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A,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어느 봄날
귀티가 줄줄 흐르는 멋쟁이 길냥이..!!
복사꽃이 발그레 물든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 삐에몬떼(Piemonte) 주에 위치한 노봐라(Novara)의 수로 곁풍경이다.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휴식이 주어지면 숙소에서 가까운 이곳으로 출사를 나와 봄 햇살을 만끽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에는 평소 보다 더 자주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에 심취하곤 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 어디를 가나 현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그때 느낀 영감으로 요리로 만드는 한편 데꼬라찌오네(Decorazione, 장식)에 응용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장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악품'을 접시 위에 재현하는 것이랄까..
이날 수로 곁에는 이탈리아 더들 강아지가 보들보들 꽃을 내놓고 볕을 쬐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봐 왔던 산골의 버들강아지 보다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봄의 전령사답게 눈이 마주쳤다. 바쁘게 지내는 동안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늘 봐 왔던 풍경이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수로 곁에는 온통 꽃의 요정들로 물들었다. 명자꽃이 울타리 곁에 흐드러지게 피어 개나리꽃과 함께 떼창을 부르고 있는 풍경.. 이런 풍경을 접시 위에 올리면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마구 부채질한다. 특정 리체타 위에 명자꽃의 느낌을 올려놓으면 음식이라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
피렌체의 모 리스또란떼서 일할 떼는 식욕을 돋우는 초미니 요리 아뮤즈 부쉬(Amuse-bouche)를 독차지했다. 아뮤즈 부쉬란 프랑스어로. 아뮤즈(amuse, 즐겁게 한다), 부쉬(bouche, 입)이란 뜻이다. 코스 요리가 시작되기 전에 한 입 크기로 만든 초미니 요리가 앙증맞고 예쁜 접사에 담겨 손님 상에 오르는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맛을 들린 다음부터 우리나라에서 먹던 유소년기 혹은 청년기에서 먹었던 음식이 점점 멀어질 때였다. 가난하고 암울했던 6070 혹은 7080 때 만난 음식과 너무도 이질적인 음식들이 초보 요리사의 가슴에 등불을 켜게 만든 것이다. 요리는 먼저 눈으로 먹고 그다음 입으로 가져간 다음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것. 그냥 후루룩 쩝쩝 후다닥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식습관은 이탈리아 요리와 큰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특강 시간에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괄띠에로 마르께지(Gualtiero Marchesi) 선생께서는 예비 요리사를 향해 "끊임없이 공부하라"라고 하시며 심미안을 기르는 한편, 여행지에서 만난 영감을 접시 위로 올려보라고 하셨다.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을 통해 식탁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선생의 요리를 담은 다큐 프로그램을 보면 매우 단출하면서 식재료 본연의 멋을 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생의 작품을 만난 사람들은 알프스 주변 국가의 식도락가들로 거리불문 한 걸음에 밀라노까지 달려오는 것이다. 선생의 가르침을 깨달은 다음부터 내가 한 일은 늘 카메라에 담아 오던 신의 그림자를 접시 위에 올리는 일이었다. 그때 만난 풍경들..
수로 곁에서 자지러지고 있던 풀꽃들이 어느 날 초보 요리사의 시선과 마주쳤다. 실제로 이런 풍경은 곱게 채집하여 접시를 장식하는데 쓰이곤 한다. 물론 독초가 아니라 야생의 식용풀을 깨끗이 다듬어 접시 한 모퉁이에 올리면 특정 요리에 봄의 풍미를 한층 더하게 되는 것이랄까..
서기 2023년 4월 14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먹는 나의 식탁에는 된장찌개가 주를 이루지만 이때만 해도 숙소의 주방은 온통 초보 요리사의 습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서 배운 리체타를 나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하며 잡기장에 옮기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노봐라 시내는 물론 평원으로 나가 영감을 얻곤 하는 것이다. 참 까마득한 시간 저편에서 한 요리사가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수로 곁을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단박에 연상된다. 이때 만난 길냥이 한 녀석.. 녀석은 봄볕 아래서 풀꽃들을 벗 삼아 누워있었다. 귀품이 철철 넘치는 길냥이..
이탈리아인들은 길냥이는 물론 반려동물을 끔찍이 아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길냥이가 되어 이방인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내가 만난 길냥이 중 가장 귀품 있고 아름다운 녀석이었다. 그래서 고양이의 정체성을 뒤적거려 봤더니 재밌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고양이(Felis catus, Il gatto Felis)는 포유류 식육목 고양잇과의 동물로, 현생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고양잇과 동물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약 2000만 년 전 분화한 이후, 들고양이는 10만~7만여 년 전부터 출현했다고 전한다. 고양이의 가축화는 약 5만여 년 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중동 지역의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가 식량 확보 등의 이유로 도시 등 인간의 대규모 정착지에 나와 살던 것을 인간이 키우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고양이의 유래다.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은 인간에게는 쥐를 잡아주고 고양이에게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가능하다는 상호 간의 이점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고양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자기가축화되었다. 이후 고양이는 아프로유라시아 전역에 퍼졌으며, 신항로 개척 시대 이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에도 퍼지게 되었다.
고양이의 신체적 특성과 습성은 다른 고양잇과 동물들과 동일하여 빠른 반사신경, 탁월한 유연성, 날카로운 이빨, 넣고 꺼낼 수 있는 발톱 등이 있다. 고양이는 매우 긴 수면 시간을 가지고 있어 하루 종일 자는 시간이 굉장히 많으나 기본적으로 야생에서는 포식자 동물이라는 특성상 박명박모성(薄明薄暮性)으로, 해 뜰 녘과 해 질 녘에 주로 행동한다는 것.
그런 귀한 녀석이 어느 봄날 내 앞에서 눈이 마주친 것이다. 고양이의 유래를 뒤적거려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인류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350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두루뭉술 살펴보면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을까..
수로 곁에서 발견한 자연산 로즈마리노(Rosmarino).. 보라색꽃 한 닢을 따서 입에 넣으니 입안이 천국..
고양이는 육식동물로, 야생에 사는 들고양이는 쥐나 다람쥐 혹은 작은 새 등을 사냥해 잡아먹는다. 한국에서는 사는 곳에 따라 들고양이, 길고양이, 집고양이 등으로 구분되어 불리는데.. 봄볕을 쬐고 있던 녀석의 바로 곁에는 작은 땅굴이 있었으며 그 앞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땅굴을 들여다본다. 참 묘한 풍경들..
수로 곁에는 자연산 멘따(Menta, 박하 속)도 길냥이와 풀꽃들과 함께 어우렁 더우렁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봄날 출사를 나갔다가 만난 귀품 넘치는 길냥이와 봄을 만끽하는 대자연 속 풀꽃들.. 녀석들은 요리 삼매경에 빠져 살던 내게 얼마나 큰 평안을 주었는지.. 길냥이 녀석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UNA PRIMAVERA DEL PIEMONTE, ITALIA SETTENTRIONALE
Il 14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