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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4. 2023

양상추로 만든 김치 맛은 어떨까

-이탈리아, 요리 과정을 즐기면 당신은 요리사


식물을 발효식품으로 만든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육류를 발효식품으로 만든 나라 이탈리아..!!


    서기 2023년 4월 23일 휴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불리아 주 바를레타서 잠시 시내 외출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출발해 구도시(Centrostorico) 중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이다. 대략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살피며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찾아 니서는 것이다. 

오래된 작은 도시 바를레타.. 가톨릭이 국교인 이탈리아서 바를레타 시민들의 신심은 남다르다. 부활절이 지나면서부터 눈에 띄게 달라진 시민들의 행보는 휴일 저녁나절까지 이어지며 떠들썩하다. 사순절기간 동안 숨죽여(?) 살던 사람들이 부활절 직후부터 생기를 되찾으며 활기를 띠는 것이랄까. 


   종교의 힘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현상인지.. 동서양의 문화는 잡기장의 앞면과 뒷면처럼 닮은 듯 달라도 한참 다르다. 우리는 식물을 발효시켜 김치를 만들고 이탈리아인들은 육류를 발효시켜 유제품이나 쁘로슈또 등을 만드는 것. 

우리가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서양의 발효식품과 그들이 상상조차 못했던 식물성 발효식품 김치.. 시내를 배회하는 동안 서로 다른 음식문화 등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테블릿 앞에 등장한 풍경 몇 가지..



   장화의 발등이 뺀질 뺀질.. 누군가 일부러 광을 내놓은 듯한 반질반질 닦은 신발의 의미를 일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곳은 바를레타 중심이자 상징인 에라끌리오(Eraclio - Il Colosso di Barletta)가 위치한 곳이다. 5세기 경에 만들어진 4.5m 높이의 거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표현한 비잔틴 예술의 하나로 재밌는 전설이 발등에서 발현된다.



에라끌리오 동상의 발등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만지작만지작거린 결과 항상 반들반들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누구라도 행운을 기다리는 것이랄까.. 



시내 중심을 돌아오는 동안 잠시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 시내 중심의 모습이 활기를 띤다.



이탈리아의 삼색기가 나부끼는 이 길은 시내 중심이자 자주 애용하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대략 10분 정도 걸으면 바를레타 재래시장이 나타난다. 단언컨대 우리 행성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 사흘 전 시장에서 장을 봐 왔는데 그중 양상추가 포함됐다. 



양상추(Lactuca sativa)는 두 종류였는데 모두 세 포기를 2유로에 구입했다. 두 개는 양배추처럼 생긴 녀석(Varietà di lattuga)이고, 한 개는 배추처럼 생긴 녀석(Lattuga Bionda degli Ortolani)이다. 전자의 녀석들은 야금야금 쌈장에 싸 먹고 남아있는 후자를 김치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양상추로 만든 김치 맛은 어떨까

-이탈리아, 요리 과정을 즐기면 당신은 요리사



   배추처럼 생긴 양상추를 한 꺼풀씩 벗겨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놓으니 파릇파릇 먹음직스럽다. 그냥 먹으면 아싹아싹 식감이 뛰어나고 빵과 함께 고기를 싸서 버거로 만들어 먹어도 일품이다. 인살라따로 만들어 먹을 때는 질 좋은 올리브유와 소금과 후추를 흩뿌리면 너무 맛있다. 그런 녀석을 이번에는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치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맛이 궁금해진다.



배춧잎만한 큼지막한 양상추를 한 잎 크리고 잘게 뜯었다. 무게는 대략 1kg이다. 다 뜯어놓은 양상추 위에 시칠리아산 천일염을 흩뿌려 숨을 죽인다. 대략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천천히 수그러드는 양상추..



수북했던 양상추가 간이 배어 주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략 10분이 경과한 후에 수돗물을 채워 넣고 다음 단계를 기다린다



그동안 줌 죽은 양상추의 물기를 빼고 함께 동행할 큼직한 대파를 쏭쏭쏭.. 잘게 썰어놓고 큰 볼에 담는다.



이렇게 준비된 절인 양상추와 대파가 한 몸이 되었을 때 양념을 시작한다.



양념은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하는 리체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찹쌀풀은 사용하지 않고 기본양념만 사용했다. 찧은 마늘과 대한민국에서 공수해 온 귀히디 귀한 새우젓과 갈치속젓과 고춧가루를 식 미 껏 넣았다.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침이 꼴까닥.. 먹음직 먹음직스러운 풍경이 시선을 압도한다.



양상추는 우리가 즐겨 먹는 배추와 달리 함부로 주무르면 안 된다. 힘껏(?) 주무르면 상추가 물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부드럽게 부드럽게 애무하듯.. 나는 포르께따와 꾸끼아이오(포크와 숟가락)로 살짝살짝 뒤잡아가며 섞어 주었다.


그 가운데 한 녀석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으니 김치 겉절이와 전혀 다른 식감이 젓갈의 풍미를 내며 식욕을 마구 돋우는 것. 아직 익지도 않은 양상추 겉절이.. 익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 궁금.. 


   참고로 알아두자. 양상추에는 비타민D가 들어있다고 한다. 비타민D는 칼슘이 체내의 빠르게 흡수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서 뼈를 튼튼하게 해주고 골밀도를 강화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또한, 양상추에 비타민K도 칼슘이 우리 몸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억제하여 뼈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한 미디로 뼈에 좋은 식품이자 요리..!



여기서 잠깐.. 요리를 귀차니즘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드린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달라진 식습관이 있다면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는 과정조차 힘들어하면 그 어떤 요리라 할지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혼밥을 즐기는(?)는 분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시중에는 혼밥자를 위한 도시락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요리가 천하보다 귀한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생각을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양상추 김치를 만들며 과정을 챙기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리과정을 즐기는 '습관의 근육'을 키우면 당신은 이미 요리사..!



이렇게 만든 양상추 김치는 냉장고에서 잠깐 숙성 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흘 후.. 앞 접시에 덜어낸 녀석을 시음해 보니 기가 막힌다. 아싹 아싹.. 적당히 쓴맛을 대동한 맛의 세계.. 양상추 김치가 어떤 맛일까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의 맛이 등장했다. 그래서 미리 담가둔 오이김치를 먼저 소비하고 녀석은 아껴먹기로 마음먹었다는 거.. ^^



집으로 돌아오는 길.. 4월 말로 치닫든 풍경이 발걸음을 붙든다.



집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공원에 꽃을 내놓은 대추야자가 싱그럽다.



   공원 한편에 마련된 까페에 사람들이 붐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봄이 무르익는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 이분들은 김치에 대해 들어봤음 직도 하나 여전히 쁘로슈또나 살라메를 즐기는 민족들이다. 이탈리아에도 배추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김치를 담가먹지 못하거니 안 한다. 소수의 동양인들이 찾는 배추 속에 깃든 양상추로 만든 김치가 에라끌리오 발등처럼 반들반들 입맛을 사로잡다니.. 땡 잡은 날이다. ^^


In Italia producevano kimchi con lattuga invece che con i cavoli
Il 23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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