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2. 2023

성산일출봉 칼바람과 촛대고둥

-바람. 돌. 여자 그리고 여행자의 시선


제주도가 아름다운 것은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峰, Seongsan Ilchulbong)이 있기 때문이지..?!!



   제주도를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한라산 백록담과 성산일출봉 등 몇몇 비경이다. 우리 국민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다. 화산활동 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화산재가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끈한 성질을 띄게 되었고, 이것이 층을 이루면서 쌓인 것이 성산일출봉이다. 자료사진은 구글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항공사진으로 봐야 제 맛이랄까.. 



본문에 등장하는 여행 사진은 위 자료사진의 우측 상부에 해당하는 해변의 썰물 때 촬영된 것으로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이며 물이 빠진 해변에는 개펄 대신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조개와 고둥 등 해양 생명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제주도 여행 중에 이곳에 들러 점심을 먹고 바라본 성산일출봉.. 평면적으로 만나면 감동이 덜하여 자료사진을 소환한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흔치 않은 광경을 만나게 됐다. 썰물로 바닥을 드러낸 수심이 얕은 호수에는 아낙들이 조개를 케고 있었는데 칼바람이 몰아치는 해변의 바닥은 온통 촛대고둥으로 덮여있었다. 그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본다.



성산일출봉 칼바람과 촛대고둥

-바람. 돌. 여자 그리고 여행자의 시선



 고둥의 종류는 무수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에서 만난 고둥의 종류만도 최소한 여럿이다. 아드리아해서 버려진(?) 고둥들은 주로 화석으로 바닷가로 떠밀려 왔다. 



그런데 성산일출봉이 코 앞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는 거의 한 종류의 고둥들이 빼곡히 널려있었다.



바닷물이 물러간 바닥은 주로 이런 풍경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잡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고둥들..



이날 촛대고동 삼매경에 빠진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6070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땐 1회용 종이컵이 없었을 때이며 가난하고 암울한 시절이었다.



국민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특수를 노리는(?) 분들이 솜사탕이며 고구마며 삶은 계란 등을 내다 판다.



그때 잡기장이나 신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종이컵을 만들고 그곳에 삶은 촛대고동을 담아 팔았다.



당시 고둥은 뾰족한 꼬리 부분을 펜치로 잘라버리고 주둥이 부분을 입으로 쪽~하고 빨면 속내장까지 단번에 빠져나왔다. 별미였다. 조그만 살코기는 식감을 내장은 고소함을 느끼게 만들어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내가 그랬다.



그런 아스라한 추억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골뱅이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로 좋아했다. 그땐 친구들과 포장마차서 이스리를 축내며 입맛을 돋웠지..



그때 먹었던 고둥들이 성산일출봉 앞에 새까맣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서두에 잠시 살펴본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다. 화산활동 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화산재가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끈한 성질을 띄게 되었고, 이것이 층을 이루면서 쌓인 것이 성산일출봉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성산일출봉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의 경관이 만들어졌던 것이므로 실상은 한 몸이랄까..



이곳 아낙네들은 주로 조개를 켜고 있었으며 고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곳의 고둥은 대형 고둥과 달리 크기가 자잘했으므로 이른바 '돈이 안 되는'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둥에 대한 편견까지 작용했을 것이다. 고둥이 가지고 있는 독소인 테트라민(tetramime) 때문이다. 수산물에 의한 식중독은 복어의 독이나 세균 및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고둥(소라를 포함한 말려 있는 껍데기를 가지는 종류)의 독소에 의한 식중독 환자가 가끔씩 생기는 것이다. 


고둥이 가지고 있는 독소인 테트라민은 육식성 고둥의 침샘에 들어 있는 독성인 아민(amine)의 일종이다. 테트라민은 열에 안정한 특징이 있어 삶거나 조리해도 독성이 파괴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국민학교 운동회서 쪽쪽 빨며 먹었던 고둥도 사정은 매한가지.. 포장마차에서 먹은 골뱅이는 내장이 대부분 제거되었다. 그런데 소량의 작은 고둥의 내장까지 발라낼 수 있을까.. 



고둥에 대한 일반의 편견이 침소봉대된 탓인지 바닥애 널브러진 고둥들이 여행자의 뷰파인더를 자꾸만 자극한다. 고둥의 독소가 지나치게 널리 알려진 탓인지 정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만 안 청춘 1인이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추억을 소환하여 어슬렁대는 것이랄까.. 



그렇다. 무엇이든 몸에 해롭다는 것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겠지.. 아니 먹지 마세요. ^^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섭취하는 식재료 중에는 상당한 독을 지니고 있어서 삶거나 데쳐 먹는다는 거..



우리 몸에 해로운 독성을 재거하는 데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는 말이 있다.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른 독을 사용하여 해독을 한다는 것. 한의를 하신 아부지로부터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던 중요한 말씀이다. 



뭐.. 그렇다고 고둥이 지닌 독성을 포장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늘날 의술은 상술로 변화한 지 꽤 오래되어서 양약이나 한약조차도 병원의 매출에 기여해야 될 정도로 인술(仁術)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비근한 예 하나를 들어볼까.. 올해 2월 초, 그러니까 이틸리아로 돌아오기 전의 일이다.  5년 만에 귀국한 한국에서 별 일이 다 생겼다. 눈이 펑펑 오신 날 아파트 계단 앞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찧었다. 그래서 툭툭 눈을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무릎에 통증이 남아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자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이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나를 진료하던 의사가 "무릎을 걷어 올려보라"라고 하여 바지를 걷었더니 외과의사는 무릎을 만지더니 대뜸 "무릎관절에 물이 찼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릎인대가 상처를 입어 MRI를 찍어보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속으로 "이 녀석이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성산일출봉 앞 작은 호수 바닥에 널린 고둥의 이야기를 끼적거리면서 고둥의 독이 아니라 인간에게 끼어든 독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착한 의사님들은 제발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만약 내가 청춘이었다면 녀석은 나로부터 혼줄이 났을 것이다. 전형적인 '매출형 의사'이자 환자의 사정은 나물라라 하는 짝퉁의사라고나 할까..



성산일출봉 옆에 널부러진 고둥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위치는 한국에서 만 7개월을 보내고 난 후 머무르고 있는 바를레타이다. 만약 그 녀석의 오진으로 MRI를 찍고 수술을 했다면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만약 수술을 하고 다리에 석고 깁스를 했다고 한다면, 이후에 무릎을 잘 움직이기 위해 물리치료까지 병행해야 될 것이다. 병원과 의사가 환자를 만들고 치료비까지 욹어내는 외눈박이 세상 혹은 정보화 시대에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튼 제주도의 특별한 오름인 성산일출봉과 함께 살아가는 녀석들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더 비경을 추억할 수 있게 만든 파수꾼이자 지킴이로 등장했다. 처음 공개하는 방대한 양의 여행 사진과 영상 속에서 오래된 항긋한 추억이 깃든 것이다.



VISIT JEJU의 자료에 따르면 성산일출봉 바다 근처의 퇴적층은 파도와 해류에 의해 침식되면서 지금처럼 경사가 가파른 모습을 띄게 되었다. 생성 당시엔 제주 본토와 떨어진 섬이었는데, 주변에 모래와 자갈등이 쌓이면서 간조 때면 본토와 이어지는 길이 생겼고, 일제강점기인 1940년엔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는 육지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오르면 너비가 8만여 평에 이르는 분화구를 볼 수 있는데, 그릇처럼 오목한 형태로 안에는 억새 등의 풀이 자라고 있다.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암석)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城山)', 해가 뜨는 모습이 장관이라 하여 '일출봉(日出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기록에 등장한 것처럼 고둥들이 살고 있는 곳과 성산일출봉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곳 성산일출봉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1943년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녀석들이 이곳을 요새화하기 위해 일출봉 해안절벽에 24개의 굴을 팠다고 한다. 



굴속에 폭탄과 어뢰등을 감춰두고 일전에 대비했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패전한 것이다. 참으로 몹쓸 녀석들.. 이 굴은 이후 잠녀의 탈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는데.. 성산일출봉과 본토를 잇는 길목은 간조 때 길이 터진다 하면 '터진목'이라 불렀고.. 이곳과 일출봉의 우뭇개 일대에서 4.3 항쟁 당시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한다. 참 슬픈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니.. 고둥이 지닌 독성은 조족지혈 이하이고 섬나라 원숭이 흉내를 내는 몇 안 되는 무리들의 독소들을 하루라도 빨리 퇴치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길에 막혀 성산일출봉과 떨어져 지내지만 고둥들이 멀쩡하게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을 보니.. 때로는 차마 웃지 못할 촌극이 고둥과 성산일출봉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나 할까..



힘주어 말한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것은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峰, Seongsan Ilchulbong)이 있기 때문이다.


Il vento, le pietre, le telecamere di donne e viaggiatori_ISOLA JEJU
Il 02 Maggi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시에나, 어느 포토그래퍼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