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어느 다리 밑에서 건져올린 엄마의 모습
엄마는 여자가 아니라 또 다른 성(性)을 지닌 위대한 존재였지..!
혹시나(국경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 하고 산타 암부루지오 재래시장(Mercato di Sant’Ambrogio)에 들렀지만, 결국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앙시장(Mercato Centrale Firenze)에서 먼저 구입한 쇠고기와 적포도주를 이용한 조림(Manzo al vino rosso con mandorle e olive)을 만들었다.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아내는 흡족해했다.
아내가 지켜본 이탈리아 요리 리체타(Ricetta_요리방법의 이탈리아어 용어)는 매우 간결했지만 특별해 보인 것. 요리 방법만 살짝 달리했을 뿐인데 비주얼은 너무 고급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조림이 완성된 후 아내는 적포도주 3병을 더 사 오라며 보챘다. 만약 한국에서 이 같은 요리를 만들었다면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겠지만, 이탈리아 현지의 식재료들은 마치 공짜처럼 여겨질 정도랄까.
예건데 이날 조림에 든 비용을 서울의 C 대형마트 대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0만 원 정도가 소요될 수 있었지만(쇠고기 2kg, 2016년 산 적포도주 한 병), 우리가 지불한 건 27유로가 고작이었다.(믿기시는가..?!) 물론 쇠고기 부위와 포도주 산지 등을 감안한 것이다.
이 리체타는 이탈리아 요리 유학 중에 키안티(Chianti Toscana)의 한 리스또란떼에서 만나게 된 오너 셰프가 일러준 토스카나 지방의 전통 요리 방법 중 하나였다. 주지하다시피 키안티는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조금 더 부풀려 표현하면 물 보다 포도주를 더 많이 소비할 정도라 할까. 어느 날 만찬에 접시 가득 내놓은 이 요리의 첫 느낌은 어떤 식재료로 만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분명 쇠고기 덩어리로 만들었는데 빛깔이 새까만 것. 조명이 약간 어둑한 리스또란떼 내에서 처음 본 녀석의 비주얼은 엉망이었지만 나중엔 엄지가 절로 척!!.. (그렇다면 맛은 어땠을까..) 입안에서 도는 풍미는 담백하며 쇠고기 맛이 은은하게 풍겨졌다. 그리고 와인이 빚어낸 독특한 자연의 향기랄까. 우리가 먹던 쇠고기 맛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이른바 마블링(Marbled meat_근육 내 지방도)이 잘 된 고기라야 최고로 치지만, 이 요리는 고기 부위에 지방이 적어야 하는 게 기본 조건(Spezzatino di manzo non troppo magro)이었다. 거기에 물 대신 질 좋은 와인과 향신채(Pianta aromatica)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조려내는 것이다. 조리 시간이 대략 2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쇠고기 덩어리는 와인을 가슴속(?) 깊이 품어 새까맣게 변하게 된다.(요리를 잘하시는 분들은 금방 따라잡을 것)
쇠고기로 만든 적포도주 조림이 완성된 후 나는 습관처럼 다니던 아르노 강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 오가며 본 그곳은 4월이 옷을 훌러덩 벗고 뽀얀 속살을 드러낸 곳. 햇살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오후 햇살에 졸고 자빠진 한가한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잊고 살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피렌체의 상징과 다름없는 일 뽄떼 베끼오(il Ponte Vecchio)로부터 서쪽으로 세 번째 위치한, 일 뽄떼 알라 아라이야(il Ponte alla Arraia) 다리 밑에서 고개를 내민 한 무리의 꽃들 때문이었다. 그 꽃들은 우기 때 떠내려온 나뭇가지 무리 위에서 소답스러운 꽃들을 내놓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어머니의 힘들었던 삶을 떠올렸던 것. 돌이켜 보면 어머니께선 힘이 드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여자들의 삶이란 부초(浮草) 같아서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거란다."
FIRENZE_어떤 삶 DOPO LA PIOGGIA_IL PONTE ALLA CARRAIA, 25 APRILE 2019
어머니께선 내가 전혀 묻지도 않았던 말씀을 들려주셨다. 몇 차례나 되었을까.. (나중에.. 아주 나중에..ㅜ) 철이 든 다음에야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챘다. 그 즈음 당신께선 몹시도 힘들어하셨다는 것.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칠남매를 어떻게 키웠을까. 어머니께선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는 당신의 삶을 부초로 비교하며 자조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난 다리 밑 샛노랗게 꽃잎을 내놓은 이름 모를 꽃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 어머니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한편 내심 울컥해지는 것.
나는 늘 내 맘 속에 칼처럼 품고 다니는 게 있다.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취지의 전혀 불필요한 보안장치가 아니라, 당신께서 남겨주신 소중한 삶을 최선을 다해 지켜나가는 것.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회초리 같은 당신의 삶을 통해서 나의 존귀함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저 남자와 성이 다른 여자가 아니라 또 다른 성(性)을 지닌 위대한 존재였다.
이틀 전(25일), 아내의 손을 잠시 쉬게 하고 이탈리아 요리의 한 리체타를 선보였지만, 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아내의 내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아내는 부엌 혹은 주방을 여전히 당신만의 공간으로 여기며 지키고 싶어한다. 요리가 끝나자 마자 이렇게 말했다.
"불알 떨어져..!"
IL PONTE ALLA CARRAIA
25 APRILE 2019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