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
얼마나 그리웠으면 파타고니아로 떠날 생각을 했을까..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두 프랑스 여인
어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약간은 쓸쓸함이 깃든 아스라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코크랭에서 만난 여행자를 만나 본다. 관련 브런치 보라색으로 수놓은 엉겅퀴의 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정한 작은 도시 코크랭은 그야말로 때 하나 묻지 않은 곳으로 남반구(47°15′17″S 72°34′30″W)에 위치해 있다. 해발고도는 147미터로 매우 낮은 곳이자 도시를 이루고 있는 지반은 거대한 암석 위에 세워진 곳. 이곳에 사는 시민들은 2002년 기준 3천 명이 채 안 되는 곳이다.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를 나서면 5분이면 시내(시내랄 것도 없지만)에 도착하고 10분이면 마을을 관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 살면 짧은 시간 내에 아무개는 물론 개나 소도 다 알 수 있는 곳이랄까.
어느 날 우리는 이곳에서 프랑스에서 온 두 여행자를 만나게 됐다. 버스터미널에서 남부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버스 시간표를 물어보러 갔다가 우연찮게 만났던 것이다. 그곳은 작은 공원이 있는 곳이자 이 도시가 중심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붐빌 때라 해봤자 열댓 명 정도.. 가까운 곳에 리스또란떼와 슈퍼마켓이 있어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붐비는 숫자가 대략 그러하다.
그나마 이 같은 숫자도 버스가 도착하여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을 경우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은 대합실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 이서 서성거리는 곳. 도시는 그렇게 한적한 곳이었다. 우리가 두 여행자를 만났을 당시에도 몇 안 되는 여행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두 프랑스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행자시죠? 어디로 가세요? "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동안 알게 된 게 사람들의 옷차림이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과 여행자들은 옷차림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두 여인도 그런 셈이었다. 따라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의외의 답변을 듣게 됐다. 그들은 우리가 가려는 깔레타 또르뗄(Caleta Tortel)을 거쳐 오히긴스(O'Higgins)로 간다고 헸다. 이미 파타고니아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는데 생각건대 파타고니아 끝까지 갈 요량이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질문을 헸다.
"파타고니아를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이 질문은 나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지가 아니라 마니아들만 찾는 곳이랄까. 보통의 관광지에서 전혀 느낄 수 없는 풍광이 끝도 없이 널린 곳.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아서 숙식 해결이 여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배낭여행자들은 코펠이며 버너 등의 장비를 꼭 챙기게 된다.
이 도시에서처럼 잠시 머무는 동안 식료품을 구입해서 한적한 곳(캠핑촌이 따로 없는 곳이 허다하다)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여행자들의 차림은 꽤재재한 모습이 묻어있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에서 보듯이 주로 같은 옷을 입은 사진이 찍힌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형편은 두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배시시 웃어 보이며 콧먹은 소리의 스페인어로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여행 가이드북과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찾게 되었는데 너무 가 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의 결정이 옳았어요. 뻬르팩토!!"
한 여성이 답변을 하는 동안 다른 한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의 생각도 그러하다며 동의하며 웃어 보였다. 우리도 이들과 마찬가지였다. 당시만 해도 이곳을 다녀온 여행자를 찾을 수 없어서 지도를 펴 놓고 여행지 곳곳을 탐색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여성의 얼굴에 묻어있는 나이테(?)를 보니 우리처럼 연식이 자자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하필이면 남편들은 쏙 빼놓고 둘만 왔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안 보여요?"
이번에는 곁에 있던 아내가 내가 한 질문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야"라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답변을 듣게 됐다. 그녀들은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또 한 동네에서 살았는데 정년이 되어 은퇴하면 파타고니아로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콧 방망이 스페인어에서 보통 사람들이 상상 조차 하기 힘든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남편들은 쏙 빼두었다.
"저희들요.
파타고니아로 가기 위해
스페인에서 1년 동안
스페인어 공부하고 왔어요."
우리가 만난 파타고니아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실이었다. 골백번 들어봤자 한 번 보는 것만도 못하며, 한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실행에 옮기는 게 최선이랄까. 파타고니아는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 봐라. 상상할 수 없는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진 곳이다"라고 떠들어 봤자 씨알도 안 먹힐게 분명하다. 대체로 그들은 편안하게 다녀오는 패키지 관광을 통해 희희낙락하며 지내다 오는 것을 즐길 뿐이다. 특히 연식이 젊으면 젊을수록 그 같은 현상은 더할 때였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파타고니아는 달라도 여간 다른 게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자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는 신비로운 땅이었다. 어디서부터 그런 마력이 풍겼는지 잘 알 수가 없지만, 때 하나 묻지 않은 대자연 속에 발을 디뎌놓는 순간부터 물아일체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결에 쌓인 눈부신 아침
우리는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여행의 피로를 푸는 한편 짬 만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리고 어느 날 동네 뒷산에 올라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곳은 조금 전까지 우리가 머리를 뉘었던 숙소가 있는 곳이었는데, 뽀얀 비단결에 쌓여 꿈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짐작컨데 물안개가 도시 전체를 휘감으며 비경을 연출한 것이다.라고 코크랭(Lago Cochrane)에서 발원한 작은 강물(Rio Cochrane)이 도시를 휘감고 돌아, 보다 더 큰 리오 코크랭으로 이어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도시의 동쪽을 병풍처럼 드리운 산들에 가로막혀 묘한 실루엣을 자아내며 황홀함을 선물하는 것. 이때부터 전에 없이 풀밭이 좋았다. 가을을 닮은 풀꽃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던 곳..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아래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프랑스에서 온 두 여성은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대략 이순의 나이에 파타고니아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를 하고 떠날 결심을 굳히는 한편, 실행에 옮긴 뒤에는 그들만의 여행 철학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살이 다 접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하늘은 파타고니아를 점지해 준 것이다. 그녀들은 우리가 이 도시를 떠날 때 같은 버스에 동승을 하게 됐다.
그리고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 풍경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난들 달랐을까..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여행자들의 시선은 가끔씩 먼지가 폴폴 날리는 창밖에 거의 고정돼 있었다. 어느 한 장면도 빼놓을 없는 풍경들이 차창을 줄곧 따라다니는 것이다. 사는 동안 잊고 살던 그리움들이 그곳에 펼쳐졌던 것일까.
아마도 이날 아침 우리를 맞이한 풍경들도 같거나 비슷했을 것이다. 누구인가 말을 붙이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이라도 속상한 일이나 묻어두었던 상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분위기가 맴도는 것이다. 어디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약간은 쓸쓸함이 깃든 아스라한 풍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내는 이날 아침 리오 코크랭이 연출한 뽀얀 비단결에 쌓인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 아침이었다. 풀꽃들이 목 놓아 소리를 지르며 배웅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념에 젖어든 것이다. 프랑스에서 온 두 여인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사무친다면 당신을 오롯이 품어줄 대자연 속 파타고니아로 떠나시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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