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잘 안 가는 여행지_5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
지난해 여름이었다. 아내와 나는 내 조국 대한민국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그 프로젝트는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았지만 많이도 달랐다. 한국을 떠나 이탈리아에 둥지를 트는 일. 한시적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 될지도 모를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꽤 오랫동안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는 한남동에 위치한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을 여러 번 들락거린 후, 마침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게 됐다. 비자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기 위해 살 집을 임대하거나 구매해야 하는 것. 대사관의 요구가 떨어지기 무섭게 보따리를 챙기고 피렌체로 날아갔다. 날아갔었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 중에 왜 하필이면 피렌체를 택했을까.
아내는 꽤 오래전부터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유화를 그렸지만 싫증을 느꼈던지 언제부터인가 수채화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고 또 5년 10년이 지나는 동안 아내는 여전히 당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다. 정말 잘 그려내고 싶었지만 번번이 성에 차지 않는 것. 그때마다 절망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생각해 봐도 소질이 없는 것 같아..ㅜ"
아내는 정말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없었던 것일까. 집안 가득 쌓아둔 아내의 작품들은 어떤 화가들보다 그 어떤 작품들보다 내게 더 나아 보였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나 작품에 몰두하는 모습 등을 곁에서 지켜보면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이는 것. 그런 한편 아내의 화첩과 르네상스 가이드북에는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 아내는 그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그곳에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필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찌오, 도나텔로, 조르지오 바사리, 산드로 보첼리, 지오또, 필립보 브루넬레스키, 마사쵸, 띠찌아노 베첼리오, 베아토 안젤리코, 로렌쪼 기베르티, 브라만떼, 까라바쬬 등등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아내의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우리가 피렌체에 가면, 피렌체로 떠나게 되면, 피렌체에서 살게 되면, 우피치 미술관을 비롯한 빨라쪼 피티 미술관 가득 채워둔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만나 포식을 할 요량이었는지, 여름 내내 비자 발급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탈리아 대사관이 요구하는 요건도 까다로웠지만, 무엇보다 임대할 집을 도무지 찾기 어려웠던 것.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 이탈리아는 바캉스 시즌을 맞이하여 어디론가 모두 떠나 피렌체에는 관광객들만 북적이는 것. 설령 빈 집이 있다고 해도 계약서에 서명할 당사자가 없으므로 제한된 시간 내에 셋집을 얻기란 여간 까다롭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피렌체 현지 인맥을 통해 셋집을 찾아 나서는 한편, 이탈리아 요리 유학 당시 다녀온 숨겨진(?) 피렌체의 명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았다.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 낯익은 도시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가 한눈에 잘 조망되는 피에솔레(Fiesole)였다. 피렌체의 관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Stazione di Firenze Santa Maria Novella) 앞에서 7번 버스를 타면 2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도착하는 매우 가까운 곳. 그런데 피렌체를 찾는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들은 물론 세계인들은, 이곳을 잘 모르거나 설령 위치 정도는 알았다고 해도 그냥 지나친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하고 반문 하나마나 너무 짧은 일정(어떤 여행사의 패키지 일정표에 피렌체 관광에 이틀이 배정되어있었다) 때문일 것. 그러나 짬을 조금만 낸다면, 그야말로 코딱지만큼 짬을 낸다면, 평생 가슴속에서 지울 수 없는 르네상스의 고도를 가슴에 담아올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보고 계신 풍경들이 바로 그것.) 혹자들의 표현처럼 '아무나 갈 수 없어도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여행지'라 할지라도, 두 번 가면 감흥이 떨어질 텐데.. 만에 하나 피렌체를 방문하게 되면 무조건 내질러도 좋은 곳이 피에솔레였다. 강추한다.
피렌체가 손에 잡힐 듯 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그냥 길 옆에 의자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다)에 서면 주변에서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네댓 번 방문하는 동안 우리가 만났던 관광객들은 통틀어 수 십 명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아내는 이곳에 설 때마다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 시원스러운 표정으로 피렌체 시내를 굽어봤다.
"와.. 너무 좋다아..!!"
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아내의 시선이 멈춘 그곳에는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활동했거나 거쳐갔던 곳. 예건데 미켈란젤로는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저녁 늦게 잠들 때까지 하얀 대리석을 앞에 두고 쉼 없이 망치질과 끌질을 했다. 또 당신의 가슴속에 잉태한 환상을 작품으로 남겼다. 어디 미켈란젤로뿐이던가. 아내의 수첩에 적힌 예술가들 다수는 빨간 기와가 얹힌 지붕 아래서 잠시 눈을 붙인 후 당신의 혼을 불살랐던 것이다.
어쩌면 아내는 그 위대한 작품들과 당신의 작품을 비교해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국내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과 당신을 비교하며 초라해진 당신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피에솔레의 전망대에 서는 순간, 더 초라해질 것도 부러울 것도 없어진다. 왜 그럴까.. 왜? 왜!..
그곳에 서면, 르네상스를 일군 예술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빠져들었었다. 빠져들 것..
La città del Rinascimento
Visto da Fiesole verso a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Firenze_피에솔레에서 바라본 르네상스의 도시 La città del Rinascime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