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생애 최고의 단풍 속으로 Ⅴ
우리 행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설악산의 비경..!!
서기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오후, 밤새 주룩주룩 비를 뿌리더니 날이 밝으면서 잠시 주춤했다. 그 때를 틈타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풀꽃들이 비에 젖어 빼꼼히 나를 바라본다. 녀석들은 비가 오시면 기분이 더 좋은지 길가 고들빼기들이 파릇파릇 새싹을 내 놓았다. 그런가 하면 산사나무의 열매는 뿕게 읽었는데 빗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웬지 처량맞은 풍경이 길가에 널부러져 있다.
녀석들은 곧 일기예보에 따라 먼 나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알록달록 익어가며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산사나무 흉내를 내곤 한다. 돌이켜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생이 100년을 산다고 한들 다 무슨 소용이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가꾸고 즐기면서 잘 놀다가는 일만 남은 것.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은 자랑질을 좀 해봐야 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해 마다 이맘때면 되면 들추어 보던 사진첩은 유효기간이 어디까지인지 적혀있지 않다. 하니와 함께 2017년 윤 10월 4일 하룻만에 공룡능선을 등반한 기록을 모두 다 털어버리고 싶지만 그게 쉽지않다.
하루 이틀 가을 단풍타령이 이어지는가 싶으면 첫눈이 오시고 다시 겨울이 되면서 귀한 사진첩 속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다시 첫눈 속에 묻힌다. 그리고 이듬해 추석 전후에 등장하곤 했다.
그때가 2017년 10월 4일이었다. 이탈리아서 잠시 귀국한 후 하니와 나 두 사람이 무려 19시간에 걸쳐 설악산 공룡능선을 등반한 것이다. 청춘도 아닌 안청춘의 단풍놀이는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있을 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이다. 그런 까닭에 신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애 최고의 단풍을 미리 선물했다고나 할까.. 관련 포스트의 기록 속에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지 않으면 미움도 없는 것일까..?!!
서기 2022년 5월 27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하니와 함께 다녀온 설악산 산행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사진첩 속에는 늘 가슴속에 요동치던 풍경이 오롯이 박제되어 있다.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이곳은 설악산 천불동 계곡에 위치한 양폭포(음폭)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의식처럼 해마다 가을이면 열어보는 풍경이며, 양폭을 카메라에 담았던 산행 여정은 까마득하다.
어느 가을날 이른 새벽(한밤중)에 하니와 함께 서울 강남에서 속초로 이동하고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첨부의 지도처럼) 설악동 소공원-비선대(3km)-금강굴(1.5km)-마등령 삼거리(2km)-공룡능선(5.1km)-무너미고개(희운각 대피소)-천불동 계곡(2km)-비선대(3km)-설악동 소공원(3km)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지도에 표시된 대략의 거리를 합해보면 전체 여정은 20km 정도이며, 보통 사람들의 보폭으로 걸으면 1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평지에서 1 시건 동안 걷는 거리는 대략 3km에 해당하고 산행에서는 대략 1km를 걷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이 같은 여정으로 공룡능선을 다녀오신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산행 여정이 지금 소개해 드리고 있는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여정인데.. 청춘이라면 몰라도 안 청춘이라면 절대로 권장해 드리고 싶지 않은 곳이다.
안 청춘인 우리는 공룡능선 코스를 바꾸어 가며 7차례 다녀왔다. 그때마다 "두 번 다시 안 갈 거야!!"라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머지않아 잊어버리고 만다. 누구라도 이곳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리는 천근만근.. 죽을힘을 다해 여정을 소화하는 동안 오감을 통해 가슴에 남은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14시간 소요된다는 적시한 여정을 19시간 만에 완등 했다.
한마디로 초주검이 된 것이다. 만약 공룡능선 중간 아디쯤에 비박을 할 수 있는 장소나 장비가 있었다면.. 그곳에 퍼질러 앉거나 잠을 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희운각이나 양폭대피소에 몸을 맡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릎 관절은 삐거덕 시큰거리고 새까만 밤중에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산길과 계곡을 터벅터벅.. 가끔씩 하니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데 희끄무레한 불빛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두 사람이.. 단 두 사람이 계곡으로 하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만난 풍경이 포스트에 등장했으며, 해마다 가을이 오시면 열어보곤 한다. 아무튼 이른 새벽 설악동 소공원에 주차를 해 두고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이렇게 담아온 기록들.. 늘 보고 싶었던 풍경을 가슴에서 끄집어내고 노트북을 열 때마다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나를 낳아준 내 조국 대한민국이 안녕했다면 시간을 좀 더 기다려 사진첩을 열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하지 못한 수상한 시절이 도래한 것이랄까..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걷는 하니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정말 대단해요..!
세상에서 바꿀 수 없는 두 가지 운명.. 어머니와 조국이 그러하다. 그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끝이 나를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만에 하나 당신의 어머니께서 몸져누우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즉시 달려가 문안을 드리고 관련 조치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조국도 다르지 않다. 먼 나라에 살면서 조국은 '기댈 언덕'이나 다름없다. 지금이 그런 시절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이 이웃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희희낙락하면 재미가 있을까..
모른 채 뒷짐을 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철없는 짓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될 것이다. 지금 우리 행성을 어지럽히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시사하는 바 크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전에 경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빈틈을 노린 러시아에게 일격을 당하고 만 것이다. 대략 3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는 전황을 참조하면, 러시아의 패전이 확실시된다.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만신창이로 변했다. 그렇다고 러시아는 무사할까.. 유럽은 물론 세계인들은 러시아의 만행에 대해 형벌을 가하고 있어서 장차 러시아의 장래조차 불투명하게 됐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에 닥친 볼썽사나운 풍경들.. 국격이 한순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은 물론 이웃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다녀온 여정을 소화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사랑은 책상머리서 머리로만 입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의 눈빛만 봐도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신께서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좁은 땅 깊숙한 곳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감추어 두었을까.. 먼 나라서 조국의 아픔에 동참하며 인연의 끝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이전 기록 <인연(因緣)의 끈>에서 이렇게 썼다. 그때는 우리가 살고 있던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의 5월(22일)이었다. 마음이 착찹할 때 열어본 설악산 공룡능선 사진첩.. 그리고 5년만에 다시 귀국하여 열어본 사진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대략 두 달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언제인가 그 비밀(?)을 공유할 때가 올까..
지금쯤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잠시 묻어둔 해외여행 카드를 만지작이고 있을 것 같다. 코로나가 전격 해제된다면 여행사들은 비명을 지를 것이며, 우리 행성 지구의 하늘은 여행객들로 넘쳐날 것이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계곡으로 최고의 명소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런 분들 가운데 단풍놀이에 목마를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분들에게 강추해 드린다. 사는 동안 많은 아름다운 단풍을 만나며 행복했을 것이다. 집 근처 혹은 동네 뒷산이나 명승지에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단풍.. 그런데 올해는 날씨가 잘 받쳐주지 않았는지 단풍 소식이 뜸하거나 동네 근처의 오솔길의 단풍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래서 금수강산의 "단풍에 목마른 자 다 모이시오" 하고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담아온 단풍사진을 대량 방출하고 있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이때 만난 단풍들은 생애 통틀어 최고의 단풍이었다. 그 중 금강굴에서 마등령까지 이어지는 오솔길 전망대 근처의 풍경을 담았다. 즐감하시기 바란다.
흠..외설악 단풍 어땟나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도를 조금 더 높이고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에 진입하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당신을 천국으로 안내할 것이다. 벌써부터 내 가슴이 먼저 설렌다.
Il Nostro viaggio con mia moglie_Monte Seorak, Corea del sud
il 08 Otto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