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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3. 2022

춘향제, 외줄 타기 묘기 보셨나요?

--이탈리아서 만나는 우리의 멋


우리네 삶은 줄타기 인생일까..?!


     서기 2022년 4월 22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꽤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그곳에는 해마다 음력 4월 8일에 열리는 남원의 전통 민속 제전 (춘향제(春香祭))의 한 모습이 등장했다.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는 줄광대의 모습.. 이때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니까 서기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해였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을 때, 의형과 아우님과 함께 남원 춘향제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떨어져 지내던 의형은 지난해 소천하셨다. 참 좋아했던 형이었다. 줄광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생전에 형이 남긴 기록들을 들추어 보게 됐다. 형은 생전에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시면서 '우리 것'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등 우리나라 민속예술 등에 심취하고 있었다. 



줄광대 묘기를 처음 만난 것은 형의 초대로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乾鳳寺)에서 처음 보게 됐다. 그때 만난 줄광대는 '서주향' 님이었다. 아직 앳된 띠가 가시지 않은 어린 줄광대의 모습을 보는 순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주향 님의 줄타기를 보면서 그때 처음으로 줄타기의 시원(始原)이 어떠했는지 관심을 가졌고, 줄 타는 사람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는지 등에 대해서 자료를 들추어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천하신 형의 자료를 들추어 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것. 형과 아우님과 함께 둘러본 남원 춘향제의 줄타기 묘기에 대해 형은 당신의 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 사람은 떠났지만 기록은 그대로 남아있다니..ㅜ) 



아무리 둘러보아도 춘향이는 보이지 않소 그려(하주성)


높이 3m 정도에 길이는 10여 m.. 그 위에서 20여분을 줄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줄광대는 온갖 묘기를 다 부린다. 줄 위를 바라보며 목을 있는 대로 뺀 구경꾼들은, 자칫 광대가 줄 위에서 발이라도 삐끗할작시면 바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악사들은 장단을 덩덕쿵~치면서 흥을 고조시킨다.


줄타기는 승도(繩度), 주색(走索), 색상재(索上才), 답색회(沓索戱). 고무항(高舞恒), 희승(戱繩), 항희(恒戱) 등의 어려운 명칭을 가지고 있다. 남사당패의 놀이 중에서도 가장 흥겨운 판이 줄타기이다. 줄타기는 대개 관아의 뜰이나 대갓집의 마당, 놀이판이나 장거리 등에서 많이 연회가 되었다. 


가끔은 절 마당에서도 하는데 이때는 절 건립을 시작하거나 마쳤을 경우에 펼쳐진다. 줄을 타는 줄 광대를 '어름산이'라고 부른다. '산이'란 경기도 지역에서 전문적인 연희꾼을 일컫는 말이다. '어름'이란 줄 위에 올라가 줄을 어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속설에는 얼음판처럼 위험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즉 얼음산이는 '어름산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줄타기는 항상 생명을 걸어놓고 위험한 연희를 하게 된다.



판 줄과 토막 줄로 구분되는 줄타기


우리나라 줄타기는 대령광대(待令廣大) 계열인 나례대감에 소속된 줄광대는 유한계층을 대상으로 연행하는 재인청 '광대줄타기'가 있다. 또한 유랑예인 계열의 서민계층을 대상으로 순연하는 남사당 여섯마당 중 하나인 '얼음줄타기'가 있다. 줄타기를 할 때는 어름산이와 재담을 맞 받아주는 어릿광대,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가 함께 한다. 어릿광대가 없을 때는 악사 중에 한 사람이 재담을 받아주기도 한다. 줄광대개 어릿광대와 악사 등을 두루 갖추고 줄 위에서 재담과 춤 그리고 줄 위에서 하는 40여종의 잔 놀음과 살판까지 하면 '판줄'이라 부른다.


"어째 춘향이는 보이지 않소"


국가지정 명승인 남원 광한루원 안에 자리한 놀이마당.. 오후에 놀이마당 주변에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사람들 틈 사이로 흰 등걸잠방을 입은 사람 하나가 널을 뛰듯 (줄) 위로 솟구친다. 줄광대가 줄을 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서로가 가까운 곳에서 묘기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있는 줄광대 중에서는 그래도 인물이 나만한 사람이 드물지. 이나저나 춘향제에 와서 춘향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려니 했더니 어째 춘향이는 하나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소"



줄 위에 올라앉아 구경꾼들을 보고 하는 소리다. "어디 춘향이 없소?" 하고 소리치니. 구경꾼들 틈에서 한 여인이 손을 든다. "아줌마가 무슨 춘향이오. 월매 구만" 구경꾼들이 소리를 내며 웃는다.  줄 위에 올라선 광대는 연신 재담을 섞어가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이런 재담은 주로 민초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름줄타기에서 많이 나타난다.



양반가의 마당 등에서 연희를 하는 '굉대줄타기'는 재담이 없이 단순히 줄만 타고 내려온다. 광대줄을 타는 어름산이들은 그 기능이 어름줄타기를 하는 줄광대 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아무래도 양반을 상대로 농지거리를 할 수 없으니 기능이 더 뛰어나야 박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여 분 줄 위에서 갖은 기능과 재담을 섞어가며 줄을 타는 광대는 마지막으로 줄 위에서 솟구쳐 오르면서 몸을 180도 회전시킨다. 구경꾼들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20여 분의 줄타기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 줄광대의 옷은 더운 날씨에 땀으로 흥건히 젖어 몸에 붙어있다. 이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줄광대지만 그 기능은 어느 누구 못지않은 듯하다. 이름이라도 알아보려는데 어느새 옷을 훌훌 벗고 있었다. 섭씨 30도씨를 웃도는 날씨에 줄을 탓으니 오죽하랴.




포스트를 작성하던 중에 잠시 볼일을 보고 나니 하룻밤이 지났다. 다시 포스트를 이어가는 지금은 현지 시각 23일 이른 아침이다. 작성 중에 있던 포스트는 꿈속까지 따라다녔다. 그리고 짬짬이 형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형은 생전에 최선을 다해 우리의 전통 민속 등에 대해 꼼꼼히 기록했다. 때로는 먼길을 마나 하지 않고 당신의 귀한 시간 전부를 기록했다. 하니와 내가 형을 처음 만난 곳은 속초의 영알호 곁에 위치한 보광사(普光寺)였다.


형이 기거하던 정갈한 방에는 기록물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 대접받은 산수유 차..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지난해 형이 소천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함께 출사를 다니는 등 많은 만남을 가졌고 의형제들과 담합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형의 부고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우님이 전해주었다. 참 많이 울었다.



줄광대가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줄 위에 앉아 구경꾼들을 보고 재담을 하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줄광대의 묘기에 흠뻑 빠졌던 날.. 우리네 삶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 줄광대 서주향 님을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줄타기'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오래전에 본 한 권의 책 속에서 적힌 글을 통해서 줄을 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줄 타는 사람은 처음부터 줄에 올라서서 비틀거리며 떨어지고 또다시 올라가서 떨어지는 일을 반복하며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었다. 


맨 땅에다 줄을 그어놓고 그 줄 위에서 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 언제인가 줄 위에 서 있어도 맨 땅에 서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 날고 기는 줄타기의 고수들도 결국은 그 줄에서 떨어져 다시는 줄을 타지 못하는 결과를 부른다고 한다.



대부분 줄 위에서 떨어져 불구가 되는 등 줄을 타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주변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한 결과라 한다. 또 스스로 자만하여 '자랑'이 앞선 나머지 '도'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세상의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단 줄타기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여정이 줄타기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짧은 줄은 우리 인생들의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도 어쩌면 인생의 씨줄과 날줄에 얽힌 판 위에서 어릿광대 놀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로병사의 길이 그러할 것이다. 어느 날 먼 나라 이탈리아서 바라본 한국의 멋을 쫓다 보니 시절이 하 수상해 보인다. 그동안 익히 봐 왔던 풍경이 아니라 매우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남원 춘향제서 만난 줄광대의 묘기를 통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줄타기 광대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시적으로 줄 위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이는 등 최선을 다한 공연이 끝난 뒤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희로애락.. 기다랗게 보이는 우리네 삶도 알고 보면 줄타기 광대의 놀음을 쏙 빼닮았다.


줄광대가 보여준 묘기는 20분 남짓.. 우리네 삶은 100년?.. 무엇이 다를까.. 형이 떠난 자리에 울림 있는 기록이 남았다. 당신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 우리의 줄타기 공연이 끝나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영상, 남원 춘향제 외줄 타기 묘기 보셨나요?




"남원 춘향제는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주최하는 지역 축제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부터 열리던 축제로 현재 열리는 축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알려졌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행사가 9월 10일에서 13일까지 열리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 있다. 매년 음력 4월 8일부터 4일간 열린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음력 5월 5일로 연기되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


L'arte di cavalcare la corda del Chunhyang Festival_NAMWON
il 23 Aprile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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