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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0. 2019

달라도 너무 다른 낯선 풍경 속으로

#15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


산으로 가는 사람들..!!


어느 날 글쟁이 지인 한 분이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나눈 대화였으므로 격이 없이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아내는 전혀 불필요해 보이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산이 주제였다.


'넌 왜 산에 안 가..?!!"




참 황당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내는 당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끝에 한 마디를 던진 것이다. 그는 이미 당뇨 합병증 등으로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게 술이며 소주였다. 당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데, 이런 그의 취향은 글쓰기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의 소재를 찾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절박한 상황 등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아내도 포함돼 있었다. 당신의 삶 가운데서 만난 인연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포함시키는 것이다. 아내는 이런 '시추에이션'을 제일 싫어했다. 나는 아내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이른바 '프로' 글쟁이가 타인의 삶을 발가벗기면서, 정작 당신은 모른 체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친구이자 당신의 고향 친구였다. 그런 아내가 친구더러 왜 산에 가지 않는지 반문한 것이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올라가면 내려 올 건데 그 짓을 왜 해..!!



우리는 파타고니아 투어를 위해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후부터 줄곧 안데스가 그리웠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봄이 재빠르게 남하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잠시 안데스 산맥의 세로 포초코(Cerro Pochoco)를 눈팅만 했다. 우리 숙소가 있던 산티아고의 베야비스따 거리에서 가까운 산 크리스토발 공원(Cerro Parco San Cristobal) 정상에 오르면 저만치 동쪽 해 뜨는 곳에서 늘 실루엣만 보여주던 게 세로 포초코였다.



그 산이 우리 내외를 부른 건 파타고니아 대장정이 끝난 후였다. 당시의 심정은 우리를 흡족하게 했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즉시 이곳에 살고 있던 지인을 통해 산티아고에 살 수 있는 행정절차가 어떤지 알아보고 그 즉시 장기체류에 돌입했다. 산티아고에 머물면 세로 포초코는 물론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던 파타고니아를 무시로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산티아고 중심에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세로 포초코를 수 차례 오르내렸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산과 전혀 다른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우리 내외를 품은 안데스는 평안함과 함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에게 내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니던 산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붙인 대명사가 있다. 비교적 다니기 쉬운 산은 '흙산'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산의 대부분은 흙산이다. 돌부리에 전혀 차이지 않는 편안한 길이다. 그런가 하면 한 발짝 내딛기도 전에 발길에 부딪치는 산길이 있다. 이른바 돌산이라는 곳. 또 서울의 도봉산이나 관악산 같은 곳은 사람들이 악산이라 불렀다. 깎아지른 벼랑이나 험준한 산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첫발을 내디딘 안데스 산맥의 세로 포초코는 흙산도 아니었고, 돌산도 아니었으며, 악산은 더더욱 아니었다. 건기의 세로 포초코는 바짝 마른 한편 대부분의 나무들이 단풍이 들어 잎을 떨구고 있었다. 그 가운데 건기를 즐기기라도 할 듯이 큼지막한 선인장들이 곳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들은 너무 낯설 뿐만 아니라 안데스 산맥이 아니라면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할 진풍경 있었다. 따라서 내 눈에 비친 이들의 삶은 세상이 제아무리 각박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고나 할까..



아내가 술좌석에서 지인에게 한마디 내 던진 말속에는 이런 진풍경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를 만난 건 대략 1년 동안 이어진 파타고니아 투어 직후였다. 고도를 점점 더 높이며 바라본 세상은 저만치 멀어졌지만, 산행 내내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진풍경이 줄을 이었다.



다시 가고픈 명산이었다. <계속>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GGIO SUD AMERICA
Cerro Pochoco_Santiago del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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