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서
얼마나 아름답길래,,?!!
시방 우리가 살고 있는 뿔리아 주 바를레타와 사뭇 다른 풍경을 지닌 토스카나 주의 주도 퓌렌쩨의 또 다른 얼굴.. 시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퓌에솔에 언덕에 서면, 내가 좋아하는 미켈란젤로의 도시가 아지랑이 속에서 가물가물 아스라하게 펼쳐질 것이다.
하니와 나는 이 길을 따라 퓌렌체 공국을 만든 사람들과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좋아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퓌에솔레는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봔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소설 데카메론(Decameron) 쓴 배경이다. 퓌렌쩨 시내서 살던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흑사병 때문에 피신을 온 것이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은 시기에 열어본 꽃향기 날리는 사진첩.. 그곳에 봄이 오실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우리들의 삶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재는 자 몫은 없었다. 기회는 단 한 번,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자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아무 때나 떠나시라! 그때 퓌에솔레를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서기 2022년 3월 17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컴에 로그인하고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정확한 지명은 퓌에솔레이며 오래전부터 이곳에는 부자들이 살아오고 있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고급빌라들이 즐비한 곳이다. 사진첩을 열어보니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참 아름다운 곳.
중세의 복병이었던 흑사병이 한창일 때 데카메론의 저자 복카치오는 퓌렌쩨 중심에서부터 이곳으로 이동해 데카메론(Decameron)을 썼다. 지금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집이 들어섰지만,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면 시내보다는 사람들의 수가 적었을 것이며,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습관이 된 것처럼 '거리두기'에 마침맞은 곳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퓌에 솔레)의 별장으로 짐 싸서 피난 온 10명의 귀족 남녀( 10명 중 7명이 여성, 3명이 남성)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주절대던 이야기를 썼다는 것.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면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시내서 퓌에솔레로 피신하여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시간을 때운 이야기가 데카메론의 줄거리란다.
I giovani novellatori del Decameron in un dipinto di John William Waterhouse, A Tale from Decameron, 1916, Lady Lever Art Gallery, Liverpool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시시덕 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데카메론 일부를 열어보면 시작은 어둡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정자 좋은 곳이 퓌에솔레란 말이다. 삽입된 자료사진을 참조하면 소설에 등장하는 남녀의 옷차림이 매우 고급스러운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오늘날보다 더 화려한 귀족들의 차림새..
데카메론은 보카치오가 흑사병에 대해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은 퓌렌째서만도 10만 명가량이 사망했다고 전한다. 우리가 살았던 퓌렌쩨 시내의 구조 등을 감안하면 피신할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그때 흑사병을 피해 잠시 피신한 퓌에솔레의 별장에서 일곱 명의 여성과 세명의 남성이, 매일 한 가지씩 총 10가지의 이야기를 10일 동안 하기로 하는 것이다. 참고로 한글판 <데카메론> 줄거리 일부를 소개해 드린다.
루니지아나라는 곳에 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한 젊은 수도사가 그만 한 젊은 아가씨와 눈이 맞아서 몰래 아가씨를 방에 끌어들여 일을 치른다. 젊은 수도사는 수도원장에게 들키지 않고 처녀를 내보낼 방법을 궁리하는데, 궁리 끝에 그 아가씨를 수도원장에게만 보이는 곳에 둔다. 수도원장은 아가씨를 보고 마음이 동하고, 아가씨 또한 수도원장에게 또 마음이 끌려 두 사람은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도사는 이때 나타나, "자신은 이 교파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 신도와 함께 이와 같이 특이한 방법으로 수도를 하는 절차가 있는지는 몰랐다"라고 시치미를 때며 말하여, 자신이 수도원장과 아가씨를 목격했음을 암시한다. 결국 수도원장은 자신의 행동이 발설될 것을 두려워하여, 젊은 수도사와 아가씨의 일을 없던 일로 덮어 두고, 이후로 수도원장과 수도사는 합심하여 종종 아가씨를 방에 끌어들이게 된다.
소설이란 참 재밌는 영역이다. 그게 개연성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가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흑사병을 피해 할 일이 없는 귀족들이 시간을 때우면서 시시덕 거린 이야기 속에 당시 수도원의 풍경이 일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다.
하니는 저만치 앞서 걷고 늘 그렇듯이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길을 나선다. 퓌에솔레가 시내로부터 멀어 보이지만 거리는 대략 10km로 버스를 타면 20분 내외면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짧은 거리를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봄나들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만난 풍경들..
언제인가 짬을 내어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를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시면, 사전에 데카메론을 읽고 방문하면 기쁨이 배가될 것이다. 그때 당신이 여성이면 귀족 여성 7인이 될 것이며, 남성이면 귀족 여성 7인과 함께 오붓하고 질펀한 시간을 보내는 3명의 남성이 될 것이다. 암튼 퓌에솔레의 3월을 맛본 사람들은 두고두고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할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Un vagone medievale che illumina Firenze_La citta' di Michelangelo
il 17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