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의 일몰 앞에서 걸음을 멈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을 돌아보니
툇마루가 남서향으로 향한 어릴 적 우리 집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거의 매일 저녁노을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툇마루에 앉아 넋 놓고 붉게 물든 하늘을 응시하곤 했다. 그곳은 동무들과 함께 놀던 나지막한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은 튓마루를 내려서면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곳에서부터 작은 실개천을 건너면 단박에 갈 수 있는 곳. 유년기 혹은 아동기의 나의 동선은 주로 그곳으로 이어졌다.
봄이 되면 실개천 언덕 위에 핀 진달래가 나를 유혹했고, 여름이면 동무들과 멱감으로 가는 길이었다. 동구밖에는 아카시 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길을 따라나서 꽤 멀게 느껴진 계곡으로 향한 것.
계곡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무시로 흘러내리던 곳. 졸졸거리며 흐르던 골짜기의 물과 파릇한 이끼들은 내가 너무도 좋아했던 풍경이다. 봄이 오시면 온 산이 진달래로 붉게 물들고 바위틈바구니에서 철쭉들이 새하얀 꽃잎을 내놓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해 질 녘 풍경을 바라보는 곳에는 어린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 곳. 저녁노을이 없던 비오 시던 날도 나쁘지 않았다. 여우비가 오시는가 싶다가 날씨가 반짝 개이면서 나의 놀이터 건너편으로 진한 빛깔의 무지개가 걸리는 게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봐도 미소가 절로 입을 찢게 만든다.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한 인물처럼 무지개를 쫓아 부리나케 앞동산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한 장소에 무지개는 없었다. 그 무지개는 우리 동무들과 멱감던 계곡 너머에 걸려있는 것.
아드리아해의 일몰 앞에서 걸음을 멈추다
이틀 전, 나는 평소처럼 운동에 나섰다. 이날은 방파제로 행했다. 나는 그곳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만나게 됐다. 아드리아해 저 건너편에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었는데 저녁노을이 구름에 비쳐 묘한 풍경을 자아낸 것이다. 마치 두 사람이 재회를 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마치 견우와 직녀 혹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사람들 혹은 연인이 조우하는 듯한 모습이랄까.
요즘은 견우와 직녀 같은 이야기가 씨알이 먹힐 시대가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져서, 소설이나 동화 혹은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일상이 됐다. 손안에 든 휴대폰의 앱을 열면 세상을 내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견우가 어떻고 직녀가 어떠하며 옥황상제와 오작교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현대와 무관한 오래된 사람 취급받을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중한의 이탈리아 생활은 전설로 도배된 옛날이 더 그리운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다.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 생각
이날, 가던 길을 멈추고.. 또 멈추게 됐다. 방파제 너머의 풍경이 어릴 적 툇마루에 앉아 봤던 저녁노을처럼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그때 어머님은 정지(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어머님이, 커다란 가마솥단지 앞에 쪼그려 앉아 우리 가족들을 먹여 살릴 군불을 때고 계시는 것. 솥 아래 큼지막한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장작불들이 붉게 물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정지문 앞에서 기웃거리면 어머님은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다.
지아비와 시어머니 그리고 칠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어머니는 사람들이 여장부라 불렀다. 가난하고 그 힘든 시절 칠 남매를 거두어 먹이느라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셨다. 툇마루에 앉아 저녁노을 보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던 어린 내 눈에, 아궁이의 붉은빛이 저녁노을 닮았다는 걸 도무지 눈치챌 수 없는 것. 어머니께선 당신의 운명을 저울질하며 눈시울을 붉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를 겨를도 없었겠지..
전설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를 붙들어 놓은 풍경이 하루를 훔쳐간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IL TRAMONTO_MARE ADRIATICO
07 Novembre 2019,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