_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퓌렌쩨를 거점으로 삼았던 도시국가)의 메디치 참주정을 복원시켜 주면서 성립된 공국이다.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던 교황 끌레멘떼 7세(Papa Clemente VII)가 자기 친척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Alessandro de' Medici_1532년부터 1537년까지 초대 세습 피렌체 공작)를 공작으로 꽂아 줌으로써 공화국은 멸망하고 피렌체는 세습군주국이 된 것이다. 이후 토스카나 대공국(Granducato di Toscana)으로 이어지며, 메디치 가문(Medici)은 1737년까지 대공국을 통치하게 된다.



잠시 퓌에솔레를 둘러싼 퓌렌체의 역사를 더듬어 봤다. 어느 나라든 이렇듯 복잡 미묘한 과정을 통해서 한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인지.. 인간사는 이렇듯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돌아가지만 퓌에솔레 언덕은 3월만 오시면 어김없이 새소리와 꽃향기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욕심을 과다하게 부리며 쌓아 올린 역사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시방 우리가 살고 있는 뿔리아 주 바를레타와 사뭇 다른 풍경을 지닌 토스카나 주의 주도 퓌렌쩨의 또 다른 얼굴.. 시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퓌에솔에 언덕에 서면, 내가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도시가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가물 아스라하게 펼쳐질 것이다.



하니와 나는 이 길을 따라 퓌렌체 공국을 만든 사람들과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좋아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퓌에솔레는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봔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소설 데카메론(Decameron) 쓴 배경이다. 퓌렌쩨 시내서 살던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흑사병 때문에 피신을 온 것이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은 시기에 열어본 꽃향기 날리는 사진첩.. 그곳에 봄이 오실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우리들의 삶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재는 자 몫은 없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자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아무 때나 떠나시라! 그때 퓌에솔레를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Un vagone medievale che illumina Firenze_La citta' di Michelangelo
il 16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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