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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4. 2022

시에나, 설렘 가득했던 시간들

-중세시대의 아름다운 도시 시에나 여행


퓌렌쩨(FIRENZE)와 시에나(SIENA) 어떻게 다를까..?!!



   오랜만에 열어 본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의 풍경.. 전차(TRAM) 한 대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Stazione di Firenze Santa Maria Novella)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전차 뒤로 거뭇한 탑이 보인다. 퓌렌쩨의 유서 깊은 바실리카 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교회 종탑의 모습이다. 


지금은 수리가 끝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는 공사 중이었다. 종탑 뒤 퓌렌쩨 중심에 우리가 살던 집이 있고 걸어서 5분이 채 안 걸리는 지근거리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과 시에나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어느 봄날(정확히 4월 24일) 하니와 나는 이른 새벽에 도시락을 장만하고 시에나로 봄나들이를 떠났다. 



버스가 시에나로 출발하면서 낯익은 풍경들이 곧 등장한다. 위 자료사진은 우리가 여러 번 걸었던 곳으로 퓌렌쩨 외곽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가면 곧 수도원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시에나 방면으로 빠르게 이어진다. 나는 버스를 타자마자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틀 전 버스표를 예매할 때 앞 좌석 두 자리를 끊었다. 오래된 습관이다. 여행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눈앞을 스쳐가는 풍경은 설렘 가득하다. 새로운 풍경이 등장하는 곳.. 그곳은 호기심이 따라다닌다. 유소년기 때부터 백발이 성성한 지금도 이런 습관은 여전하며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 설렘 반 호기심반.. 여행이 끝나고 나면 기록할 요량으로 찍어둔 영양가(?) 없는 사진들도 시간을 지내놓고 보면 새로운 감흥이 일곤 한다.



영상, DA FIRENZE A SIENA_ 피렌체서 시에나 가는 길





시애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풍경..



시에나는 퓌렌쩨(FIRENZE)와 함께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한 매우 아름다운 도시로, 인구수는 대략 5만 4천 명에 이른다. 퓌렌쩨에 인접한 이 도시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라 반까 몬떼 데이 빠쉬 디 시에나(la 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가 1472년에 세워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퓌렌쩨와 더불어 풍부한 역사적 유산을 지녔지만, 아쉽게도 퓌렌쩨의 명성에 가려진 곳이랄까.. 


시에나는 우리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로부터 남쪽으로 대략 50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솔직히 도시의 모습만 놓고 보면 시에나가 퓌렌쩨 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눈높이 등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시에나의 첫인상은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와 많이도 달라 보였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으로 이루어진 듯한 풍경은 시에나가 독보적일 것이다. 퓌렌쩨가 아르노 강을 낀 평지라면 시에나는 해발 높이 320m에 달하는 구릉지대에 건설된 도시이다. 마치 성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퓌렌쩨가 르네상스의 발상지였다면, 시에나는 중세의 전통을 이어간 도시로 중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중세로부터 한참이나 앞서간 현대인이 바라본 시에나의 풍경이 이러한데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퓌렌쩨와 시에나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퓌렌쩨 공국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도시가 잘 짜인 요새처럼 생겼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질투가 날만했다. 그래서 어느 날 '수탉 전쟁'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수탉 전쟁은 오늘날의 통일 이탈리아 이전 중세(1380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퓌렌쩨와 시에나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질투를 하던 어느 날 벌어진 전쟁이었다. 지근거리를 사이에 둔 두 공화정이 땅뙤기를 조금 더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두 공화정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각자의 나라에서 수탉이 우는 시각에 기병이 달려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두 공화정이 합의한 수탉에는 고만고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시에나는 덩치가 크고 울음소리가 우렁찬 흰 닭을 선택하여 잘 먹였다. 녀석은 배가 부르면 힘차게 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퓌렌쩨는 작고 덩치가 탄탄한 검은 닭을 선택하여 저녁을 굶겼다. 시에나 쪽에서 봤을 때 녀석이 제대로 울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단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퓌렌쩨 공국이 승리를 한 것이다. 



시에나가 잘 먹인 흰 닭은 배가 불러서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쫄쫄 굶긴 퓌렌쩨의 검은 닭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새벽 일찍 밥 좀 달라고 울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퓌렌쩨는 시에나의 성에서 불과 1.6km 지점까지 접근해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 이게 그 유명한 수탉 심벌의 배경이자 시에나가 저물어가는 이유가 되었다는 것. 관련 포스트에 시에나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실었다.



우리는 어느덧 시에나에 입성을 했다. 그때 만난 풍경들..



시에나가 초행길의 우리를 환영이라고 해 주듯 도시로 이어지는 길에 알 수 없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느낌들..



이때부터 하니와 함께 시에나 중심의 삐아싸 델 깜포(Piazza del Campo, 깜뽀 광장)를 돌아올 때까지 초주검이 되도록 걷고 또 걸았다. 준비해 간 도시락을 챙겨 먹으며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버스 터미널에서 천천히 걸어 시에나 중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맨 먼저 만난 교회(Basilica Cateriniana San Domenico) 앞으로 하니가 걸어 기고 있다. 그녀가 걷고 있는 좌측으로 이동하면 곧바로 시에나의 명성에 걸맞은 풍경이 등장한다.



토스카나 주의 명물 사이프러스가 에워싼 오래된 교회.. 이 교회는 시에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로 알려졌으며, 산 도메니코 광장(il piazzale di San Domenico)과 뷔아 델라 사삐엔싸(via della Sapienza) 사이에 위치(43°19′11.5″N 11°19′36.1″E)해 있다. 교회는 13세기에 지어졌으며 그다음에 확장되었다고 전한다. 시에나의 성 까떼리나 머리 유물(La testa-reliquia di santa Caterina da Siena)을 간직한 곳이다. 또 이 교회는 시에나 성인과 그녀의 삶에 관한 몇몇 에피소드들 때문에 까떼리나 교회로 불린다는 것.



하니가 저만치 앞서 간 골목.. 교회 옆길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성을 닮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장차 만나게 될 시에나 성당(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ta Maria Assunta)이었다.



이탈리아 도시들 마다 건축되어 있는 두오모의 종탑의 높이는 도시의 어떤 건축물보다 높이 건축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의 두오모 종탑도 도시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 시에나 성당은 독보적이다. 시에나는 해발 높이 320m에 달하는 구릉지대에 건설된 도시라고 했다. 퓌렌쩨가 아르노 강가 편평한 곳에 세워졌다면 시에나는 산꼭대기(?)에 세워진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가 만나게 될 명소를 찾아가는 길은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피곤이 가중되었다고나 할까.. 맨 처음 만난 교회 바실리까 까떼리나 산 도메니코의 진가를 알 때까지 파김치가 되었다. 그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계속>


Un Viaggio nella bellissima città di Siena nel tempo medievale.
il 23 Aprile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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