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Ⅲ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보고 사는가..?!!
서기 2022년 9월 6일 오후, 한 이틀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온 데 간데없고 도서관 창밖은 땡볕이 눈부시다. 태풍 힌남노(HINNAMNOR)란 녀석이 할퀴고 간 상처가 적지 않은 가운데 언론들의 시선은 태풍의 눈에 쏠리고 있었다. 이틀 전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의 예상 경로는, 5일 오후 3시께 서귀포 남남서쪽 약 340km 부근 해상을 지나, 6일 오전 3시 서귀포 동북동쪽 약 50km 부근 해상까지 북상한 뒤 부산·경남 남해안을 거쳐 같은 날 오후 3시 울릉도 북북동쪽 약 50km 부근 해상으로 빠져 지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녀석이 도망치듯 빠져나간 자리에 땡볕이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인터넷의 발달은 물론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한님노란 녀석의 이동 경로를 사전에 파악하고 예상 도주(?) 경로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초문명 시대 대명천지가 됐다. 그래서 태풍마다 이름이 붙여진 녀석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태풍의 눈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태풍도 시선이 있다는 것일까..
공부 삼아 태풍의 눈이 무엇인지 나무위키를 통해 살펴보니, 발달한 태풍을 위(하늘 위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면 한가운데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태풍의 눈'이라고 부른다. 태풍의 눈의 크기는 태풍의 규모에 따라 20~100km까지 다양하며, 태풍의 눈에서는 하강기류로 인해 구름이 생기지 않아 날씨가 맑고 비바람이 불지 않는다. 태풍의 눈은 두꺼운 구름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나선 모양의 구름 띠가 줄지어있다.
태풍이 지나갈 때 강한 비와 약한 비가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구름 벽과 구름 띠에서는 강한 비가 내리고, 그 사이 공간에서는 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 힌남노의 반경은 400km에 이른다니 눈이 엄청 큰 녀석이다. 한국의 남동부를 할퀴며 지나가는데 전국이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비를 뿌리고 이틀 만에 땡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산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대한민국의 설악산을 추켜세울 텐데.. 웬 태풍? 다름 아니라 포스트 제목처럼 시선(視線)을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태풍의 눈이 크고 작음에 따라 피해가 비례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동안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나 할까..
처음 이 포스트를 열어보신 분들은 연재 중인 <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편의 서두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꽤 길게 진행될 연재 글은, 설악산 소공원으로부터 비선대-금강굴-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 고개-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장장 20km에 달하는 먼 코스에 등장하는 비경과 최고의 단풍을 담았다. 연재 글의 개관에 해당하는 서두에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떠난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여행은 추석 당일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설악동까지 열심히 달려 도착해 보니,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이 계곡을 두르고 있었다. 자동차 전조등과 실내등을 켜 놓고 짐을 꾸리며 산행 준비를 마쳤다. 이번 산행은 다른 때와 다른 비장한 각오와 인내심은 물론 안전사고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우리가 미리 콕 찍어둔 여정은 설악동 소공원-비선대-금강굴-전망대-금강문-(공룡능선 시작)-마등령-나한봉(1275봉)-(공룡능선 끝)-무너미 고개-(천불동 계곡 시작)-천당 폭-양폭-귀면암-(천불동 계곡 끝)-비선대-설악동 소공원까지이다. (하략)
현재 하니와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지점은 비선대를 출발하여 깎아지른 산길을 따라 금강굴 근처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시선은 거의 한 방향으로 고정된 채 이동을 하고 있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충만한 내설악의 비경이 숲 속 빈틈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산행의 재미가 '신들린 듯' 될 수밖에 없는 기분 좋은 산행이 이어지는 것이다. 천근만근 무겁던 다리가 이때부터 기벼워지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개 되는 것이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파타고니아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시선이 머물게 된 장면이 <쑥부쟁이가 점령한 바람의 땅>에 적혀있다.
천국이 코 앞에 널브러져 있는 곳
나는 그곳에서 전혀 예상 밖의 풍경을 만났다. 바람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던 나무와 풀꽃들을 바라보며 우리네 삶 혹은 나의 삶을 뒤돌아 보고 있었던 것. 바람의 땅에는 만개한 쑥부쟁이 꽃이 빼곡히 널려있었다. 바다에서는 무시로 바람이 불어오며 바다를 못살게 굴었다. 비록 바람이 쉼 없이 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던 쑥부쟁이는 물론 풀꽃들을 보니 천국이 코 앞에 널브러진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신들은 직선과 콘크리트로 도배한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지.. 파타고니아 곳곳에서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일찍이 이 같은 모습을 깨우친 내가 좋아하는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은 당신의 작품 <예술가의 십계명>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이렇게 노래했다.
예술가의 십계명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 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 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너의 가슴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릴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여덟째, 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림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 도주다.
열째,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천불동 계곡(佛洞溪谷 一圓)의 수려한 비경이 코 앞에 펼쳐진 듯하다. 우리는 장차 공룡능선(雪嶽山 恐龍稜線)을 가로질러 이 계곡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초주검이 된 하산길을 우리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예술가의 십계명 원문_Decálogo del artista
I. Amarás la belleza, que es la sombra de Dios sobre el Universo.
II. No hay arte ateo. Aunque no ames al Creador, lo afirmarás creando a su semejanza.
III. No darás la belleza como cebo para los sentidos, sino como el natural alimento del alma.
IV. No te será pretexto para la lujuria ni para la vanidad, sino ejercicio divino.
V. No la buscarás en las ferias ni llevarás tu obra a ellas, porque la Belleza es virgen, y la que está en las ferias no es Ella.
VI. Subirá de tu corazón a tu canto y te habrá purificado a ti el primero.
VII. Tu belleza se llamará también misericordia, y consolará el corazón de los hombres.
VIII. Darás tu obra como se da un hijo: restando sangre de tu corazón.
IX. No te será la belleza opio adormecedor, sino vino generoso que te encienda para la acción, pues si dejas de ser hombre o mujer, dejarás de ser artista.
X. De toda creación saldrás con vergüenza, porque fue inferior a tu sueño, e inferior a ese sueño maravilloso de Dios, que es la Naturaleza.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나의 삶을 돌아보면 세상에 지천으로 널린 신의 그림자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취미로 보낸 세월이 최소한 50년은 훌쩍 넘었으므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다르다고나 할까..
어떤 때는 작품 사진이라 생각하고 셔터를 눌렀고, 어떤 때는 여행사진 또 어떤 때는 그냥 기록으로 등등.. 눈앞에 등장하는 신의 그림자는 물론 원정을 떠나서 그리고 먼 나라에서 누른 셔터질(?)이 사진첩에 쌓이고 쌓여 한시도 한가할 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죽기 전에 사진첩에 담긴 스토리텔링 전부를 다 털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내가 갈망한 아름다운 세상.. 발아래서 피어나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풀꽃도 돌아봐야 직성이 풀리니 이것도 병일까..
비선대서 금강굴 곁으로 고도를 높이니 세상이 발아래로 보인다. 거대한 암봉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독야청청(獨也靑靑).. 우리 민족의 얼이 설악산 곳곳에 서려있다.
이탈리아서 한국에 귀국한 직후 나의 시선은 지하철 내부에 쏠렸다. 처음 보는 풍경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지하철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약속이나 한 듯 휴대폰을 꺼내 들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하차할 때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쩌면 그분들 중에는 내기 꿈꾸는 그곳의 포스트를 열어보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그런 열독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총알처럼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펼쳐놓은 글은 누가 읽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스크롤을 빠르게 내려 풍경은 볼 수 있겠지.. 그때 즐기는 여행사진은 데스크탑이면 더 좋고 노트북이라도 그만이다. 화면을 꽉 채우는 큰 사진으로 보는 풍경들은 디지털 시대 혹은 디지털 세대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왕이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보다 더 기분 좋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담아온 풍경들은 산행 중에 잠시 멈추어 서서 촬영한 것들이며,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신바람 나게 셔터를 누른 것들이다. 신께서 나를 향하여 손짓을 하는 느낌 알랑가 몰라.. 히히
시선을 요리조리 잘 돌리면 오감 중에서 가장 넉넉한 감각으로 신의 그림자가 등장할 것이다. 귀로 듣는 음악 코로 맡는 향기와 입으로 먹는 요리 등 아름다운 것들이 요구되는 감각 모두에 신께서 강림한다니.. 미이십니까!! ^^
태풍의 눈 또한 신의 그림자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까.. 태풍의 바람과 비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매우 죄송한 표현이지만 비와 바람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명산 설악산 조차 비바람은 물론 폭설과 한파를 이겨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수려하고 장엄하며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누이같이 이쁜 단풍을 잉태할 수 있었을 게 아닌가..
먼 나라서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명산의 비경은 향수병에 최고의 명약이었다. 사진첩(외장하드)은 어디를 가도 나를 따라다니며 신의 그림자를 내려놓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때 태풍의 눈 혹은 시선은 나로부터 발현된다니 신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하니가 한 발짝 한 발짝 힘들게 고도를 높이고 있다. 그녀의 머리 위로 신의 그림자가 충만하다. 우리는 곧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비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계속>
Il Nostro viaggio con mia moglie_Monte Seorak, Corea del sud
il 06 Sett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