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7. 2023

어머니, 꽃구경 가요

-첫눈에 반한 파타고니아 사진첩 #25


남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파타고니아에 봄이 오시면 덩달아 떠오르는 어머니 생각..!!




서기 2023년 3월 16일 저녁나절(현지시각)에 떠오른 나의 아픈 고백은 이러하다.




오르노삐렌의 삼각주에 밀물이 찾아들 때 안개비가 흩날리고 멀리 안데스는 구름 속에 잠겼다. 



누군가 많이 슬퍼질 때 볼 수 있는 눈시울을 꼭 닮았다.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을 때 꾹 참은 울음이랄까.. 



   나의 어머니께서는 7남매를 다 키우신 후 풍을 맞고 쓰러지셨다. 다행히도 한의를 하신 아버지께서 비방을 사용하여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셨다. 어머니는 기적같이 소생하셨지만 몸 한쪽이 불편한 가운데 말년을 맞이하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느린 걸음으로 주변 마을을 산책했다. 당신이 쓰러지셨던 이후 부산에 사시던 두 분은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낙동강 곁에 위치한 원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 형제들의 지극한 보살핌은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7남매가 번갈아 가며 당번이 되어 어머니를 보살폈다. 하지만 7남매 가운데 나는 형제들처럼 열심히 어머니를 뵐 수 없었다. 나 혼자 멀리 서울에서 바쁘게 사는 핑계로 어머니를 찾아 뵙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를 회상하면 불효막심했다. 그리고 철이 들면서부터 그런 생각들은 천 번 만 번 고쳐 생각해 봐도 자식이 어머니한테 지은 최악의 죄라는 생각을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어린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께서는 좋아라 웃어 보이며 볼을 만져주셨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많이도 호전되었으나 말투가 어눌했다. 나를 보시던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시며 흡족해하셨다. 두 분께 큰 절을 올린 다음 안부를 나눈 얼마 후, 나는 생전처음으로 어머니를 등에 업고 시골집 앞 논에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자운영 꽃길 사이로 꽃구경을 나섰다.



평생 처음 어머니를 등에 업어본 나는 속으로 즈음이 놀랐다. 건장한 체구의 아들이 어머니를 등에 업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며, 어머니를 업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야위어 보인 어머니의 몸을 등에 업자마자 쌀 한 가마니 이상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머니는 좋아라 하셨지만 그때부터 어머니를 업고 자운영이 흐드러진 논을 한 바퀴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편 어머니의 무거운 몸무게가 내가 지은 죄의 무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먹고사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 



당신께서는 목숨을 다해 애지중지 키웠지만 새끼들의 마음가짐은 당신과 전혀 다른 것. 그래서 어느 봄날 하니와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올리브 과수원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담아 '꽃구경'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만해.."라며 노래를 듣기 싫어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첫눈에 반한 파타고니아 사진첩 #23



꽃구경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고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무엇인데요 

아 솔잎은 따서 무엇인데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노랫말 속에 감추어진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를 생각하면 단박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어머니 생각 간절하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노랫말 속에는 우리 민족의 한(恨)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들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을 시켜 드리는 것 같지만 어떤 연유로 몸이 불편하여 바깥출입을 편하게 할 수 없을 정도란 걸 알 수 있다,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흡사하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고려장(高麗葬)의 모습이 첫 소절에 등장한다.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속에 버려야 하는 아들의 피맺힌 아픔이 절절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나를 쏙 빼닮았다. 나 살기 바빠서 내팽개친 어머니.. 어느 날 당신을 등에 업으미 어머니는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그러하시겠지..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당신의 뜻과 달리 아이를 낳고 키우다 어느 날 쇠약해지고 치매 등 병이 들면 그때부터 새끼들의 짐이 된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딸 아들들은 당신을 잘 모신다며 요양원으로 모신다. 말이 요양원이지 현대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우리 형제들에게 큰 빚을 졌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어머니가 아들 등에 업혀 좋아라 하며 봄나들이를 떠난 잠시 어머니는 그제사 당신의 처지를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당신의 운명이 산자락에 어둡게 묻어난다.


아이고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생전 처음은 아닐지라도 아들 등에 업혀 꽃구경을 나서는가 싶었지만 산속으로 버려지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며 나도 모르게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당신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아들 걱정을 하는 것이다. 아 어머니시여..ㅜ 


꽃구경 봄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그런 마음을 아들이 모를 리 없다. 얼마나 속상하고 아팠으면 아들의 탄식이 이어진다. 노랫말을 유추해 보면 어머니와 아들의 눈에는 이 세상의 슬픔 모두를 담은 눈물이 강을 이루었을 것 같다. 생이별을 앞둔 어머니의 마음과 아들의 애끊는 심정..


어머니 지금 무엇인데요(뭐 하신데요)

아 솔잎은 따서 무엇인데요 



세상의 어머니들은 다 같은 마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새까를 걱정하는 마음..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 어머니라 말한다. 여자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모성애의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이 어머니로부터 발현되고 있다.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글 몇 자 끼적거리는데 눈시울은 왜 이렇게 뜨거울까..



요즘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딸 아들이 하니에게 걸어오는 전화 혹은 만남의 횟수를 계수해 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잘 자랐으며 누구보다도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기 그들에게 베푼 지극정성에 1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나의 지난 행실을 돌아보면 그에 못지않은 것이다.



밀물 때의 북부 파타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 오르노삐렌의 삼각주에 서린 안개비와 구름과 안데스 산맥의 풍광이 촉촉이 젖어 오늘따라 슬퍼 보인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가며 곧 우기는 저 멀리 사라질 것이다.



우기와 건기 그리고 밀물과 썰물.. 이별과 만남은 그렇게 이어지지만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두 분을 다시 뵐 날이 언제인가 싶은 생각으로 꽃구경 나선 우리 앞에 어머니의 얼굴이 거울처럼 투영된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환생이 이루어진다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자운영꽃 흐드러진 논길을 따라 걷고 싶다. 그게 하늘나라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Quando la primavera arriva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_HORNOPIREN
il 16 Marz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파타고니아, 세상에 하나뿐인 오솔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