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4. 2019

전설로 사라진 그 호숫가의 풍경들

#19 아내와 함께한 여행 사진첩


세상은 컴을 열고 스크롤바를 내리는 3초 보다 더 빨리 전설로 사라진다..!!



나의 메모리칩에서 잠자던 녀석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Uyuni deserto)에서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장차 우리 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여행 일정에 짜인 코스를 따라갈 뿐이었다. 우리는 산 페드로 데 아따까마에 도착하는 즉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향했다. 산티아고는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산티아고에 들러 버스를 갈아탈 요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곳에서 대략 1주일만 머물렀어도 될 뻔했지만, 우리가 계획한 여정에서 빠져있었던 것이다. 또 우리 계획 속에는 일정을 포함하여 지참한 카메라의 용량까지 계산해야 했다. 요즘 생각해 보면 너무 촌스러운 <미놀타 디지털카메라>였다. 



손톱만 한 작은 메모리칩의 용량은 1기가바이트도 안 되는 매우 작은 용량이었으므로 여행 일정에 맞추어 나누어 찍어야 했다. 예컨대 한 여행지에서 20컷만 찍어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여행지에 도착하면 풍경을 잘 살펴야 했으며, 용량 이상의 컷이 생기면 촬영된 컷에서 선별해야 하는 아픔을 겪을 때였다. 


디지털의 개념 조차 잘 정리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떠난 곳이 이름하여 '남미 일주'였던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진은 그렇게 남겨졌으므로, 우리에게는 매우 귀한 추억을 담은 자료들이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도 이 같은 등식에 따라 서너 컷의 사진만 찍었을 뿐인데, 그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터미널이 위치한 곳이며 칠레 대학이 가까운 곳이었다. 



산티아고에서 1박 2일을 보낸 후, 우리는 곧장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밤새 달렸다. 우리는 2층 버스 앞 좌석에 앉아 침낭을 이불 삼아 두 다리를 쭉 뻗고 버스에 몸을 맡겼다. 잠시 눈을 붙인 후 저만치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는데 세상은 온통 뽀얀 안개로 뒤덮여있었다. 


우리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여행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풍경을 향해 셔터질이 시작됐다. 그 풍경들(자료사진)이 카메라에 저장된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덧 20년을 향해 가는데 그동안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여 인류문화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IT세상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이런 사진을 브런치 등 인터넷에 올려두면 누가 쳐다나 볼까.. 



어느 날 파워블로거 자격으로 크리에이터 행사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그때 주최 측의 한 담당자가 "유저가 인터넷을 열면 3초 안에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을 했다. 컴을 열고 스크롤바를 내리는 3초 안에(아니면 더 빠르게) 콘텐츠 읽기를 결정하므로, 글을 쓸 때 참고하라는 말이었다. 포털의 유저들 대부분이 그러한 약속에 따라 글을 쓴다는 것. 



전설로 사라진 그 호숫가의 풍경들


그땐 그걸 전혀 눈치 조차 채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했다. 요즘처럼 브런치가 있기나 했나.. 포털은 여러 번 개편되어 요즘은 세련됐지만 낡은(?) 블로그에 편집도 안 된 사진을 올려놓고 자랑질 삼아 글을 끼적거리던 시대였다. 그러고 보니 외장하드에 빼곡한 자료사진은 물론 우리들의 여행 추억이 전설처럼 저만치 멀어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초 만에 사라질 기억들이 전설로 남아 어느 날 내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그런 것일까.. 지금은 전설이 된 북부 파타고니아 장끼우에 호수에 위치한 뿌에르또 옥타이에서 만난 비경을 잠시 둘러본다.



우리가 뿌에르또 몬트에 도착한 이후 맨 먼저 방문한 곳은 숙소에서 가까운 앙헬모 어시장(Mercato di Angelmo)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뿌에르또 몬뜨의 숙소는 매우 특별한 곳이었다. 이민자들이 지은 목조 건물은 아침마다 독특한 풍경을 만들곤 했다. 



우기가 끝날 때쯤이면 집집마다 난로에 장작불을 때므로 옅은 새파란 색이 섞인 뽀얀 연기들을 집집마다 피워 올리는 것이다. 구도시의 중심가는 주로 목조건물이었는데 앙헬모 어시장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몬뜨에서 멀지 않은 칠로에 섬에 들렀을 때도 특별한 풍경은 이어지고 있었다.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의 풍경도 매한가지였다. 신식 콘크리트 건물도 있었지만 대체로 낡은 목조건물들이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2층이었는데 계단을 오르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리는 곳이었다. 누군가 샤워를 하거나 나쁜 짓(?)을 해도 한 집안에서는 누구든지 다 듣게 되는 게 목조건물이었다. 



그리고 집안은 비에 젖은 나무들의 묘한 향기가 뒤섞여있었다. 이 같은 향기는 우기 때나 건기 때 모두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뿌에르또 옥타이에 들러 숙소를 정한 곳도 같은 사정이었다. 겨우 얻은 숙소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는데 여주인은 그게 미안했던지 비용을 대폭 낮추어 우리를 맞이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손님은 아내와 나 둘 뿐이었다. 성수기 때는 관광객들이 피서 삼아 들러 멀리 오소르노 화산과 장끼우에 호수를 바라보며 망중한에 젖는 곳. 우리는 그들이 모두 떠난 빈자리를 찾아 어느 날 아침 산책길에 올라 비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풍경도 있었나 싶은 생각이 번득 들었다. 아끼고 아껴둔 필름(?)은 이때부터 소모되기 시작해 꽤 많은 분량의 사진을 남겼다. 그중에 뿌에르또 옥타이의 명소라 할 수 있는 작은 언덕 위에서 바라본 오소르노 화산과 장끼우에 호수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다. 지금 다시 이곳을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은 젖은 목조건물에서 피어나는 오래된 나무향기를 다시 풍기지 않는다. 



사진첩을 열어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괜한 상념에 젖어드는 것도 그 때문일까.. 요즘 가끔씩 듣는 슬로월츠풍의 옛날 노래 < 웬일인지>의 노랫말 속에서 그 심정이 묻어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자꾸만 그리움이 솟구치는 것이다.



웬일인지 웬일인지 울고만 싶어요 웬일인지 웬일인지 가슴만 아파요 그대 없는 이 가슴 그리움만 사무쳐 달래어 볼길 없어도 언제까지나 그대의 순정만은 피어있는 꽃송이 건만 웬일인지 웬일인지 울고만 싶어요 웬일인지 웬일인지 울고만 싶어요 웬일인지 웬일인지 가슴만 아파요 상처 입은 이 가슴 추억만이 서러워 씻어볼 길은 없어도 속삭여주던 그대의 음성만은 살아있는 꿈이 건마는 웬일인지 웬일인지 울고만 싶어요  -김추자 노래 연속 듣기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Lago Llanquihue_Puerto Octay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질기디 질긴 녀석 길들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