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리푸지오 누볼라우 걸어서 가는 길
우리를 따라다니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어떡했을까..?!
우리는 먼저 친퀘 또르리(Cinque Torri)로 갈 때도 승강기 대신 오솔길을 따라 걸어 완주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승강기 대신 발품을 팔고 나선 것이다. 아붸라우(Averau)까지 가는 여정이 힘들 줄 알았다면 승강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 포스트를 만나신 분들은 승강기를 이용하여 목적지로 이동하시기 바란다. 꽤 힘든 여정이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니 우리와 같거나 비슷한 형편의 트래커들이 부지런히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슬슬 몸이 풀리기 시작하자 풀숲의 풀꽃들이 환하게 웃어준다.
"(와글와글) 아더찌.. 방가방가~ ㅋ"
"안넝~ 아이들아 반갑구나. ^^"
어디를 가더라도 뷰파인더 앞에 등장한 녀석들과 나누는 인사는 이러하다. 어떤 때는 가볍게 소리를 내뱉으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녀석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아더찌.. 뚝모(숙모) 님이 금방 지나가떠요. ㅋ"
그리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씩 웃는 게 아닌가.
"아더찌.. 뚝모 님 빨강 우의 있잖아요. 넘 잘 어울려요. 이뿌다니까요.ㅋ"
서기 2022년 3월 28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한동안 돌로미티를 잊고 살았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포스트를 끼적이다 보니 마음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와 우크라이나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이 마음을 뒤흔든 것이랄까.. 다시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하니와 나는 빠쏘 지아우에서부터 누볼라우까지 초행길을 트래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누볼라우 산장 근처까지 이동했으며 하늘에는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발걸음도 많이 가벼워지면서 발밑에 납작 엎드린 풀꽃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마도 녀석들이 없었다면 초행길의 트래킹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로미티 어디를 가도 우리를 따라다닌 풀꽃 요정들.. 인간세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녀석들의 표정은 늘 밝다. 녀석들은 바람을 탓하지도 않고 비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달님과 해님을 바라보며 꽃봉오리를 낼 뿐이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너무도 좋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머니 품에서 멀어지며 맨 먼저 만났던 녀석들..
산골짜기의 도랑에 쪼그리고 앉아 파아란 이끼 틈새로 피어난 앙증맞은 녀석들을 기억하고 있다. 뒷마당을 나서면 누렁이와 함께 반기던 풀꽃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봄이 오시면 그 개울에는 수생식물들이 빼곡했다.
물풀을 들추지 않아도 눈에 띄는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만날 수 있었지. 가끔씩 무당개구리의 빨간 뱃살 때문에 징그러워 놀라기도 했었다. 그땐 배암이 개구리 수만큼 눈에 많이 띄었다. 개울가 언덕배기에는 진달래꽃이 발그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지. 행복했던 유년기의 추억들..
하니와 함께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보니 까마득하다.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도착할 거 같이 가까워 보이던 누볼라우 산장은 여전히 멀어 보이는 가운데 우리를 응원하는 풀꽃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돌아갈 길을 전혀 계수하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며 걸었다. 세상일도 그런 것이지.. 우리가 계수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오죽하면 잠언서(4:23) 저자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했을까..
행운이었지.. 나를 지키고 있는 건 유년기의 추억이 대부분이었다. 머리가 크면서 세상에 부대끼며 상처를 받는 등 도전과 응전을 통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음을 추슬러준 것도 그때의 행복한 추억이었다. 그 기억들이 초행길의 산길에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먹구름이 빠쏘 지아우를 비켜간다. 산기슭애 보이는 고불고불한 고갯길.. 하니와 나는 저 고갯길을 꽤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했다. 돌로미티는 고향처럼 우리를 품어주곤 했지..
다시 돌로미티의 시간이 다가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는 봄이 무르익었지만, 돌로미티는 여전히 겨울이며 봄소식이 들려올 때쯤이면 6월이 될 것이다.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 위에 머물던 구름이 꼬르띠나 담빼쪼(Cortina d'Ampezzo)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구름 아래에 가린 빠쏘 지아우(Passo di Giau) 고갯마루..
목적지인 리푸지오 누볼라우(Rifugio Nuvolau_2,575m)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발아래 가득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풀꽃 요정들이 없었다면, 안 청춘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우리가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니 오솔길을 따라 점점이 박힌 트래커들.. 참고로 빠쏘 지아우의 해발 높이는 2,236m이므로 목적지까지는 대략 300여 미터가 남았다. 깎아지른 절벽길을 돌고 돌아가는 길..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다음에는 꼭 승강기를 타야지.."하고 마음을 먹지만 그게 쉽지 않다. 승강기에 몸을 실으면 아름다운 신의 그림자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더 걸으면 리푸지오 아뵈라우(Rifugio Averau) 산장에 도착하게 될 거다.
돌로미티 여행을 꿈꾸시는 분들께 참고로 알아두시기 바란다. 우리의 목적지인 리푸지오 누볼라우(Rifugio Nuvolau_2,575m) 정상에 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돌로미티의 베이스캠프 격인 꼬르띠나 담뻬쪼(Cortina d'Ampezzo)와 빠쏘 지아우(Passo di Giau) 고갯마루와 빠쏘 퐐싸레고(Passo di Falzarego)와 친쾌 또르리(Cinque Torri) 등을 볼 수 있는 천상의 명소로 불릴만한 곳이다. 우리가 퐐싸레고 고갯마루에서 친퀘 또르리로 가는 승강기 주차장에서 야영을 하는 동안에도 명소를 곁에 두고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ㅜ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Verso Passo Nuvolau
il 28 Marz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