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와 함께한 4월의 바를레타 평원의 꽃잔치
가슴 후벼 파는 아들과 어머니 마음..?!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변한 곳..
서기 2022년 4월 15일 오전 6시 30분경,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하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날 집을 나선 이유는 이맘때 한창이던 꽃양귀비를 보고 싶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간식을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는 등 간단한 차비로 봄나들이 준비를 마쳤다.
목적지로 가는 여정은 바를레타 시내 중심의 우리 집에서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철길을 지나고, 다시 이탈리아 남부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굴다리까지 가야 한다.
굴다리를 지나면 광활한 바를레타 평원이 이어진다.
우리는 어느덧 집에서 출발하여 30분 남짓 걸어서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그때 만난 아름다운 풍경들..
사람들이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세상은 온통 풀꼿세상..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포도나무가 파릇파릇 새싹을 내놓고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바를레타 평원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때부터 기분 좋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한눈에 봐도 수령 500년이 더 되어 보이는 올리브나무 고목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품을 닮았다.
하니가 앞서 걷고 있는 철길은 이미 폐쇄된 곳으로 레일을 걷어버렸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조물주가 만든 최고의 작품 올리브나무 숲 속으로 이어진다.
이때부터 뷰파인더는 올리브나무 고목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세월이 흐르면 즐거웠던 일이나 슬펐던 일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우리 기억에서 잊힌다는 말. 인고의 세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올리브나무 고목이 인고의 세월을 온몸으로 말해준다고나 할까..
광활한 올리브 나무 과수원 곁으로 흐르는 천변에 유채꽃은 물론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꽃들이 자지러진다.
세상과 담을 쌓고 저희들끼리 옹기종기 살아가는 아름다운 녀석들..
하니와 나는 가끔씩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 대해 하늘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계획을 할지라도 하늘의 도우심이 없다면 행운은 주어지지 않는 것. 어느 날 퓌렌쩨서 만난 한 예술가 루이지(Luigi lanotte)가 우리네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그림 그리기가 이곳 바를레타의 루이지 화실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나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덩달아 행복에 전염되고 있는 것.
저만치 앞서 걷던 그녀가 출출하다며 간식과 커피를 마시자며 과수원 옆 풀숲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간식을 나누고 다시 평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신의 그림자 가득한 풍경들..
이때부터 천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따라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꽃양귀비는 일찌감치 잊었다. 두 해가 지나는 동안 기억에서 멀어진 목적지를 끝내 찾지 못하고 평원 깊숙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꽃길도 있을까..
희한한 일이다. 이곳 바를레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꽃길은 너무도 익숙한지 농부들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풀꽃들은 풀꽃들까지 유유상종(類類相從)..
그렇게 꽃길을 한참 동안 걸을 때 불현듯 <꽃구경>이라는 노랫말과 함께 절절한 노래가 생각났다.
그런 잠시 후 한 소절을 크게 소리 내어 불렀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찔레꽃이 소담스럽게 만발할 때 어머니는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던 기억 저편에서.. 자운영 가득 피었던 벌판에서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을 떠났던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반신불수였다. 말투도 어눌하셨다.
하니가 현재 나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목청껏 소리 내어 부른 한 소절에 속으로 울컥.. 그래서 다시 큰소리로 한 소절을 똑같이 부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그때 그녀가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그게 무슨 노래야..?"라고 물었다. 그래서 "응,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우리 선조님들의 기억 속에 있는 슬프디 슬픈 노래.. 고려장에 얽힌.."하고 말했다. 그래서 천천히 갇는 동안 휴대폰에서 노래꾼 장사익 가수의 <꽃구경>을 찾아 크게 틀었다. 곧 슬픈 멜로디와 함께 진공상태를 닮았던 평원의 도랑 곁으로 '한(恨)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장사익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그녀는 등 뒤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그런 잠시 후 "너무 슬퍼! 틀지 마.. 슬픈 노래는 틀지 마, 엄마 생각나..ㅜ" 하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슬픈 멜로디와 노랫말을 들으며 "엄마도 아들도 가슴이 미어지겠지.."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엄마란 그런 분이시지..ㅜ"라고 말을 맺었다.
노랫말 속의 아들과 엄마.. 두 사람 모두 모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풍경이다.
그게 하필이면 어느 봄날 꽃구경하러 봄나들이하는 날 찾아들었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과 함께.. 이날은 물론 이틀 연거푸 바를레타 평원을 다녀오면서 올리브나무 고목을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넉넉한 할미 할아버지 품은 물론 어미 품이 그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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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16 Aprile 2022, Ls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