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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5. 2019

시간이 멈춘 꿈같은 여행지

-토레스 델 파이네 가는 길


말라버린 나무에도 생명은 존재는 것일까..?



우리가 파타고니아에 머무는 동안 뿌에르또 나딸레스(Puerto Natales)에서부터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Il Parco Nazionale Torres del Paine)으로 이어지는 칠레의 9번 국도는 다섯 차례나 오갔다. 첫 번째 길은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를 위해 떠났다. 그런데 준비 부족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서 왕복을 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 다시 준비를 한 다음 아내와 나는 토레스 델 빠이네 등반에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두 번의 왕복이 되었다. 


그리고 또레스 델 빠이네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여행 일정에 따라 다시 9번 국도를 이용한 것이다. 이번에는 피츠로이 산군이 위치한 엘 찰텐(El chalten)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가는 일은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뿌에르또 나딸레스에서부터 또레스 델 빠이네까지 이어지는 9번 국도는 여행자들이 매우 즐겨 찾는 길이다. 




파타고니아 투어의 백미가 이 길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자의 천국이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곳은 여행자들이 발품을 팔아야 되는 곳이므로 보통의 관광지와 비교 조차 불가능한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두 번씩이나 방문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총 일곱 차례나 9번 국도를 이용한 것이다. 




우리는 뿌에르또 나딸레스의 숙소에서 짐을 꾸려놓고 가까운 버스 터미널을 여러 번 오갔다. 엘 찰텐으로 가는 버스 시간도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스표를 구입할 때 맨 앞 좌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2층 버스 앞 좌석에 앉으면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여행지를 카메라에 담기 좋은 명당인 것이다. 




이 같은 습관은 오래된 것으로 어디를 가나 거의 같은 장소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포스트의 부제 <토레스 델 파이네 가는 길>도 그렇게 촬영된 사진들로 이루어졌다. 다시 봐도 꿈같은 여행지이자 시간이 박제된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칠레의 뿌에르또 나탈레스에서부터 이동하여,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 유명한 루따 꾸아란따(RUTA 40)를 이용하여 북상하며,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엘 찰텐으로 가게 되는 여정이다.



위에서부터 스크롤바를 내리고 오면서 만난 풍경들은 파타고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로, 우리가 늘 봐 왔던 산이나 평야와 사뭇 다른 풍경들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뿌에르또 나딸레스의 위도(51°44′S 72°31′W)가 말해주듯, 적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남극과 보다 더 가까운 지역이다. 그러므로 산림의 모습이나 주변 환경이 색다른 곳. 곧 우기가 닥쳐올 시기였으로 대지는 메말랐고, 곳곳에 고사한 나무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의 뷰파인더는 창밖을 응시한 채 가끔씩 셔터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한 순간 내 앞에 시간이 멈춘듯한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 풍경들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은 기억의 지속(La persistenza della memoria)이란 작품이다. 




주지하다시피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은 초현실적 형태로 그려져 시계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설명에 따르면 부드러움과 견고함의 조합이란다. 누군가 설명을 따로 해 주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 또레스 델 빠이네로 가는 9번 국도변은 온통 쓰러진 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한 때 이 평원의 주인이었건만 어떤 이유로 발가벗긴 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것이다. 그들 너머 저 멀리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이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희한하지.. 어쩌면 황량해 보이는 벌판이 생명력을 얻어 여행자의 시선을 마구 자극하는 것이다.



말라버린 나무에도 생명이 존재하는 것일까.. 맨 처음에 소개된 뿌에르또 나딸레스 버스 터미널에서 촬영된 사진 4장 속에 'Spirit of flower'라고 쓰인 문구를 봤을 것이다. 어쩌면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여 그냥 스크롤바를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속뜻을 알고 나면 파타고니아가 어떤 곳인지 넌지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서구의 침탈자들이 땅을 차지하기 전까지, 이곳에 살던 원주민 인디오들은 꽃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이자 믿음인가. 



사람들은 바람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 했을까.. 아니면 풀꽃의 생명력보다 더 나약한 존재로 생각했을까..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긴 여행 끝에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낀 아름다운 도시 깔라파테에 도착할 것이다. 



그 도시의 이름 깔라파테(Calafate)는 남부 파타고니아에서 자생하는 깔라파테 열매(베리)에서 비롯되었다. 까마중만 한 작은 열매는 익으면 까맣게 변한다.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특별하다. 이때 누군가를 향해 웃어 보이면 상대는 까무러치고 만다. 입안이 온통 까맣게 물들어 해괴망측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다시 상대방이 한 알 따서 입안에 넣고 바라보면 둘 다 동시에 까르르 까무러친다. 



이 열매를 따 먹으면 다시 그 장소를 찾게 된다는 인디오의 전설이 깃든 것이다. 그 전설 때문인지 우리는 다시 이곳을 찾아 먼 여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종착지 엘 찰텐(El Chalten)은 또 하나의 전설을 품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산이란 것. 


세로 피츠로이(Cerro Fitz Roy)라 불리는 산의 본래 이름이 그랬다. 엘 찰텐 마을에서 피츠로이 산을 올려다보면 마치 산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듯하다. 동태평양의 고온 다습한 공기가 산을 지나면서, 구름을 만들고 눈을 만들어 낸 현상들이 마치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모습에서 유래되었던 것. 다시 꽃의 영혼으로 돌아가 볼까..



지구별의 포식자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세상 모든 것들의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산다. 지구별의 나이 46억 년 이상을 감안하면 호모 사피엔스로 불렸던 인간들은 지구별의 역사 끄트머리에서 겨우 밥술이나 뜨고 있는 것이다. 그게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의 모습이다. 대략 1억 4천 년 전에 나타난 종자식물만 대비해 봐도 조족지혈 이하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유독 인간에게만 영혼이 존재한다는 우격다짐은 풀꽃들 조차 이해하지 못할 게 아닌가. 또레스 델 빠이네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꿈 꾸는 듯한 풍경이 나를 자극한 것도, 알고 보면 그들 속에 내재된 영혼 때문은 아닐까.. <계속>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Puerto Natales verso Torres del Pain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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