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9. 2019

지구별의 추억을 새긴 빙하의 나라

-세상을 깨닫는 순간부터 바보가 된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아이가 된다.. 정말로!!


지금 내 앞에는 엄청나게 크고 높은 얼음 장벽이 길게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빙하로 부르고 있고 남미의 남부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 엘 깔라파테에 위치해 있다. 어린 시절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던 빙하가  남미 파타고니아의 빙하지대(El campo de hielo patagónico sur)로 길게 이어진 안데스의 끝자락에 위치한 것이다. 


이 빙하의 이름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Il ghiacciaio Perito Moreno_El glaciar Perito Moreno)이다. 페리또 모레노 빙하는 길이가 약 30킬로미터에 이르고 폭은 5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또 호수로 이어진 빙하의 끝단 높이는 최대 60미터에 이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빙하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 거대한 얼음덩어리의 가장 큰 매력은 붙박이로 고정된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빙하(氷河)로 부르게 되는 것. 




빙하의 형성 원리


빙하의 형성 원리에 따르면 눈이 내리는 양보다 공기 중으로 다시 돌아가는 양이 보다 적은 지역에서 차츰 얼음 층이 누적되어 생기는 것이다. 맨 처음 눈이 쌓이게 되면 대충 얼기설기 엮인 가볍고 약한 눈 퇴적층이 된다. 그러나 이 퇴적층이 미터 단위가 아니라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 단위로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눈 사이의 빈 공간은 빠르게 메워지며 눈송이를 이루고 있던 결정체는 모두 으스러지고 새로운 결정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밀리미터 내지는 센티미터 단위의 얼음 결정으로 구성된 단단하고 치밀한 얼음층으로 변하게 된다.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공기 방울들은 압착되거나 빠져나가게 되므로, 얼음층은 상당량의 빛을 투과시킬 수 있다. 바닷물이 파랗게 보이듯이 두껍고 큰 얼음도 파랗게 보인다. 이를 블루-아이스(Blue-ice)라 부른다. 바닷물처럼 새파랗고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건 아니고, 밝고 화사한 하늘색에 가깝다. 이렇게 청명한 색이 페리토 모레노 빙하에 서려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 등에 대해서 예전과 달리 현대인들은 너무도 잘 안다. 또 잘 모르는 사실이 있을 경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단박에 알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 하나 호기심이 깃들 여유 조차 없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나 할까. 




세상을 깨닫는 순간부터 바보가 된다


사람들은 세상을 깨닫는 순간부터 세상만사가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다. 감동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어른이 된다는 건 무말랭이처럼 수분을 다 잃은 거나 다름없다. 무 본래의 아삭하고 상큼한 맛과 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린아이들은 어른들과 매우 다른 재밌는 세상을 살고 있다. 아이들은 동화 속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한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엄마의 속임수(?)에 편승하여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 분석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개체들은 먹이 피라미드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개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유년기 혹은 아동기를 돌아봐도 그랬다. 




그런데 머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같은 현상은 최초의 눈덩이가 빙하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뭇 달라지게 된다. 누구인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소설을 쓰지 말고 사실을 말하라"라고 말한다. 조금 뻥 튀겨서 말하면 이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세상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세상과 싸워야(?)하는 고된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떠난 배낭여행은 우리를 아이들처럼 신나게 만들었다. 또 엘 깔라파떼에서 만나 함께 이동한 스페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유람선을 타고 빙하 곁으로 떠난 관광객들까지 전부.. 아이들처럼 신나는 모습이었다. 




빙하가 살아 움직이는 현장 포착



위 자료사진을 잘 살펴보면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유람선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여서 보다 뚜렷한 모습을 잡기 어려웠다. 거대한 조각의 빙하가 호수 위로 곤두박질 칠 때 생긴 물보라와 파문 그리고 뜯겨져(?) 나간 빙하의 표면이 한 없이 투명한 하늘색을 닮은 듯 하다.



이들이 조금 전에 언급된 빙하의 형성 과정 등에 대해 모를 리 없다. 우리를 포함한 이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본 빙하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레게 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빙하 곁으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탄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서너 살 혹은 네댓 살 아이가 함박눈을 처음 만난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우아..! 와..!!"





빙하의 속살은 한 없이 투명한 블루


단말마의 비명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새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대해 나름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새 아이들처럼 돌변한 가운데 그들은 지구별이 간직한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것일까.. 빙하를 코 앞에서 바라보는 순간부터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만다. 




이 같은 현상은 빙하가 생성되는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작은 눈 알갱이가 한 군데 모여 압착되고 얼음덩어리로 변하는 과정처럼 세상에서 쌓은 얄팍한 지식들이 한순간에 뭉개지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빙하의 마력이 돌처럼 굳어진 머리와 가슴을 헤집고 지구별의 향기를 마구마구 쏟아붓는 것이다. 


사진첩을 열었을 뿐인데 당시에 느꼈던 황홀한 감정들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것. 나는 그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빙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산더미처럼 높은 빙하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호수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빙하의 한 꺼풀이 무너져 내리자 속살은 더없이 푸르렀다. 밝고 화사한 빛깔의 푸른색은 하늘빛을 닮아 마치 거대한 보석을 보는 듯 장관을 이룬 것이다. 유람선이 빙하 곁으로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매일 2미터 정도씩 매우 느리게 진행을 하며, 빙하에 새긴 지구별의 추억을 호수 위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바쁘게 사는 동안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빙하는 느리게 느리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관련 브런치 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던 빙하의 나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Ghiacciaio Perito Moreno ARGENTI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에 만나는 뜨거운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