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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0. 2022

꽃양귀비 풍경과 바꾼 주차 딱지

-하니와 함께한 4월의 바를레타 평원의 꽃잔치


어느 날 갑자기 가슴속에 환한 등불이 켜졌다..!!



    서기 2022년 4월 19일 저녁나절(현지 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하니와 함께 지난주에 다녀온 봄나들이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노트북을 가득 채운 새빨간 꽃양귀비.. 우리는 꽃양귀비가 떼창을 부르며 자지러지는 풍경을 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꽃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곳에는 한 농부가 막 일을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그래서 꽃밭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에 허락을 얻어야 했다.



생뚱맞은 농부 아저씨


나: 아저씨, 꽃양귀비 밭으로 들어가도 돼요?

아저씨: 어디에 사세요?

나: 바를레타 중심에요.

아저씨: 무슨 일로..?

나: 아.. (손으로 가리키며) 하니가 이곳에서 그림 수업을 받아요.

아저씨: 몇 년 살았어요?

나: 4년 쨉니다.

아저씨: (뭉기적 뭉기적)..!

나: 꽃양귀비 밭에 들어가도 되죠? 사진 좀 찍게요.

아저씨: (그제사) 네..



꽃양귀비가 떼창을 부르는 곳은 농부 아저씨가 농사를 짓는 곳(?)이었다. 그런데 또래의 아저씨는 웬 중국인(이곳 사람들은 동양인들을 주로 치네제(Cinese, 중국인)로 생각한다)이 아침부터 나타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꽃양귀비 밭에 들어가도 좋으냐는 물음에 어디에 사는 게 궁금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또 몇 년 살았으면 무슨 소용이랴. 히히.. 암튼 살다 보면 별 사람들 다 만난다. 그렇게 해서 후다닥 꽃양귀비 밭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꽃양귀비,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다




꽃양귀비가 빼곡한 이곳까지 오는 여정은 이랬다. 하니와 나는 지난 4월 15일과 16일 이틀 연거푸 시내 중심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바를레타 평원을 봄나들이 삼아 다녀왔다. 집에서부터 바를레타 평원을 돌아온 시간은 대략 5시간이 소요됐다. 거리로 따지면 15km 남짓하다. 그러니까 이틀 동안 우리가 걸었던 거리는 대략 30km로 돌아오는 길은 파김치가 되었다. 무슨 일이든 무엇이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청춘 때는 잘 몰랐던 체력이 안 청춘을 맞이하면 수고가 따라다닌다. 



우리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이곳에서 대략 1.5km 더 걸아가면 바를레타 시내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 만난 꽃양귀비 세상.. 이틀 연거푸 바를레타 평원으로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두 해 전 하니와 함께 만났던 꽃양귀비 밭을 찾고 싶었다. 희한한 일이다. 그때 다녀온 장소는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딴 장소에서 꽃양귀비 밭을 만났던 것이다.



꽃양귀비가 빼곡한 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전 농부의 질문이 무색하다. 꽃들은 이미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붉은 꽃양귀비는 어느덧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고 열매들이 빼곡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곳 꽃양귀비 밭에는 농사를 짓지 않은 곳이었다. 만약 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려본들 작물이 제대로 자랄 리 없어 보이는 밭떼기.. 이곳 바를레타에 살면서 터득한 정보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웬만큼 작은 경작지는 그냥 풀꽃들 세상이 되는 것이다. 



풀꽃들의 세상.. 나는 여태껏 살면서 이런 세상을 처음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가 어느덧 햇수로 4년째가 되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하니는 창궐하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두 번 피신을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열심히 그림 수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짬짬이 산책 겸 운동 삼아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니는 동안 정이 들대로 든 곳.



우리는 어느덧 이곳이 고향(조국) 같은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 이탈리아에서 뿔리아 주(Regione Puglia)가 주는 풍요로움은 여느 도시와 달랐다. 도시인들과 시장경제의 빠듯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곳. 도시 중심에는 시민들이 붐비지만 그들 또한 여유가 넘친다. 많은 것을 소유해서 풍족한 게 아니라 욕심이 없는 사람들.. 



어느 날 생면부지의 동양인을 만난 농부 아저씨가 우리를 왜 궁금하게 여겼을까.. 농사도 안 짓는 버려진 땅에 빼곡하게 피어있는 꽃양귀비 밭에 그냥 "네, 들어가도 돼요"라고 허락을 해도 될 텐데 꼬치꼬치..ㅎ 



그러거나 말거나.. 하니와 나는 잠시 꽃양귀비 삼매경에 풍덩 빠진 채 잠수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풀꽃들..



우리가 태초 이후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이 이런 곳이 아닐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려있고 빼곡한 곳..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이나 외로움 또는 진정한 박탈감은 대자연으로부터 무한 멀어지면서 생긴 일종의 정신병 인지도 모를 일이다. 떼창을 부르는 꽃양귀비만 바라보고 있는데 가슴에 환한 등불이 켜진 느낌은 물론 알 수 없는 오르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다.



언제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첩을 열어놓고 포스트를 편집하는 동안 농부 아저씨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날 아저씨는 꽃양귀비 밭 곁에서 어슬렁 거렸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곳을 떠나면서 인사를 건네고 떠나긴 했는데.. 글쎄,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니 농부 아저씨가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을만한 곳이 못되었다. 



영상, BARLETTA, IL PAPAVERO_꽃양귀비,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다




갑자기 머리가 쭈뼛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느 봄날.. 우리가 이곳에서 잃어버린 꽃양귀비 밭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 천사가 나타났을까..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은 찾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법이다. 공교롭게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성(聖) 금요일 십자가의 길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집 앞 도로변에 주차해 둔 자동차에 딱지(벌금)가 붙었다. 자동차를 다른 곳으로 치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사가 진행되는 주요 도로변에 한시적으로 주차금지를 해 놓았던 것이다. 우리가 꽃양귀비 밭에서 뭉기적 거리지 않았다면 주차 딱지를 뗄 이유도 없었겠지..ㅜ


Festa dei fiori di aprile nella piana di Barletta con Mia moglie
il 20 Aprile 2022, Ls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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