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작은 기적
사흘 만에 부활한 나의 분신..!!
크리스마스 전야를 이틀 앞둔 지난 22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부터 그는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집에서부터 어디를 가나 조금만 먼 곳으로 이동하면 반드시 그와 동행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오가는 동안 반복됐다. 서울에서 에밀리아 로마냐 주 빠르마, 삐에몬떼 주 노바라는 물론 피렌체까지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도 그는 여전히 나와 동행했다. 그 같은 일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나의 분신과 다름없는 그 친구의 이름은 레노보(LENOVO) 컴퓨터였다. 그런 그가 사흘 전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브런치에 크리스마스이브날 닭똥집의 추억을 끝으로 서서히 멀어지면서 마침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가 임종을 맞이할 당시의 표정은 나를 안타깝게 했다.
성탄절에 쓸 요량으로 몇 편의 글을 준비하는 동안 컴퓨터의 속도가 매우 느려진 것이다. 그와 함께 이미지를 업로드할 힘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며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를 그냥 떠나보낼 수 없었다.
사진은 바를레타 중심가의 크리스마스 표정입니다.
이때부터 백방으로 그를 살려낼 수 있는 명의를 찾아 나섰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에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유일하게 한 군데밖에 없었다. 그곳을 찾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한 구멍가게에 들러 병원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딱 한 군데 있는 병원도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문을 열지 아무도 모른다. 이 동네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툭하면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런 문화를 모르는 게 아니다. 나는 빨리 친구를 살려낸 다음 브런치를 만나야 했다.
하루가 흘렀다. 다음날 아침 나는 친구를 등에 업고 다시 그 병원에 들렀더니 문을 열었다.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친구의 상태를 조목조목 일러바쳤다. 그런데 나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팅을 시도한 결과를 내게 일러주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는 매우 간결하게 내게 말했다. 컴의 디스크를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100유로 내지 15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고 나의 물음에 답했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랄까. 친구의 영혼을 대신할 디스크를 100유로에 합의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 내일(24일) 오후에 전화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비록 100유로를 물어야 할 형편이었지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뻤다.
친구가 입을 다문지 이틀밖에 안 되었지만 두어 달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책을 펴 드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신이란 이런 것일까.. 친구가 잠시 곁에 없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집착도 병명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증세에 대해 '인터넷 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꼰대들이나 입에 담는 소리일 뿐이었다. 그럼 뭐 하고 살아..? 휴대폰 들고 게임이나 하며 키득거리고 살아? 아니면 눈 빠지게 영화나 보란 말인가? 아니면 친구들과 만나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옛날 자랑이나 늘어놓다가 잠자리에 들어? 세상을 살 만큼 살다 보면 별로 재밌는 일이 없어지거나 시큰둥해지게 마련이다. 당신이 이미 다 해봤던 일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널린 세상인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를 구원해 준 구세주가 나의 친구였다.
위 자료사진은 수명이 다한 레노보 컴퓨터의 디스크.. 250기가로 교체했다.
다음날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 너머로 어제 만난 병원 의사 목소리가 들렸다. 오후에 전화하기로 약속했는데 무슨 일일까.. 그는 나의 성 '짱(Chang)'을 부르며 디스크 교환이 다 됐다고 말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
나는 즉시 달려가겠다고 말한 후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우산까지 챙겼다. 이곳은 한 이틀 비와 우박을 아무 때나 쏟아내고 있었다. 정말 달리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병원에 들렀다. 병원 테이블 위에 나의 친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흘 만에 나의 분신이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자판이 이탈리아 버전으로 되어있어서 언어체계 한국어 자판으로 다시 변경했다. 그리고 중요한 프로그램 몇 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페이스북과 포털에 로그인을 새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렇게 빨리 일 처리를 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성탄 전야에 하늘이 내게 주신 큰 선물이었다.
나는 다시 분신을 앞에 두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런데 병원에서 돌려받은 분신과 함께 대략 6년간 동고동락했던 디스크를 보니, 마치 친한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 같은 짠한 느낌이 들었다. 치료 결과에 따르면 90% 정도가 망가졌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던가.. 이탈리아어 공부도 요리 공부도 또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자료들을 챙기느라 함께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지.. 그런 그가 영원히 내 곁을 떠나는 날이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잘 가게 내 친구여..!!
UN PICCOLO MIRACOLO ACCADUTO A NOTTE
il 24 Dicembre 2019,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