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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08. 2022

동심(童心)_더도 말고 한가위만큼

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Ⅳ


한 어린 녀석이 궁금했던 차례상 앞에서 아부지 턱 밑에 다가가 물었다.


"아부지 차례(제사)는 왜 지내요?"

"응 조상님에 대한 추모(追慕)지.."

"추모가 뭐 하는 거죠?"

"응 추모란 조상님을 기리는 거란다."



   그때 그 녀석이 하니와 함께 설악산 소공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살악산 공룡능선-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감행했다. 당시 종갓집에서 우글 거리던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에 백발이 된 어린 녀석들이 자리를 꽤 차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니와 함께 한가위 당일에 찾아간 곳이 설악산이며 서기 2017년 10월 4일(10월 4일은 그레고리력으로 277번째(윤년일 경우 278번째) 날에 해당한다.)이었다.



   서기 2022년 9월 8일 오후, 한 이틀 비를 쏟아붓던 태풍이 사라진 자리에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수분을 잃은 땡볕이 그림자 곁에서 겉돌고 있다. 더위가 물러간 게 피부에 와닿는다. 다시 도서관에 들러 컴을 열고 설악산 공룡능선이 담긴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곳에 하니가 비뚤비뚤 아무렇게나 놓인 돌계단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장면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미 비선대서 금강굴을 지나 금강굴에서 마등령까지 길게 이어지는 코스를 지나고 있었다. 비선대와 장차 돌아가야 할 천불동 계곡이 발아래 까마득하다. 그리고 파릇한 이파리들이 여기저기서 꼬까옷처럼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한 모습이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암괴석 사이에 머리를 박고 자란 소나무들이 알록달록 익어가는 산하를 굽어보며 꼿꼿하게 굳건하게 서서 한가위 당일 방문한 손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내설악을 굽어볼 수 있는 능선에 올라 산행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화채능선에서 구름이 오락가락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거무스름하다.



참고로 천하의 명산 설악산국립공원 탐방안내를 보면서 현재 위치를 돌아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첨부 파일에 설명된 설악산은 이러하다.

태백산맥에 있는 강원도의 명산. 속초시와 양양군·고성군·인제군에 걸쳐있다. 높이는 1,708m.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세 번째, 남한 중 한반도 본토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1970년 3월 24일 지정된 5번째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총면적은 398.222제곱킬로미터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북한에 속했지만, 휴전선이 그어진 이후 남한이 수복한 지역.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거대한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척추 부분에 금강산과 약간 떨어진 채 있다. 하필이면 척추 부분에 아름다운 두 산이 있고 두 산의 중간쯤에 휴전선이 지난다. 절묘하다. 울산바위 전설에서 따왔는지, 한국전쟁 때 국군이 여기가 금강산인 줄 알고 더 진격을 안 했다는 농담도 있다



위 설악산국립공원 등산 코스 지도를 다시 부분 확대해 보니 우리의 이동 경로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두 지도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출발한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까지 거리를 대략 3km에 해당하고, 다시 비선대에서 금강굴까지 (깎아지른) 거리는 1.5km에 해당한다. 금강굴에서 금강문(전망대)까지 거리는 2.0km에 해당한다. 장차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공룡능선 코스와 거리가 선명하게 적혀있다. 



 자료에 설명된 것처럼 "한국전쟁 때 국군이 여기가 금강산인 줄 알고 더 진격을 안 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진행방향 좌측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은 단풍과 어우러져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르고 있는 빼어난 모습이자 생애 최초로 목격한 설악산의 단풍이며 비경이었다.



여기서 처음 방문하신 여러분들과 독자님과 이웃분들을 위해 작은 길라잡이 몇 자 다시 들여다본다. 처음 이 포스트를 열어보신 분들은 연재 중인 <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편의 서두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꽤 길게 진행될 연재 글은, 설악산 소공원으로부터 비선대-금강굴-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 고개-천불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장장 20km에 달하는 먼 코스에 등장하는 비경과 최고의 단풍을 담았다. 연재 글의 개관에 해당하는 서두에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떠난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 여행은 추석 당일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설악동까지 열심히 달려 도착해 보니,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이 계곡을 두르고 있었다. 자동차 전조등과 실내등을 켜 놓고 짐을 꾸리며 산행 준비를 마쳤다. 이번 산행은 다른 때와 다른 비장한 각오와 인내심은 물론 안전사고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우리가 미리 콕 찍어둔 여정은 설악동 소공원-비선대-금강굴-전망대-금강문-(공룡능선 시작)-마등령-나한봉(1275봉)-(공룡능선 끝)-무너미 고개-(천불동 계곡 시작)-천당 폭-양폭-귀면암-(천불동 계곡 끝)-비선대-설악동 소공원까지이다. (하략)



동심(童心)_더도 말고 한가위만큼



참 절묘한 타이밍이 등장했다. 비선대서부터 금강굴까지 깎아지른 등산로를 통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선은 온통 외설악의 빼어난 풍경이었다. 우리가 장차 통과하게 될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가르는 병풍 같은 능선이다.(위 자료사진 참조) 저 멀리 금강산을 방불케 했다는 외설악의 모습은 금강굴까지 이어지던 피곤을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아름답다. 



파타고니아에서도 돌로미티에서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설악산까지 명산으로 이름을 붙인 산들 모두는 신께서 일부러 꼭꼭 숨겨 놓은 듯하다. 요즘은 명산들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드론을 통해 감상할 수 있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지 않을까..



일찍이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예술가의 십계명_Decálogo del artista>을 통해 간파한 신의 그림자는 판도라의 상자에 갇힌 '희망'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명천지가 된 오늘날은 지상 혹은 지하 저 멀리 우주까지 모두 다 까발리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 궁금한 점이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 대부분이 유리 상자에 갇힌 것처럼 투명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IT강국으로 거듭난 대한민국에서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편집한 포스트가 순식간에 지하철 속에서 읽히며 잊혀 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유년기.. 혹은 우리가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었다. 무앗이든 넘쳐나면 귀한 줄 모르는 게 현대의 모습이면 무엇 하나 고귀하지 않은 게 없었을 때가 두 세대 전의 일인지..



한 어린 녀석이 궁금했던 차례상 앞에서 아부지 턱 밑에 다가가 물었다.


"아부지 차례(제사)는 왜 지내요?"

"응 조상님에 대한 추모(追慕)지.."

"추모가 뭐 하는 거죠?"

"응 추모란 조상님을 기리는 거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나의 이런 질문을 대견해하셨다. 그냥 덮어두고 지나쳐도 될 텐데 종갓집의 관습인 제사의 의미에 대해 묻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만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종가에서 지내는 제사는 물론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우리 집은 시쳇말로 "6.25 때 난리는 난리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붐비고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보통의 제삿날에는 숙모님들과 어머님이.. 머리가 커진 다음에는 형수님과 계수 씨가 일을 거들면서 어머니는 마치 '셰프님'같은 지위를 누리시면서 음식 맛도 보곤 하셨다. 그땐 또래의 사촌들이 학생들이자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던 시절이므로 주로 어른들이나 종형들이 자리를 하여 약간은 조촐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팔월 한가위 혹은 설날이 오면 난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난리도 난리도.. 라 하시면서 흐뭇해하셨다. 그 사이 아이들이 다시 아이를 낳아 차례상 앞은 서열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맨 앞에 제주(祭主)가 자리 잡고 그다음에 중부님과 종형들 순서로 이어지니 차례상 앞에서 칠 남매의 셋째인 나의 자리는 항상 형들의 엉덩이만 바라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밌어요. 히히 ^^) 그나마 아버지께서 제주를 큰 형님과 장조카 순으로 물려주면서 권력(?) 서열은 더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추석의 진풍경은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들을 미리 맛보는 녀석들이다. 어머님과 숙모님 등은 부지런히 차례상 음식을 준비하는데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또래의 사촌들과 함께 어울려 송편은 물론 부침개 등을 날름날름 훔쳐 먹으며 혼나는 것이다. 


"녀석들아 이건 조상님이 먼저 드셔야 하는 거야!!"



어머니의 말씀은 200% 옳으셨지만 나는 물론 녀석들의 귀에 들리기는 할까.. 마냥 히히덕거리며 뒷마당과 동네를 싸돌아 다니는 녀석들은 얼굴이 환하고 입이 귀에 걸린 마냥 신나 죽는 모습들이다. 돌이켜 보면 그런 풍경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쩌면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실까..



때 하나 묻지 않은 동심을 되찾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가난이었을 것이다. 먹을 게 귀했던 시절에 맞이하는 명절에 넘쳐나는 음식들.. 평소에 곁에 두지 못했던 음식들이 철철 넘치고, 자주 뵙지 못하던 어른들과 사촌들이 우글 거리는 집안 풍경은 최고의 경사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며 좋아할까.. 



이런 사정은 어린 동심들 뿐만 아니라 한께 모인 형제 자매들의 동심(同心)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 그들이 쫓기듯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신도 모르게 잊고 살았던 모습이 향수병이자 동심이 아닐까..



유년기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추석은 철이 들면서 점점 더 행복의 질이 퇴색하기 시작한다. 차례상에 오를 음식을 낚아채던 악동들의 귀에 들린 조상님과 차례를 지내는 순서 중에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는 얼마나 신기했던가.. 



잔을 올리는 때(헌작 獻酌)나, 조상님의 식사를 돕는 계반삽시(啓飯揷匙) 때, 혹은 조상님이 식사하실 합문(闔門) 때.. 앞줄 형들의 엉덩이 너머로 제주와 차례상을 훔쳐보면서 차례 순서에 등장하는 조상님이 너무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는 거.. 어느 날 하니와 함께 한가위에 다녀온 설악산의 단풍도 기슭에서부터 중턱 그리고 장차 등장할 생애 최고의 단풍이 우리네 삶을 꼭 빼닮았다. 



그때는 잘 몰랐던 차례상 위의 음식들도 아무 데나 함부로 놓는 게 아니란 것도 어른들께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참 훌륭하고 지혜로우신 선조님들과 조상님들.. 가끔씩 어머니와 숙모님들은 농담 삼아 "귀신들이 아실까.."라며 농담을 했지만 "세상 어느 것 하나 제 자리에 없는 게 없고, 미천해 보이는 그 어떤 생명들도 다 제 값을 한다"시던 어른들의 육성이 이맘때만 되면 귓전에서 들리는 듯 생생하다. 



차례상 차리는 법

첫째줄, 좌반우갱(左飯右羹): 왼쪽은 밥(메), 오른쪽에 국(갱) 

둘째 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찬은 동쪽, 윤찬은 서쪽

셋째 줄, 탕류:육탕, 소탕, 어탕 순으로

넷째 줄, 좌포우혜(左脯右醯): 왼쪽에 포(脯), 오른쪽에 식혜

다섯째 줄, 조율이시(棗栗梨柿): 대추(조), 밤(율), 배(이), 감(시) 순서로 놓는 것.


차례상에 오른 음식들 중에 어머니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조상님께 드리는 차례상.. 아직 한가위가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조상님이나 부모님이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일까..



금강문(전망대)이 가까워지면서 철제 사다리가 등장했다. 곧 금강문-마등령으로 이어지는 코스까지 이동할 것이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린 외설악의 비경도 곧 등장할 것이다. 



하늘이 조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다. 고도를 점점 더 높이고 좁은 문을 지나듯 힘이 들어야 눈에 들어오는 비경들.. 편안하게 부족함이 지낼 수 있을 때는 불편과 귀함을 놓치고 살았을 것이다. 내일모레면 한가위.. 한국민속대백과에서는 한가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가위란..?

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또는 가을의 가운데를 의미하며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뜻이다. 크다는 말과 가운데라는 말이 합해진 것으로, 한가위란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란 뜻이다. 또는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가위란 큰 날 또는 큰 명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음력 8월을 중추지월(中秋之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자음에 따른 것으로 가위는 곧 가을의 가운데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월석은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고도를 금강문으로 점점 더 높이자 진정한 길조인 설악산 까마귀들이 배웅을 나왔다. 녀석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녀석들의 시선이 머문 곳은 외설악의 비경이 널린 곳. 이탈리아서 5년 만에 귀국하여 다시 만나는 생애 최고의 비경 앞에서 조상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우리 조상님이나 선조님들의 음덕으로 마음의 차례상을 올린다. 



동심을 되찾아야 뚜렷이 보이는 아름다운 세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 되시길 바란다.



Il Nostro viaggio con mia moglie_Monte Seorak, Corea del sud

il 08 Sett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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