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전하는 오해와 진실
한 역사가(Sanctus Beda Venerabilis-Beda il Venerabile)는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는 서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로마가 서 있는 한 세계도 서 있으리라"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들어가는 말
서기 2023년 4월 10일 부활절 다음 날 한밤중,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로마의 위대한 건축물 콜로세움(Colosseum(영어), 꼴로세오 Colosseo, 이탈리아어)을 열어보고 있다. 이곳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하니와 함께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서 둥지를 틀고 이탈리아에 거주할 때 필요한 서류를 하나둘씩 챙길 때였다. 먼저 주 이탈리아 대사관에 들러 운전면허증 갱신에 필요한 공증을 하고 난 후 천천히 꼴로세오를 돌아보았다.
그때 만난 풍경들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관련 포스트에서 봤던 장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풍경도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많은 이웃들이 없었으므로 '구독과 좋아요'가 글쓰기에 공을 들인 것보다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에 여러분들이 즐겨 봤던 글 중에 하나를 소환하여 꼴로세오를 마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지난 여정 <칭찬 일색 콜로세움의 진정한 용도> 편에 이렇게 썼다.
그동안 애써 로마행을 미룬 건 세계사에 기록된 역사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혹은 그 후에도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물론 세계사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패권의 역사에 기록된 역사의 내용은 사실보다 치장을 더 많이 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 역사 속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했고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 나타난 치적의 배경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로마제국이 건설한 꼴로세오는 지구별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일색이었다. 특히 역사가들이나 미디어가 한몫 더 거들고 나섰다. 꼴로세오는 세계 최고 최대의 건축물, 위대한 건축물, 전대미문의 건축물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거기에 일반인들까지 덩달아 합세한 것. 나 또한 이 같은 수식어에 쉽게 동의했다.
그런데 이 같은 칭찬은 꼴로세오의 건축 과정이나 배경이 생략되거나 부풀려진 것이랄까. 망설임 끝에 돌아본 콜로세움의 진정한 용도는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사실을 알고 나면 콜로세움에 대한 칭찬이 부끄러움으로 바뀔까.. 골로세오를 다녀온 지 대략 일주일 만에 기록 삼아 첫 편을 끼적거린다. 그동안 살펴본 자료(아래 첨부)들 때문이었다. 그 현장으로 가 본다.
떼르미니 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꼴로세오 역까지 가는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떼르미니 역으로부터 세 번째 정류소가 꼴로세오 역이었던 것. 공간이 좁은 작은 지하철 내부는 붐볐는데 주로 관광객들이었다. 또 서울에서 자주 만나던 지하철을 비교해 볼 때 지하철 내부는 비좁을 뿐만 아니라 때가 꼬질꼬질 묻어나는 게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대한 첫인상을 구겨놓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꼴로세오의 위상을 짐작하게 만드는 한 풍경이랄까.
전철이 꼴로세오 역에 도착하자마자 한 무더기의 승객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느껴졌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따갑고 뜨거운 날씨가 역전까지 가득한 것. 역전에서 바라본 거대한 꼬로세오는 뷰파인더에 다 들어오지 못했다. 광각렌즈를 장착해도 소용없는 일. 나는 우선 꼴로세오가 잘 조망되는 언덕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거대한 건축물은 한 이방인으로부터 관찰의 대상이 됐다.
좁은 언덕길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까지 합세해 이동이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 건 길 옆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이었다. 쓰레기의 종류는 마시다 버린 페트병으로부터 빵 봉지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이런 낯선 풍경은 꼴로세오를 한 바퀴 돌아 고대로마의 발상지로 알려진 빨라티노 언덕(Il Palatino è uno dei sette colli di Roma)까지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와 비교가 됐다. 로마의 꼴로세오는 관광객들로부터 몸살을 앓고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꼴불견을 빼놓고 인류 문화유산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콜로세움을 360도로 스켄하다시피 했다. 콜로세움은 실로 엄청난 규모로 나를 압도했다. 또 거석으로 지어진 외관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일까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품 같았다. 사람들이 콜로세움의 외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당할 것만 같았다.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콜로세움 내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위 사진(링크)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전개될 관련 포스트에 (브런치 베타 덕분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므로, 잘 봐 두시면 콜로세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꼴불견을 빼놓고 인류 문화유산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꼴로세오를 360도로 스켄하다시피 했다. 꼴로세오는 실로 엄청난 규모로 나를 압도했다. 또 거석으로 지어진 외관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일까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품 같았다. 사람들이 이 건축물의 외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당할 것만 같았다.
이날 두 개의 렌즈를 지참하지 않았다면 꼴로세오는 외눈박이로 밖에 촬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로마에 들러 꼴로세오를 카메라에 잘 담으려면 반드시 광각렌즈를 지참해야 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담을 수도 있지만 화질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꼴로세오 역으로부터 이동을 시작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동안 거대한 건축물을 촬영할 수 있는 동선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광각렌즈를 지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침내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아 팔라티노 언덕에 도착할 때쯤 콜로세움이 가장 잘 조망되는 뷰포인트를 찾았다. 바로 이 장면(위 자료사진)이다. 나는 이곳에서 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상념에 젖곤 했다. 콜로세움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6하 원칙(La cosiddetta regola delle 5 W_5 W1 H)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얄팍한 지식을 총동원해 보는 것. 그러나 꼴로세오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상념에 젖었는지 근처의 소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 일어날 줄 몰랐지만, 예약된 기차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렌체로 돌아가면 카메라에 담긴 말없는 콜로세움을 다시 불러놓고 위대한 건축물에 서린 피와 땀에 대한 얽힌 이야기를 둘로 나누어 보고 싶었다. 황제와 로마 시민 혹은 노예들.. 콜로세움은 하루 3만 명이 동원돼 10년 동안 이어진 공사 끝에 이루어진 건축물이었지만, 두루뭉술한 '정치적 용도' 외 진정한 용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누군가 분명하게 한마디는 해야 했다. 또 로마제국의 위대함을 목마르게 칭찬했거나 칭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위대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소상하게 드러내며 자기의 정체성까지 밝혀야 옳았었다.
-역사가 전하는 오해와 진실
한 역사가(Sanctus Beda Venerabilis-Beda il Venerabile)는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는 서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로마가 서 있는 한 세계도 서 있으리라"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한 역사가의 말에 쉽게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접치협잡꾼에 빌붙은 학자들이 아닐까.. 주지하디시피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오늘날 통일 아탈리아에 남아있는 건 꼴로세오가 전부가 아니며 이렇게 위대한 건축물을 남긴 민중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가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대한민국을 빛나게 하는 이른바 K-문화는 몇몇 소수의 정치검사들의 놀음과 달리 진심으로 나라를 빛내고 있다. 이틀 전 EPI의 손흥민 선수가 달성한 100호 골을 보고 또 보며 감격해했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꼴로세오의 용도를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한 역사가처럼 이웃과 민중을 무시하는 발언은 경계 대상 1호가 아닐까..
한밤중에 일어나 우리가 살아왔던 흔적을 돌아보고 있는데 이심전심.. 하니로부터 메신저 창이 땡~하고 울렸다. 포스트 편집을 하다 말고 열어본 그곳에는 조팝나무가 꽃을 피워 뽀얗게 물든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온 한 여인.. 그녀는 한 때 남 모르게 슬퍼하며 울고 있었다.
우리 사화에 만연하는 끼리끼리 문화에 희생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즉시 문제의 현상을 파악하고 조치에 들어갔다. 5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한 직후 내가 한 일은 그녀의 가슴에 여한을 남기지 않게 하는 것. 매우 가깝게 지냈던 나이 50줄의 한 여자(안양의 모 개신교회 권사 직분 추정)가 어느 날 생선가게의 고양이로 돌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제1 금융권의 힘을 등에 업고 시쳇말로 '겁대가리' 상실한 짓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니는 이 시각 내가 잠자리에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오전 11시를 지나 정오를 향해 가고 있다. 이곳은 곧 새벽 4시가 된다. 야심한 밤중에 꼴로세오를 펴 놓고 한 역사가의 망언을 보고 있자니 잠시 미루어 둔 꼴로세오의 용도가 불현듯 떠올랐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네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권력이나 역사 앞에서 함부로 입을 나불대면 안 된다. 내 조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망가뜨리는 소수의 인간들 때문에 이웃과 민중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실례랄끼.. 다행히도 꼴로세오는 역사에 그려진 모순들을 뒤로하고 아직까지 건장하게 남아있다. 로마는 망해도 민중들의 피와 땀은 영원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계속>
Roma resterà in piedi finché il Colosseo resterà in piedi
Il 10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