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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5. 2019

아내의 수채화 배경이 된 여행지

#8-2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

당신의 가슴속에 파고든 아스라한 풍경 속으로..!!





가슴속에 품은 한 여인을 찾아 떠난 남자 사람


나의 브런치를 열면 쑥부쟁이 꽃이 자지러지게 핀 풍경을 보게 된다. 이곳은 남미 칠레의 뿌에르또 나딸레스의 어항이 위치한 곳.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K 씨를 만나게 됐다. 학창 시절 권투로 단련된 몸(아마추어 복싱 선수)이지만, 말 수가 적은 조용한 남자였다. 관련 포스트에서 잠시 언급한 바 당시 그는 칠레의 수산물을 한국에 공급하는 중간 업자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남미로 떠나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뿌에르또 에덴(Puerto Eden)이라는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살고 있었는데 K 씨가 사업상 그곳까지 진출하여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돈을 벌러 이역만리 그 먼 곳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당신의 삶을 지배할 한 여성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과정은 자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속에 나타난 정보 등에 따르면 그녀로부터 스페인어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어쭙잖은 영어는 이 땅에서 도무지 소통되지 않는 언어였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당신의 가슴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흔적을 그녀로부터 받게 된 것이랄까.. 사업상 떠난 먼 나라에서 당신의 운명을 바꾼 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는 온통 한 여인뿐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의 아내가 일러준 일터를 찾아 나섰다. 그는 뿐따 아레나스에서 살고 있었지만 사업상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 트래킹을 앞두고 그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 미리 연락을 해 둔 터라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면 그와 만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먼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더군다나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지구별에서 유일하게 청정한 지역을 자랑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땅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곳에서 그를 만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그 풍경들은 머지않아 아내의 수채화 배경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아내는  수채화 전시를 통해 작가 노트에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대자연 속에서 나(我)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평원을 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차에서 내려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고만 오래된 경험들..




어느 날 거울 앞에선 내 모습 속에는 그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얼핏 스쳐 지나간 풍경 속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꽃들과 세포를 깨우는 먼지 내음들과 바람에 흔들리던 무수한 이파리들. 그리고 밤새 평원을 달리면 은빛 가루를 쏟아붓던 달님과 여명 속에서 다가왔던 발그래한 일출 등..

 



그때는 내 앞가림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엊그제 같았던 지천명의 세월을 지나 이순을 접어들면서, 그게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마냥 회한만 붙들고 있기엔 내 가슴속 열정이 나를 용서치 못한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좇다 보니 그게 하얀 종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게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라고 발효되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니.. 그리움의 실체가 그토록 아름다운 색과 형체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언제인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하얀 종이 위에서 바람이 되어 별들이 마구 쏟아지던 안데스 속으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내의 작가 노트에서





아내의 속 마음


K 씨를 만나고 난 후 말 수가 적었던 아내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쑥부쟁이 꽃이 자지러지듯 핀 동네 어귀를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아내가 수채화 전시를 앞두고 소재를 찾던 중 뿐따 아레나스 바닷가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아내의 취미 생활은 '그림 그리기'와 '음악 듣기'인데 수준급이었다. 웬만한 고전 음악들은 다 꿰차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온통 쑥부쟁이 꽃들처럼 널린 게 당신이 그린 그림들이다. 또 꽤 값이 나가는 진공관 앰프도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재산중 하나이다. 이들은 당신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 당신을 지켜준 것들로, 혹시라도 집안의 모든 짐들이 불타는 순간 제일 먼저 챙길 재산 목록 중 하나인 것. 




매사에 흐트러짐 없이 꼼꼼한 아내가 전시회 작품 소재로 맨 먼저 뿌에르또 나딸레스의 바닷가 풍경을 떠올린 것이다. 아내의 작품들을 보면 겉으로 드러난 성격과 달리 변덕이 죽 끓듯 했다. 나는 처음에 도무지 변덕의 속내를 알 수 없었지만 살아가면서 당신의 진정한 속마음과 욕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내는 보통의 작가로 남기는 작품이 싫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조각을 하는 등 보통의 작가들이 기술적으로 만들어내는 작품은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따라 할 수 있다면 그건 예술품이 아니라 그냥 화가 혹은 조각가 등이 만들어낸 평범한 작품일 뿐이라 생각했을까.




그런 아내가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생각이 확 달라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서 말을 잊고 그저 걸음만 뗐던 것. 어느 날 당신의 가슴속에서 지울 수 없는 운명의 풍경이 당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몇 안 되는 운명 앞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오늘 아침,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던 아내가 페북 메신저로 사진 두 장을 전송해 왔다. 사진의 내용은 새로 발급받은 영문으로 된 국제 운전면허증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발급 대기 중인 나의 이탈리아 운전면허증과 함께 우리의 명운을 가름 짓게 될 후반전 휘슬이 울린 것이다. <계속>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Puerto Natales Patagonia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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