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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04. 2022

어머니와 간고등어

-춘천 풍물시장서 만난 추석맞이 장날 풍경


간고등어에 비친 어머니 마음..!!



   사흘 전의 일이다. 지난 7월 22일 잠시 귀국 후 고갈된 향수병(鄕愁病)이 충전 눈금을 조금씩 올리며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애착심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일부러 때 맞추어 귀국을 서두른 것도 아닌데 때 마침 추석을 지낼 수 있게 됐다. 아직도 닷새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지만 추석을 지낸 것과 별로 다름없을 정도로 집안의 냉장고와 주방은 추석 향기로 도배되어 있다. 


향수병에 즉효인 우리 전통음식은 물론 이탈리아서 먹지 못하거나 소홀했던 우리 음식들이 끼니마다 상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 재래시장에서 보다 더 뚜렷하게 시선에 고정된다. 추석 대목을 맞이한 춘천의 풍물시장.. 하니와 함께 이른 아침에 들러 추석 장을 보러 갔다. 잠시 풍물시장의 풍경을 돌아볼까..



싱싱한 홍초와 애호박은 물론 요즘 제철인 싸리버섯 등이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아직 마수걸이가 시작되지 않은 시장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다. 상인분들에게 말을 걸기조차 불편해할 정도란 거 잘 아셔야 할 것이다.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거면 묻지도 말아야 한다. 상인들의 그날 마수걸이는 그날 매출과 관계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일까.. 아지 마수걸이도 하지 않았는데 주인 몰래 사진을 찍으면 "아직 마수도 안 했는데 사진은 왜 찍어요?"하고 언짢아한다. 그래서 풍물시장의 귀한 풍경들 중 몇 가지만 장바구니와 카메라에 담아왔다.



끝물에 오른 옥수수들이 먹음직스럽게 삶아진 풍경이다. 이탈리아서 귀국 후 하필이면 옥수수 철이라 생전 처음으로 배 터지게 먹었던 옥수수.. 이곳의 아주머니는 옥수수를 물에 푹 담가 삶았다. 그래서 어떤 옥수수는 팅팅 불어 터졌다. ㅎ



그리고 자연산 더덕이 오매불망 주인을 기다리다가 주인 할머니보다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지난해 하니는 녀석들을 구입해 이탈리아로 가져갈 것이라며 더덕무침을 만들어 두었다가 정작 이탈리아로 올 때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단다. 그래서 해를 넘겨 집에서 직접 맛을 보게 됐다. 별 일 다 있어요..ㅎ



요건 우리나라 토종 다래이자 말 그대로 귀물이라 일컫는 낯익은 추억의 과일.. 얼마나 맛있는지 한 번 따 먹는 순간부터 노랫말의 주인공이 된다. 하니와 함께 청계산과 대모산 자락에 숨겨진 다래 맛이 단박에 겹쳐지는 기막힌 과일이 고려시대에 불려진 청산별곡에 오롯이 담겨있다,




청산별곡(靑山別曲)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는구나 우는구나 새야.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야)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이럭저럭 하여 낮일랑 지내 왔건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고 엇디 호리라(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일랑 또 어찌 할 것인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ᆞ래 살어리랏다(살겠노라 살겠노라. 바다에 살겠노라)

나ᆞ마ᆞ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ᆞ래 살어리랏다(나문재, 굴, 조개를 먹고 바다에 살겠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 가다가 듣노라)

사사ᆞ미 지ᇝ대예 올아셔 하ᆡ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사슴이 장대에 올라서 해금을 켜는 것을 듣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바ᆡ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가다 보니 불룩한 술독에 독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곳 누로기 마ᆡ와 잡사ᆞ와니 내 엇디 하ᆞ리잇고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이 매워 (나를) 붙잡으니 내 어찌 하리이까)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괄호는 원문을 해석한 것으로 <나무위키>에서 가져왔습니다.



풍물시장 곳곳에 가지런히 널부러진 식재료들 중에는 이탈리아서 보지 못하던 것들이 빼곡했으나 언급한 바 카메라에 모두 담아올 수가 없었다. 기화가 닿으면 마수걸이가 끝난 다음에 양해를 구하여 기록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장 여러군데서 발견되는 고들빼기는 입맛을 당기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있는(있던) 바를레타의 바닷가에서 봄나물로 무쳐 먹었던 쌉쌀한 맛.. 식재료는 나라와 국경이 없는 듯 사람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그다음 학창 시절 한 번은 접했을 청산별곡이 장을 돌아보는 가운데 가슴에 콕 박힌 건 다름 아닌 간고등어 때문이었다. 내 고향은 부산.. 풍부한 해산물은 어머니께서 거의 끼니마다 챙겨주셨던 국민생선이었다. 가격도 쌀뿐만 아니라 맛도 좋았는데.. 특히 나는 형제들 중에서 유독 생선을 좋아했다. 무시로 먹던 고등어가 언데인가부터는 광복동 고갈비(고등어 갈비 원조) 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기회까지 주곤 했다. 그런 반면 간고등어(자반고등어)는 낯설었다. 


주지하다시피 간고등어는 고등어를 소금에 절인 염장 고등어(Sgombro stto sale)로 우리나라에서는 안동지방의 내륙에서 주로 먹어왔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이동 과정에서 변질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글쎄 소금간이 적당히 잘 배어 기막힌 맛을 내는 게 아닌가. 이탈리아 요리로 치면 쁘로슈또나 살라메 등 염장 발효식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맛있는 생선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서 맛본 이탈리아 고등어는 웰케 맛이 없는지..ㅜ 


자료사진은  대서양고등어(Scomber scombrus)의 모습(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태평양 고등어와 대서양 고등어 비교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대서양고등어(Scomber scombrus)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잡히는 태평양 고등어(Scomber japonicus)와는 다른 종이다. 보통 등의 물결무늬가 더 진하고 크기가 크다는 것을 구분점으로 삼는데(위 자료사진 참조) 뱃살의 기름기가 참고등어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구이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조림으로는 더 좋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조림 자체가 살집이 두툼해야 맛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틀 동안 후다닥 다 먹어치운 간고등어 두 손이 노르웨이산이 분명해 보인다. 간도 잘 배었을 뿐만 아니라 살집도 통통하고 맛은 고소했다. 


아무튼 국민생선 고등어는 한 때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가성비가 엉망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한 때 넘쳐나던 국내산 고등어가 한국 해역 수온 상승 때문에 어느덧 수입산으로 바뀌에 된 것이다. 그동안 주로 중국산이나 일본산을 수입했지만 중국산은 중금속(납) 파문 때문에 일본산은 후쿠시마 앞바다의 방사능 오염 때문에 요즘은 노르웨이산이 주축을 이룬다고 하는 것. 


자료사진은 태평양 고등어(Scomber japonicus) 모습(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고등어와 간고등어, 청산별곡과 어머니까지 소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대체로 결과만 중시하는지 고등어는 물론 간고등어 태평양 고등어 혹은 대서양 고등어의 생김새나 맛과 음식문화 일부만 조명하고 있다. 고등어가 간고등어로 변신을 할 때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눈물겹지 않은가.. 그냥 바닷가에서 안동 혹은 내륙으로 이동할 때 보관 수단으로 소금을 흩뿌린 정도만 기억할 뿐 고등어의 생사고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흐흐.. 당연한가..ㅜ) 


녀석들을 포획하는 방법은 두 대의 배가 바다에 나서서 어군 주변으로 동그랗게 그물을 내린 다음 두 배를 나란히 놓고 그 사이로 끌어올린 다음에 퍼올려서 잡는다고 한다. 어부들에 의하면 그물을 칠 때 고등어가 알아차리기 전에 신속하게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총알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녀석들을 그렇게 포획한 후 죽음을 맞이하고 주검은 소금에 절여지므로 얼마나 아픈 일생인가.. 



그러나 녀석들은 말 한마디도 없다. 그저 사람들의 입방아에 "맛이 있다. 없다" 등으로 단순 평가될 뿐인 것이다. 청산별곡의 배경이나 노랫말을 곰 되씹어 보면 우리 민족의 애환이 간고등어의 소금 간처럼 고스란히 배어있다. 일부러 인내를 강요한 게 아닐지언정 녀석들의 삶은 우리 인간들에게 얼마나 고귀한지.. 간고등어의 맛을 보다가 불현듯 어머니의 삶이 관동별곡에 겹치는 게 아닌가.. 


나의 머머니가 그랬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신 것은 기본 칠 남매를 잘 키우시면서 속은 얼마나 쓰렸을까.. 마는 어머니는 그 고통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여성이.. 어머니가 돼야 알 수 있는 모성은, 세상의 그 어떤 풍파도 다 녹여버린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랄까.. 가시리 가시리 잊고.. 어머니께선 어느 날 홀연히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시면서 하늘나라에 계시는 것. 하니와 함께 추석 장을 보러 나갔다가 만난 간고등어 때문에 향수병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어머니가 계셨다. 



Un vecchio panorama che ho incontrato al mercato tradizionale di Chuncheon

il 04 Sett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CORE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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