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그녀의 시간
예술가의 길과 보통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길,,!!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가 등을 보이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앞 쪽에 하니가 빛의 마술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렘브란트(Rembrandt)의 초상화(Maestro Copia)를 그리고 있다. 이 화실은 지난달 26일(토요일) 새로 문을 열었다.
렘브란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예 그의 초상화를 팔뚝에 문신을 새긴 루이지는 잠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지난주 금요일 그는 하나가 초상화 정밀 소묘를 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캔버스의 크기는 2호 정도로 '손바닥 그림'을 연상 캐 한다.
그러나 루이지의 작품은 매우 정교하다. 퓌렌쩨 예술학교를 졸업한 그의 경력은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그동안 하니는 루이지가 예술학교에서 배웠던 교육과정(curriculum) 등에 따라 그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과정은 대상을 정확히 보고 그려내는 작업이다. 나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지켜봤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이런 괴정이 한국에 있을 때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퓌렌쩨서 굳이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니의 성에 차지도 않았거니와 도무지 찾지못히여 좌절 직전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퓌렌쩨서 우연한 기회에 한 예술가를 만났는데 그가 지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였다.
그리고 그 즉시 보따리를 싸고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는 목적은 순전히 그녀의 그림 수업 때문이자, 평생의 소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념무상..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면 그림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부터 여태까지 느끼지 못했던 삶의 오르가슴에 빠져드는 것이랄까..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nacque il 15 luglio 1606 a Leida nei Paesi Bassi. Era il quarto di sei figli sopravvissuti all'infanzia su dieci complessivi avuti dalla madre Neeltje Willemsdochter van Suydbroeck. La sua era una famiglia benestante nonostante il padre Harmen Gerritszoon van Rijn fosse un mugnaio e la madre la figlia di un fornaio (è dimostrato dai testamenti dei genitori deceduti rispettivamente nel 1630 e nel 1640). Da ragazzo frequentò la scuola di latino e si iscrisse quindi all'Università di Leida, anche se secondo un contemporaneo mostrava già un grande talento per la pittura: ben presto venne messo a bottega da uno dei pittori storici di Leida, Jacob van Swanenburgh. Dopo un breve ma importante periodo di apprendistato ad Amsterdam con il celebre pittore Pieter Lastman, Rembrandt aprì uno studio a Leida, che condivise con l'amico e collega Jan Lievens. Nel 1627 Rembrandt iniziò ad accettare a sua volta degli apprendisti, tra i quali Gerrit Dou..
루이지와 나는 화실에서 가끔씩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 가운데 '예술가의 삶'을 이야기할 때가 꽤나 된다. 그때마다 루이지는 "나는 너무 가난하다"라고 농담 삼아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게 복 받은 일이다"라며 "예술가의 길이란 그런 게 아닌가"하고 말한다. 그리고 대가들의 삶을 양념으로 털어 넣곤 하는 것이다.
살다 보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예술가의 싦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부와 명예에 심취하는 동안 예술가들은 신께서 허락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특별한 재능과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랄까.. 지난주에 이어 오늘 다시 시작한 소묘 작품에는 여전히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당신의 작품이 등장했다. 그리고 루이지와 함께 짬짬이 렘브란트의 말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주지하다시피 렘브란트의 말년은 엉망진창이었다. 뭐 하나 남아나는 게 없었다. 당신의 아내 사스키아도 죽고 아들 티투스도 죽었다. 그때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은 극에 달하여 사스키아의 묘지터까지 팔아치웠다. 그는 가족과 재산은 물론 명예까지 모두 잃었다. 루이지는 "그는 몇 남지 않은 재산 모두를 카드놀이에 탕진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의 부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그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술가의 길을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남긴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우스광스러운 장면이 대거 등장한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당신의 삶이 웃길 것이다.
화려한 작품 뒤에 가려진 렘브란트의 생애.. 하니는 지난 5개월 동안 일취월장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첫 작품이 나오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루이지였다. 그는 'BRAVA!'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나 또한 그녀가 완성한 작품을 보며 흐뭇해했다. 마침내 그동안 기록해 둔 사진과 영상이 빛을 보게 됐다.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와 함께한 귀한 시간이었다.
영상, BARLETTA, L'OFFICINA DEL'ARTE_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와 함께
*위 영상을 모두 시청하려면 무리가 따를 것이다. 다만,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뒤돌아 보니.. 맨 처음 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걸리 시간은 대여섯 번의 수업(한 번에 3시간)이 소요됐다. 그런데 지금은 두 차례면 완성하는 단계에 와 있다. 꾸준한 연습이 낳은 결과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Un ottimo record per una settimana della Disfida di Barletta
il 06 Aprile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