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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1. 2019

야생 열무의 화려한 변신은 무죄

-내게 친근한 '아뮤즈 부쉬' 한 입 요리 이렇게 만들었다 

어떤 판결문..!!!



아뮤즈 부쉬를 책임진 초보 요리사


이탈리아 요리 학교에서 현장 실습을 할 때 일이다. 늦깎이로 입문한 요리사였기 때문에 꾸치나 내에서 단연 튀는 모습이다. 피렌체의 모 리스또란떼에서 함께 일했던 요리사들이 대부분 아들 딸 같은 나이였다. 하필이면 셰프가 독일인 출신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셰프로 발탁되어 유서 깊은 리스또란떼를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작도 빠르고 힘도 세고 요리를 만드는 재주는 타고난 것 같았다. 


꾸치나를 총괄하는 셰프는 요리만 잘해서 안 된다. 리스또란떼에 입고되는 그날그날의 식재료를 관리하고 휘하의 요리사들을 감독하는 일 등을 책임진 리스또란떼의 간판(얼굴)이라 할 수 있다. 셰프(Chef)의 정확한 의미는 프랑스어로 지휘자, 대표, 마스터, 고용주(boss) 등을 뜻하는 수장(首長)으로, 본래 어원은 머리(首, Head)를 뜻하는 라틴어 'caput'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위치에 있던 셰프가 어느 날 나에게 아뮤즈 부쉬 (Amuse Bouche)를 맡긴 것이다. 




프랑스어로 아뮤즈 부쉬란 '한 입 요리'를 뜻하는 것으로, 대개 예쁜 숟가락 위에 한 입 크기의 요리를 담아 올린다. 이 같은 요리는 프랑스 요리의 코스 요리 중에서 두 번째 해당하는 것으로, 식전주 다음에 먹으며 식욕을 돋우는데 주로 사용된다. 아직 인살라따는 물론 쁘리미 세꼰도 등으로 이어지는 순서를 남겨두고, 손님이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을 확인하고 곧바로 제공되는 게 아뮤즈 부쉬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세상에 오만가지 이상의 매우 다양한 아뮤즈 부쉬가 존재한다. 리스또란떼의 첫인상을 가름 지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그 이유이다. 어느날 셰프가 그런 역할을 나에게 통째로 위임한 것이다. 셰프가 바쁘기도 했지만 몇 번 나의 실력(?)을 저울질 한 다음부터, 아뮤즈 부쉬의 구상과 요리는 나의 임무로 맡겨진 것이다. 한 숟가락 크기의 작은 요리는 이때부터 꽤나 유명해지게 됐다. 




까메리에레(Cameriere_웨이터)는 예약 손님이 도착하는 즉시 주문을 확인하고 곧바로 내게 다가와 그날 제공될 아뮤즈 부시의 뒷이야기를 청취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탈리아어로 설명해야 했다. 손님들이 당장 요리의 근거를 캐물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뮤즈 부쉬는 매우 정교한 손질이 필요한 요리로, 요리사의 철학은 물론 음식의 맛까지 충족시켜야 했다. 


셰프로부터 위임받은 한 입 요리는 머지않아 동료 요리사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퍼 나를 정도로 인기 절정이었다. 지면을 꽤나 많이 할애한 한 입 요리는, 오늘의 리체타에 포함됐기 때문에 체험담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사흘 전 글쓴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해변의 사구에서 채취한 야생 열무로 만든 아뮤즈 부쉬를 소개해 드리도록 한다. 


참고로 열무에 풍부하게 함유된 비타민 C 성분이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질병을 유발하는 여러 유해물질을 없애주는 항산화작용을 통해, 면역력을 증진시키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몸에 유익한 식재료이다.



아뮤즈 부쉬로 만들어 본 야생 열무의 화려한 변신


이틀 전, 저의 독자분들께서는 질기디 질긴 녀석 길들이기를 보셨을 것이다.  그곳에 실렸던 리체타를 참고하시고, 본문 상단에 삽입된 자료사진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잘 데쳐낸 삶아낸 야생 열무는 찬물에 깨끗하게 잘 헹군 다음 냉장고에서 1박 2일 동안 숙성 과정을 거쳤다. 혹시라도 모를 풀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또 그 아래 자료사진은 바를레타 사구에서 '날 잡아 잡수~'하고 넙적 엎드린 야생 열무의 모습이다. 



이파리와 줄기의 크기가 삔자(Pinza_겸자)  보다 더 컸다. 대략 45cm나 됐다. 경험에 따르면 녀석은 얼마나 질긴지 생으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잘 삶아서 요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30일, 현지 시각) 야생 열무 요리를 위해 아침운동을 끝마치고 가까운 대형마트에 들러 살라메 1킬로그램(8.9유로)을 구입했다. (돼지 목삼겹살이나 삼겹살로 만들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미 구상해 놓은 요리로 서두에 언급한 아뮤즈 부시를 만들어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결과물을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릴 것이지만, 여러 식재료가 잘 어우러져야 했다. 야생 열무 이파리는 한 입 크기의 살라메에 돌돌 말아 이쑤시개로 고정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리브유 몇 방울과 깨소금 몇 알을 올렸다. 그런 다음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먹는 제철 채소 라 루꼴라(La Rucola) 꽃으로 장식했다. 노란 꽃잎은 겉보기와 달리 쌉싸름하며 미네랄 향기를 품고 있는 맛있는 식재료이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맛의 세계를 조금은 색다르게 표현해 봤다.



야생 열무의 화려한 변신은 무죄


사건번호 2019-11-28 무단점유  

원고: 이탈리아 뿔리아 주 바를레타 시 

피고: 야무(야생 열무)

       최후 주소: 이탈리아 뿔리아 주 바닷가 어느 사구, 연락처 전무, 보호자 전무

변론 종결: 2019년 11월 30일

판결 선고: 2019년 11월 30일


주문은 다음과 같다.

1. 피고는 원고의 토지 내에서 무단 점유한 사실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주 헌법 제119조 112호에 따른 무단점유에 해당하는 죄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항소 이유를 살펴보니 피고가 식품 본연의 자세로 인간에게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또한 원고가 피고의 점유사실을 알고도 장기간 방치하며 노숙하게 하는 민폐를 끼친 사실이 확인된다. 이 같은 민폐는 국가가 정하는 노약자 보호법의 정신 등에 따라 그동안 끼친 손해에 대해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원고는 2019년 11월 30일부터 즉각 피고 야무에게 사과하는 한편, 피고가 편히 쉴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야 한다.

2. 소송 비용 전부는 원고가 부담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어느 날 판결문을 받아본 야무는 깜짝 놀랐다. 판결문에는 무단점유 죄가 적시되어 유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야무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꼬레아노 1인의 눈에 띄어 화려하게 변신하게 된 것이다. 야무의 화려한 변신이 무죄를 이끌어낸 것이다. 끝!!


AMUSE BOUCHE_RAPHANUS RAPHANISTRUM
il 30 Novembre, Citta' di Barletta PUGLI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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