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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8. 2022

파타고니아, 황홀한 해넘이와 비탄

-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23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해넘이..?!!



   사진첩을 열어놓고 훼리호 선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기록해둔 풍경들을 보니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직도 귓전으로 쉭쉭 거리며 스치던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당시에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IT세상에서 나 혹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는 동안 오늘을 사랑하면 내일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없다. 준비하지 않은 내일은 없다. 하니는 곧 잠자리에 들 것이다. 파타고니아 끝까지 동행한 그녀.. 그녀는 이곳 이탈리아 바를레타에서 그림 수업을 마치고 머리를 뉘고 있다. 지금도 그녀는 파타고니아 여행 때 꿈꾼 모습 그대로 당신의 좌우명을 외우고 있을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천년을 살 것처럼..!"



생각건대 우리나라에서 이런 낯선 풍경을 만난 사람들은 매우 드물거나 아예 단 한 분도 없을 듯싶다. 이곳은 바람의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장차 우리는 뿌에르또 인제니에로 이바네스(Puerto Ingeniero Ibáñez)로부터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 (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를 건너 칠레 치코(Chile Chico)까지 항해를 할 것이다. 첨부한 구글 지도를 잠시 들여다볼까..



본문에 잠시 언급된 쎄로 까스띠요(Reserva Nacional Cerro Castillo) 국립공원 우측으로 상하로 길게 그어진 실선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이다. 좌측으로 호수 면적이 크게 보이는 곳이 칠레 쪽이며 우측은 아르헨티나 쪽이다. 우리를 태운 훼리호는 실선 좌측 위에서부터 아래로 항해를 하고 있으며, 현재 위치는 협수로를 지나기 전 이바네스 강(Río Ibáñez)과 이어진 호수 위로 눈을 뜰 수 없을 만치 강한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마치 달나라로 쏘아 올린 로켓이 대기권을 지나 우주로 나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심한 바람이 훼리호 선상으로 불어대는 것이다.



하니는 바람을 피해 선실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훼리호 갑판 위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호수와 주변 풍경을 번갈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달님과 나.. 참 묘한 조합이었다. 벌건 내 낮에 바람의 땅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달님.. 우리에게 달은 매우 친근한 존재였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팔월 한가위가 다가오시면 해마다 달님은 우리 곁으로 소환되곤 했다. 바람의 땅에서 바라본 달님은 은빛이지만 한가위 때 바라본 달님은 금빛이었다. 샛노랗고 동그란 달님이 내 가슴에 콕 틀어박힌 건 유년기 때였다. 가난했던 시절.. 어린 녀석에게는 생일상과 다름없는 먹거리가 철철 넘치던 한가위.. 얼마나 먹어댔던 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과식을 하는 것이다. 어머님과 숙모님이 차례상 준비를 위해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오고 가며 하나씩 집어 먹는 등 평소와 다른 식탐 때문에 배탈이 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한 밤중..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이 은빛 고운 가루를 마구 뿌려댈 때 녀석은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는 것. 요즘은 화장실이 주로 실내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화장실(뒷간)은 뒷마당 한쪽에 자리자고 있었다. 화장실도 화장실 나름이지.. 똥통에 판자 두 개를 걸쳐놓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고 응가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 어떤 녀석들은 중심을 잡지 못해 똥통에 발이 빠졌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자자한 시절이었다. 


당연히 뒷간에 전기불이 들어올 리가 없지.. 그래서 녀석은 뒷간 문을 열어놓고 볼 일을 보는 것이다. 그때 할머니를 깨운 건 누구라도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하늘 높은 데서는 달님이 씩 웃고 계시고 할머니는 손자 녀석이 볼 일을 빨리 끝내기를 아기다리고기다리.. 녀석의 한 마디가 이어진다.


"끙.. 할머니.. 어디 가지 마요. 끙..ㅜ"

"여깄다. 가긴 어딜 가..! ^^"



파타고니아, 황홀한 해넘이와 비탄




   서기 2022년 4월 28일 저녁(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관련 포스트를 들여다보니 당시의 느낌이나 감정이 오롯이 묻어났다. 대략 한 달 전에 이어온 <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전혀 원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협수로인 이바녜스 강(Río Ibáñez)을 지나 목적지인 칠레 치코로 향하는 선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해넘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생각했지만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다. 토라진 정도가 아니라 분노를 거듭하고 있었다. 거룩한 분노..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변영로 시인(1923년 3월)은 <논개>를 통해 이렇게 노래하셨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魂)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 3호, 1923.4.)


* 아미 : 눈썹

* 변영로 : 변영복(卞榮福). 수주(樹州). 서울 출생(1898), 중앙학교 입학(1909), 중앙고보 영어 교사(1918), 문학 동인지 『폐허』 동인 활동(1920), 도미(渡美),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대학에서 수학(1931), 『신가정』지 주간(1935),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1946), 서울시 문화상 수상(1949), 서울신문사 이사, 국제 팬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1953), 사망(1961)

* 『영대(靈臺)』 : 1924년 8월에 창간된 문예 동인지. 임장화를 편집 겸 발행인으로 창간되었다. 김동인·김억·주요한·전영택·이광수 등 『창조』 동인이 주축이 되었으며 김소월이 새롭게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통권 5호로 종간되었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서 만난 황홀한 해넘이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만 같다. 관련 내용을 소개한 파일(논개-변영로)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더 상고해 보기로 한다.



해석


변영로는 여러 충신과 열녀들을 소재로 하여 섬세한 전통 정서와 기개 높은 민족정신을 드러낸 시인이다.

이 시는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 ‘게다니’를 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한 의기 ‘논개’의 우국충절을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 『백조』 동인들이 암울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여 한숨과 눈물만을 토로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쓴 데 비해, 그는 민족적 패배감에 젖어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논개’의 우국충절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연에서는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을, 2연에서는 물로 뛰어드는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을, 3연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논개의 충혼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한다. 왜적에 대한 논개의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한’ 것이다. 각 연에 드러난 후렴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단심을 드러낸다.



또한 강낭콩과 강물의 푸른색, 양귀비꽃과 석류 속의 붉은색을 대립시켜 논개의 정열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군자와 같은 진부한 소재를 쓰지 않고, ‘강낭콩’, ‘양귀비꽃’, ‘아미’, ‘석류’와 같은 향토적 소재로 토속적 분위기를 드러낸다.



마지막 연의 ‘푸른 강물’은 ‘영원한 역사’를 상징하므로 진주 남강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충절도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 처분을 받았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남긴 기록이 당신을 돌아보게 만든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낸 선조님들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마치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듯한 신선한 호기심과 충격이 <논개>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 



해설을 통해 1연에서는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을, 2연에서는 물로 뛰어드는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을, 3연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논개의 충혼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는 오래된 풍경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나라를 지키고자 밤잠을 설치고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른바 개혁의 땅(개딸)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개딸들이 논개와 겹쳐 보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공정과 상식 혹은 정의를 외치던 정치인들은 물론 입법 사법 행정부 등등 모두가 돈과 권력에 눈멀고 통째로 썩어 자빠진 나라.. 힘없고 배경 없는 국민들만 '못살겠다'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때 열어본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신앙의 양심으로 '신의 그림자는 아름다움'이라 말해 놓고 분노하고 있었던 나.. 그리고 위로받고 싶은 나.. 지금 대한민국의 시민들 다수는 모두 나의 마음과 비슷할 거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안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직성이 풀릴지 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어린 왕자>의 저자 생떽쥐페리를 소환해 본다.



Antoine de Saint-Exupéry


"Si tu veux construire un bateau, ne rassemble pas tes hommes et femmes pour leur donner des ordres, pour expliquer chaque détail, pour leur dire où trouver chaque chose... Si tu veux construire un bateau, fais naître dans le cœur de tes hommes et femmes le désir de la mer."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우리를 태운 훼리호는 어느덧 호수 가운데를 지나 칠레 치코 가까운 곳의 작은 섬 곁을 통과하고 있었다. 섬 위에는 등대를 닮은 등주가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넘이에 비친 호수가 큰 바다를 닮았다. 



우리는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곳에서 어둠이 깃든 땅으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하니가 "아고.. 바람은 웰케 불어대던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바람의 땅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해넘이가 시작된 상갑판 위로 달님이 두둥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에도 바다와 호수 위에도 풀숲에도 언덕과 산 위와 골짜기에도 그 어느 곳에도 바람이 분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잠시 잠깐 불어닥친 바람을 견디는 법을 파타고니아에서 배웠다.



바람의 땅에 사는 나무와 풀꽃들은 바람에 맞서지 않았다. 잠시 허리를 굽히는 동안 달님과 해님이 번갈아 머리 위로 지나쳤다. 우리 앞에 놓인 여정은 전혀 모른 채 그저 훼리호에 몸을 맡겼을 뿐인데.. 잠시 후 우리는 생전 듣보잡의 마을 칠레 치코(Chile Chico)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부터 다시 기나긴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논개.. 우리가 아는 논개에 대한 기록은 대략 이러하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계사년에 창의사 김천일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군사들은 패배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아래는 깊은 강물이었다. 왜적들이 이를 바라보고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오직 왜장 하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논개는 미소를 띠고 이를 맞이하니 왜장이 그녀를 꾀어내려 하였는데.. 논개는 드디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함께 뛰어들어 죽었다."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보면서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 그리고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 아울러 논개의 충혼에 대한 추모의 정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반듯한 나라에 반듯한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지만, 갈수록 세상은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은 생각이 불현듯 다가온다. 다시 생떽쥐페리의 어록을 살펴볼까..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논개를 통해 발심을.. 생떽쥐페리를 통해 동경심을.. 두 명제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 우리를 태운 훼리호는 마침내 칠레 치코에 입항을 앞두고 있다. 



한 때는 여러분들에게 틈만 생기면.. 아니 짬을 내서라도 파타고니아 여행을 강추헤 드린 바 있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꿈의 여행지..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돌아보니, 아무 때나 어느 곳으로 무작정 떠나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수를 건너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만난 황홀한 해넘이..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풍경을 앞에 두고, 파타고니아와 대한민국을 동시에 돌아보고 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조국이 신음을 하고 있다. 때가 어느 땐데 일제강점기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가.. 우리는 마침내 바다를 닮은 호수를 지나 칠레 치코 목전에 이르렀다. 지금부터 기나긴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로 무작정 떠나게 될 것이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Il lago General Carrera CILE
il 27 Aprile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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