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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8. 2023

돌로미티가 우리를 부르신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88

죽을 때까지 기록을 다 마칠 수 있을까..?!!



하니가 저만치서 느린 걸음으로 결승선(?)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조금 빨리 내려와 등산화를 벗고 계곡의 수정 같은 물에 발을 담갔다. 산행에서 최고의 선물이다.



고개를 들어야 다 볼 수 있는 장엄한 풍경들..



옥수가 흐르는 가대한 계곡의 작은 풍경이지만 여행자의 마른 목을 축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하니가 마침내 계곡에 도착했다. 죽을 맛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힘이 드는 것은 누구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이 값없이 내어주는 사랑에 흡족하게 된다. 하니는 평생을 산의 품에 안겨 행복해했다. 산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 그녀는 공자님의 말씀처럼 어질어서 산을 좋아했을까..



잠시 숨을 돌린 후 그녀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날은 스틱이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구한 나무 짝대기 두 개에 의지해 트래킹을 이어가고 있었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ledo)..



돌로미티의 대표전수인 세 봉우리를 한 바퀴 돌아가는 것만 해도 안 청춘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지난 여정 <조물주가 숨겨둔 세상> 편에서 이렇게 써 두었다.



돌로미티 여행을 19박 20일 동안 하면서 어떻게 하면 돌로미티를 접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본 결과 여러모로 야영이 옳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돌로미티에서 한겨울에 스키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파인 스타일(Alpine style_자급자족)을 생각해 보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여정은 8월 8일부터 8월 말일까지였으므로 야영이 가능한 시기였다. 돌로미티에서 숙박은 원칙적으로 야영은 야영장에서 해야 하고 호텔이나 B&B를 이용하지만, 현지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야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 우리는 매우 착한 여행자였다. 겨우 싸구려 텐트에 의지하여 그 긴 여정을 소화했으니 말이다. 만약 텐트족들이 없었다면 하니가 한국에서 텐트와 이불 등을 공수할 꿈도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돌로미티 여행자들 대부분은 호텔을 이용하고 주어진 트래킹 코스를 답사하는데 그쳤다. 참 아쉬운 장면이었다. 모두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만, 이곳을 한 번만에 돌아본다는 건 불가능한 여행지라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광대하고 볼거리와 트래킹 코스가 지천에 널린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심하고 어느 날 패키지로 무리를 지어 여행을 떠나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또 가고.. 또 가고.. 자꾸만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드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 등을 생각해 보면 보다 긴 여정을 차근차근 준비를 잘하셔서 다녀오시라는 말이다. 



그리고 자급자족 외에 현지에서 자동차를 빌리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예컨대 돌로미티 산군의 여행지를 30군데를 계획하고 호텔 등을 예약하고 다니는 건 무리 이상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현지에서 길라잡이를 대동한다고 해도 그게 가능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몇 군데 정도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돌로미티를 여러 번 둘러볼 수 있는 여력을 지니신 분들이 아니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따라서 돌로미티 여행은 숙식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도전해 볼만한 게 야영이었다. 돌로미티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봄가을 날씨와 흡사하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대략 10도씨 정도로 차이가 났다. 주로 2천 미터 이상의 로지의 날씨가 그랬다. 



하지만 고도가 낮은 주변 도시로 내려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20도씨를 상회하는 날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표에서 내뿜는 복사열의 영향권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100m마다 기온이 섭씨 0.6도 정도 떨어진다고 하므로 고도를 1000m만 높여도 6도씨나 차이가 나고 두 배이면 12도씨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가 야영했던 돌로미티에서는 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뼛속까지 시릴 정도였다. 그리고 야영을 하는 동안 모기 한 마리 조차 보이지 않거나 물릴 일이 없었다. 그냥 그늘에 자리만 펴 놓고 누워서 쉬어도 벌레가 달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연재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돌로미티의 봄은 6월부터 시작된다. 6월부터 돌로미티 산군에 야생화들이 피기 시작하고 9월이면 풀꽃들이 씨를 맺는 시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6월부터 9월까지 야영이 가능한 시기라 판단하는 것이다. 명소 곳곳에 야영장이 따로 있으므로 텐트에서 잠을 청하던지 차박을 하시던지 취사선택을 하면 될 것이다. 



이런 경우의 수가 가능하면 적게는 한 달.. 많게는 100일 동안 돌로미티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 군데를 돌아볼 생각이 없다면 그땐 돌로미티에 산재한 B&B를 이용해 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자동차로 드라이브 겸 트래킹과 등산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가 두 번째 경우의 수로 준비해 놓고 있는 게 이것이다. 돌로미티 산군의 날씨가 야영을 방해할 개연성이 적지 않으므로 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다. 



여기까지 우리의 경험에 따라 길게 끼적거려 봤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나면 마음먹고 돌로미티를 다녀오실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여행 정보 삼아 경험 일부를 내려놓았다. 내가 돌로미티의 홍보대사도 아니고 남의 나라를 주제넘게 왈가왈부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녀온 돌로미티는 조물주가 숨겨둔 세상이 틀림없었다. 그러하지 않았다면 굳이 주차비 30유로 물어가면서.. 아니면 바캉스 시즌이 되면 캠핑카는 물론 사람들이 돌로미티 산군에 몰려들까.. 



백문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것. 지금 브런치에 소개되고 있는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격인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일면이 그것이다. 돌로미티 입구에 위치한 라고 디 미수리나(lago di Misurina)에서부터 이곳 입구까지 이동하고 다시 주차장까지 이동하면 그때부터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이번 포스트에서 보고 계신 장면들은 주차장의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가 잘 조망되는 곳으로 이동 중에 우측으로 만나게 되는 비경들이다. 이날이 8월 13일 오전이었으며 탱크가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은 길 옆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최고봉(Cima grande di lavaredo)은 2,999m라 했다.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다. 백견불여일실(百見而不如一實)..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가 보는 게 더 낫다..!!





하니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다. 긴 바지도 벗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날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만치 않은 트레킹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산행이든 트레킹이든 당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물 한 통조차 당신이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이는 말없이 서 있는 명산의 풍광이다. 



당신의 넓고 따스한 가슴에 안기는 순간 세상을 품은 듯 넉넉해지는 것이다.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가 안개에 싸였다. 빗방울이 뚝뚝뚝..



이틀 전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예매한 후부터 돌로미티가 유난히도 그리웠다. 하니도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다시 돌로미티에 발을 디디고 싶어 환장(?)하는 것이다. 돌로미티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기분을 잘 알지 못한다. 파타고니아의 명산과 또 다른 매력이 빼곡한 곳이다.



하니가 휴대폰으로 절경을 담는 곳은 우리가 조금 전에 다녀온 곳이다.



우리는 결승점을 코 앞에 두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사진첩을 열어 보니 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보고 싶구나. 어서 오너라 딸아 아들아..!!"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ledo
il 08 Febraio 2023,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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