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29. 2019

아무도, 그 누구도 모른다

-내 곁을 떠난 친구와 이탈리아 요리 대가 

괘 오래 전의 일이다. 나의 절친이 우리 집을 아주 오랜만에 방문했다. 결혼 후 서로 바쁘게 지내던 터라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요즘처럼 세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소통수단이 일반화되지도 않았던 시절이라 안부를 묻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주로 해외에 머물던 친구는 귀국 전후로 구닥다리 전화기 벨을 울리곤 했다.


"뭐해..?"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너무 반가웠다. 우리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거의 그림자처럼 서로 따라다녔다. 둘 다 사진 촬영이 취미였으므로 들로 산으로 어디든지 함께 쏘다녔다. 어떤 날은 우리 집에서 또 어떤 날은 친구의 집에서 밤을 새우곤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흉허물없이 형제처럼 지냈다. 그런 친구가 귀국 직후 부산에서 서울로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모처럼 술상 앞에서 묵은 회포를 풀 수 있었는데 이 날따라 친구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늘 호탕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했던 친구는 아내가 내놓은 상차림을 물끄러미 살피는 일이 잦았으며 표정까지 어두웠다. 또 음식을 깨작거리는 듯했다. 체조를 했던 건장한 체구는 조금은 야윈 거 같았지만, 그때는 그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불치의 병명을 주치의로부터 전해 들은 직후 마지막으로 나를 만났던 것일까.


그로부터 대략 두 어달 후 친구의 근황을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간경화 말기로 부산의 모 대학 병원에서 사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직후 둘도 없는 친구였던 나를 만났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봄날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나고 말았다. 불혹을 코 앞에 둔 젊디 젊은 나이였다. 친구는 생전에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결혼 후에도 이렇게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까. 친구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직후 나를 만났던 게 틀림없어 보였다. 만약 그랬다면 내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어야 옳았을 게 아닌가. (나쁜 녀석..ㅜ) 친구를 충북 괴산의 어느 골짜기에 홀로 남겨두고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속에서 나의 어깨는 연신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술 속에 파묻혀 살았었다. 세상에 둘도 없던 친구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의 미래는 막연한 기대가 전부인 것 같다. 우리가 그 어떤 계획을 세울지라도 현실로 다가올 때까지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거나 게을리할 경우의 수에 직면하면, 우리 앞에 다가올 기회는 위기로 변하며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이 따랐다고나 할까.


절친을 까마득히 잊고 살던 어느 날 전혀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탈리아 요리를 처음 접한 이후, 대가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요리 철학은 세치 혀끝으로 맛을 보지 않아도 세상에 널린 진귀한 요리 전부를 맛보는 듯했다. 2017년 12월 26일에 작고하신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 괄띠에로 마르께지(Gualtiero Marchesi) 선생께서는 나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다.



"요리사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을 접시 위에 담을 수 있을 때까지.."


선생께서는 힘든 호흡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당신의 요리 철학을 늦깎이 꼬레아노에게 전수해 주셨다. 그리고 어느 봄날 내 가슴속에서 친구의 모습과 동시에 오버랩되고 있는 것. 절친의 죽음은 어느 날 내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준 대신, 요리 대가께서는 이탈리아 혹은 유럽을 통째로 야금야금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안겨 주셨던 것이다. 


이순이 넘도록 세상을 살아보니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부처님보다 예수님보다 더 영특한(?) 휴대폰이 세상을 손바닥 안에 가두어 둔 것 같지만, 실상은 돌아서는 찰나의 순간 조차 모르는 게 우리의 모습 아니던가. 친구와 거장이 떠난 빈자리를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메꾸고 있다. 참 좋은 계절이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황당했던 기록이 만든 놀라운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