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게리따 여왕의 혼백이 깃든 풀꽃들
이탈리아 남부에 봄이 오시는 풍경..?!
이틀 전의 일이다. 히니와 점심을 먹고 집 앞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앙증맞은 꽃들이 떼창을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공원 이름은 지아르디니 프라텔리 체르비 (Giardini Fratelli Cervi).. 이 공원의 다른 이름은 바를레타 성(Giardini del Castello)의 이름을 땄다.
이 공원은 바를레타의 스뵈보 성 (il Castello Svevo di Barletta)을 둘러싼 녹색 공간을 말한다. 바를레타 성은 아드리아해에 가깝고 바를레타의 항구와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성의 북쪽 한 면을 제외하면 성의 해자 둘레는 모두 공원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공원 중심에는 분수대가 시설되어 있으며, 동남쪽 출입구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대포 2기가 비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1941년)의 흔적이 남은 식수대가 성의 주 출입구 앞에 시설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남쪽 방향의 출입문 앞에는 작은 원형극장이 시설되어 짬짬이 시민들을 위한 공연 등 행사가 열리곤 한다.
이렇듯 짤막하게 소개된 공원의 지근거리에 우리 집이 있다. 히니와 점심을 먹고 집 앞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 곳이 그런 곳이다. 때는 어느덧 3월 중순.. 절기상으로도 그러하고 3월이면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는 것이다. 같은 시각 한국의 봄 날씨를 참조하면 이곳은 겨울(우기)부터 이미 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관련 포스트에 봄나물을 소개하는 등 봄나들이에서 만난 풍경과 단상을 끼적거렸다. 그리고 이틀 전..
마르게리따 꽃의 크기는 대략 5cm 전후로 거의 땅바닥에 붙어있을 정도로 작다. 사진은 풀밭에 엎드려 찍은 사진이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본 관리인이 씩 웃는다. 어른이가 별짓 다 하는구먼 하는 표정으로.. 히히 ^^
앞서 언급한 바를레타 성 주변의 녹색지대가 파랗게 변하면서 그곳이 점점이 알알이 박힌 앙증맞은 풀꽃들이 떼창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날 나는 평소 궁금했던 앙증맞은 꽃 이름을 공원 관리인에게 물어봤다.
"저기요. 뭐 좀 물어볼게요. 요거(손으로 가리키며) 꽃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효?"
그랬더니 관리인은 나의 물음에 즉답을 하며 묻지도 않는 말까지 덧붙였다.
"네, 이 꽃 이름은 마르게리따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삣싸 마르게리따.. 아시저? ^^"
"네. 알다마다요. 감사합니다. ^^"
포스트를 열면서 스크롤을 내리면서 본 풀꽃의 이름이 마르게리따(Margherita)였다. 누가 언제부터 이 꽃에 여왕의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궁금증 하나가 풀린 것이다. 작은 꽃에 깃든 아름다운 이름의 여성은 사보이아 왕국(Margherita di Savoia)에 등장하는 여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영상을 열어보면 앞서 설명드린 공원의 풍경과 함께 바를레타의 명물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에 깃든 '마르게리따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 마르게리따..
사보이아 왕국의 왕비 마르게리따 마리아 떼레사 지오반나 디 사보이아(Margherita Maria Teresa Giovanna di Savoia)의 생몰연대는 1851년 11월 20일에 오늘날 이탈리아의 토리노(Torino)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26년 리구리아(Liguria)의 보르디게라(Bordighera)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사보이 왕국의 움베르토 1세(Umberto I di Savoia)의 왕비였다.
이탈리아의 첫 번째 왕 뷔또리오 에마누엘라 2세(Emanuele II di Savoia)의 오스뜨리아 출신 아내 마리아 아델라이드(Maria Adelaide di Savoia)는 이탈리아 왕국(통일 이탈리아)이 선언되기 전 1855년에 세상을 떠났다. 마르게리따는 1878년 이래로 세습 공주로서 움베르토와 나란히 있었으며, 1878년부터 이탈리아의 여왕으로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 움베르또의 의사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세련된 의상 등을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상위층은 물론 서민들에게까지 정치력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서 뱅기로 대한민국까지 12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 마르게리따.. 1861년 통일 이탈리아의 국왕 움베를또 1세와 마르게리따 왕비가 1889년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재밌는 사건이 일어난다. 프랑스 음식에 지쳐있던 그녀는 다양한 삣싸(피자)를 맛보게 되었다.
그때 한 삣싸 장인이 그녀를 위해 구워낸 빵이 삣싸 마르게리따(Pizza Matgherita)였던 것이다. 그가 만든 삣싸는 매우 독특했다. 마르게리따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삣싸였는데 삣싸 마르게리따는 뽀모도로(토마토)와 모짜렐라와 바실리코(바질)을 얹어 이탈리아의 국기 색깔을 연출한 것이다. 빨간색은 뽀모도로 흰색은 모짜렐라 녹색은 바실리코로 장식한 것이다. 이런 일화는 너무 유명해서 두 번 세 번 다시 끼적거리기가 미안할 정도랄까..
하니와 함께 집 앞 공원에 들렀을 때 하필이면 곁에 있던 관리인에게 물어본 앙증맞은 꽃 이름이 마르게리따였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말에 덧붙여 삣싸 마르게리따를 언급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바를레타 성 둘레의 녹색공간 빼곡히 마르게리타가 피어 떼창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꽃에 마르게리따란 이름을 붙여주었는지는 기회가 닿으면 알아보도록 한다. 다만, 이 꽃 이름이 마르게리따로 불러진 이유 등에 대해서는 통일 이탈리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녀의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당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 때문에 그녀의 혼백이 풀꽃에 깃들여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르게리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봄날은 간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죽기 전에 딱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오게 됐다. 이사를 오게 된 이유는 하니의 그림 수업 때문이었다. 그녀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가 이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며 화실이 구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이곳에 이사를 온 후 어느덧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최소한 지난 3년 동인 집 앞에 위치한 공원의 변화를 눈여겨보니 마르게리따 꽃이 자지러질 때쯤 봄이 무르익을 때였다. 그리고 어느 날 풀꽃의 떼창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봄날이 가고 있었다.
이날 그녀와 함께 천천히 둘러본 공원과 바를레타 성의 해자 속에는 마르게리따가 눈처럼 뽀얗다.
하니는 가끔씩 "이곳이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한다. 정이 들대로 든 바를레타를 차마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퓌렌쩨와 바를레타.. 두 도시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준 도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기 2022년 3월 20일 오후, 다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볕 고운 화창한 날씨에 주변 도시에서 몰려든 화가들이 사생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년의 두 화가.. 그녀의 눈에 띈 두 화가의 모습에서 당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당장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짧지만 굵고 강한 메시지..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 어떤 일을 마다하리오..!
Nel parco dove risiede l'anima della regina Margherita
il 20 Marz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