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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3. 2019

밀착_피렌체의 화려한 부활절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의 실체

어떻게 기도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이틀 전(21일 현지시간),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선 성대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최대의 축일 부활절 축제가 피렌체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를 중심으로 펼쳐진 것. 행사는 빨라쪼 베끼오(Palazzo Vecchio)가 위치한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세의 전통복장을 갖춘 행렬은 북소리에 발맞추어 천천히 시내 중심을 가로질러 두오모로 이동했는데, 피렌체 시내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피렌체 시민은 물론 이탈리아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과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룬 것.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행사장 주변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보호대(바리케이드)와 검색대를 설치해 놓고 근처를 출입하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한 후 출입을 시켰다. 따라서 행사 시작 전까지 행렬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현장을 취재하려면 주최 측이 배포한 비표를 가져야 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이 행사 현장을 취재하려면 매우 단편적인 장면밖에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내가 그랬다. 


그나마 현장에 접근한다 해도 행사 현장이 바로 보이는 이른바 명당을 선점한 시민들 때문에 촬영을 아예 불가능하거나 별로 쓸모없는 장면들 밖에 없었을 것. 묘수를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하면, 1년에 단 한차례 밖에 볼 수 없거나 평생을 통틀어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면을 포착할 수 있을지를 놓고 잠시 고민한 것.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기다랗게 늘어선 줄을 지나 검색대 앞에 다다라 시침 뚝 떼고 한 경찰관에게 "여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요?"라며 물었다. 그런데 (검색대 옆 작은 공간을 가리키며) "그냥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돼요"라고 말했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행사는 시작되었고 곧 시내를 가로질러 전통복장 행렬이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서 들렸다. 아마도 행렬은 공화국 광장(Piazza della Repubbrica) 가까이 도착한 게 틀림없었다. 서둘러 두오모 앞을 가 봤지만 그곳에선 시민들 혹은 관광객들의 뒤통수밖에 찍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묘수를 찾는 한편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근처로 다시 되돌아와 상황을 살폈다. 



그 순간이었다. 시민 서너 명이 통제구역 안으로 이동하는 게 목격됐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곧바로 그들 뒤를 쫓아갔다. 놀랍게도 내가 합류한 행렬은 주최 측이 초대한 시민들이었다. 나는 행사장 중심까지 진출하며 그들과 한 무리를 이루며 두오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던 것이다. 것이었었다. 행운은 여기까지만 가능했을까. 


행사장의 한 요원(경찰관)이, 무리 속의 나를 빤히 보면서 "혹시 오늘 행사에 초청된 시민입니까"하고 물었다. 생김새나 차림새가 다를 건 뻔했다. 참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 순간 나의 변명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를 바라보며 "그냥.. 요"라고 말한 것. 나는 즉각 행사장 밖으로 쫓겨났다.(ㅜㅜ) 그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경찰관을 불러 "이 분을 바깥으로 내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졸지에 천하의 명당을 반납(?)하고 새로운 명당을 찾아 나서야 하는 형편에 직면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보호대 바로 곁 혹은 주변에는 발 디딜 틈 조차 마땅치 않아서 내쫓김 조차 쉽지 않은 것. 두오모 앞의 행사장 출입구는 네 군데였는데 인파 속을 헤집고 다시 명당을 찾아 나섰다. 


그동안 피렌체 시내를  뻔질나게 다녀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으므로, 다시 한번 더 명당을 찾아 얼쩡거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 위치에서 거의 이동을 하지 않고, 행사장에 등장하는 새로운 풍경만 나타나면 시선이 한쪽으로 몰려 휴대폰의 셔터를 눌러댓다. 그동안 처음에 통제했던 한 장소가 일반에 공개됐다. 그곳은 두오모를 찾는 시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장의자였는데 쾌재를 불렀다. 





의자 위에는 벌써 네 사람이 올라서 있었다. 대략 두 사람이 더 올라설 수 있는 빈자리 아니 명당이 눈에 띈 것. 그때부터 일찌감치 두오모 앞에 자리 잡은 브린델로네(Brindellone)의 향후 역할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브린델로네는 꽃단장을 한 잘 생긴 백색 황소 네 마리에 의해서 두오모 앞으로 이동됐다. 따라서 시민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돼 있었던 것이며,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브린델로네라는 낯설고 수상한(?) 물체의 역할이었다. 


관련 자료(필자 주)에 따르면 브린델로네는 1662년에 처음 사용된 이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으므로, 대략 350여 년 전부터 부활절 행사에 사용되기 시작된 것.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행사에 웬 황소(자료사진 참조)가 등장하는가 싶지만, 이 황소가 이끄는 전차는 나무로 만들어지고 가죽으로 덧씌운 것으로 토스카나 주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전쟁이 잦았던 반도의 땅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까. 황소가 이끄는 브린델로네 속에는 용맹한 전사(거인이라 불렀다)가 숨어있다가 침략한 적의 공격을 피해 무찌를 수 있었던 것. 또 덩치 크고 힘센 황소는 기름진 토스카나 주를 경작하는 농사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토스카나인들을 잘 살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고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 


피렌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먹는 비스테까(bistecca alla Fiorentna)를 파는 음식점에서 브린델로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토스카나인들에게 브린델로네는 황소와 함께 한 해 농사의 풍년을 좌지우지하는 상징적인 의미였던 것으로, 잘 지은 농사를 침탈자들로부터 지켜내고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행운의  증표라고나 할까. 





인류문화사를 참조해 보면 토속 신앙이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면, 세상의 종교는 전파 목적 등에 따라 원주민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부활절 행사에 브린델로네와 황소가 등장한 건 눈여겨 볼만하다. 만에 하나 그러하지 못할 경우 이념의 충돌로 인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로 얼룩질 것. 종교는 정치와 더불어 목숨을 걸 만큼 인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온 게 사실이다. 


예건데 우리가 잘 아는 중세의 십자군 전쟁 배후에 로마의 가톨릭 교회가 있었다. 이는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말살시키려는 도구 혹은 정치적 이득을 노려 남의 나라를 함부로 침탈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곤 했다. 또 라틴 아메리카의 침탈자들이 보여준 끔찍한 만행을 참조하면, 인류에게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런데..



불과 이틀 전, 피렌체 현지에서 부활절 행사를 취재하면서 종교가 인류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해 생각을 긍정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게 됐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꼬드긴(?) 것들 중에는, 양날의 검처럼 사용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것. 그건 실체가 모호한 신의 선택이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인간들만의 노력이랄까.  


이런 기회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다가와 있었으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건데 기도하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아울러 비종교인 혹은 무신론자도 가능할까.. 필자는 특정 종교의 교주도 아니며 신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꽤 오래 전의 신앙생활을 통해 얻게 된 나름의 깨달음을 부활절 행사에 접목해 보는 것.





브린델로네가 내뿜는 화약 연기와 화려한 불꽃은 물론 폭죽의 연속적이고 자극적인 폭발음에 매료된 시민들이 무아지경에 빠져있다는 것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 밝았으며 연신 탄성을 쏟아냈다. 어쩌면 이들은 부활절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세상 모든 집을 다 짊어진 것 같은 고통과 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이탈리아 혹은 이탈리아인들만의 일인가.


참 묘한 타이밍이었다. 브린넬로네의 황홀경 속에서 설악산에 위치한 봉정암이 오버랩됐다. 그곳에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사람들은 봉정암을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아마도 삶에 지친 사람들과 내일모레 고3이 되는 자녀를 둔 부모 혹은 사업에 실패한 사람, 건강이 악화되어 죽을 고비에 이른 사람 등등.. 


특정 종교의 기도를 통해서 삶의 반전을 노리는 사람들은 일화를 가슴에 꼭 꼭 챙겨두시기 바란다. 그리고 어느 날 기적 같은 응답이 일어나면, 시쳇말로 기도발을 받게 되면, 브런치에 댓글 한 만 내려놓으시면 고맙겠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기도의 실체는 이랬다.





봉정암을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산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자주 다닌 곳은 설악산이다. 설악산은 사시사철 언제 가 봐도 계절마다 서로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참 아름다운 산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산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라 느끼며 다닌 산이다. 그래서 이리 뜯어보고 저리 살펴보느라 내설악 외설악을 번갈아 가며 발품을 안 판 곳이 없을 정도로 자주 다닌 곳. 따라서 내설악에 위치한 봉정암은 여러 번 다녀오게 됐다. 


그런데 봉정암으로 이어지는 백담사 코스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늘 떠올리게 되는 전설이 있다. 봉정암을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차마 믿기지 않는 전설. 그게 사실일까 하고 반문해 보는 것. 그런데 어느 날 끝청봉에서 봉정암을 내려다보며 그 전설의 뜻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봉정암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백담사에서부터 봉정암 바로 아래까지 길게 이어지는 가야동 계곡은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곳이다. 그러나 봉정암이 가까워지면서부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이른바 '깔딱 고개'에 들어서면 거의 선 자세로 기어올라야 하는 코스가 나오는 것. 전문 산악인이라 할지라도 힘겨운 코스인데 봉정암에 소원을 빌러 오신 불자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봉정암으로 떠나기 전 머릿속 가득하던 소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싹 지워지는 한편, 당신의 몸뚱이 조차 지탱하기 버거운 형편에 다다르면 소원은 딱 하나만 남게 된다. 우리나라 잘 지켜 주세요.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우리 아들 딸 수능에 착 달라붙게 해 주세요. 승진시켜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혹은 그 나쁜 인간 벼락 맞게 해 주세요(ㅋ).. 등등 


봉정암을 찾아 떠날 때 소원들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다 지워지고 그 빈자리에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 몸뚱이 걱정만 남게 되는 것. 당장 되돌아 갈 일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다. 현대에는 등산용품이 잘 만들어져 산행이 그나마 쉬어졌다지만, 전설이 만들어질 오래전 같으면 두 번 세 번 다시 이 암자를 찾긴 쉽지 않을 것. 바둑의 격언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이랄까. 



격언의 뜻은 내가 먼저 안정되고 난 다음 상대를 공격하라는 말이다. 내 몸도 가누지 못하는 형편에 남을 걱정한다는 건 주제넘은 일 아닌가. 여러분을 위한 기도보다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상황이 닥친 것이다. 그런 한편, 고행의 순간에 세상에서 나를 힘들게 하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아지경(無我之境, 忘我之境) 혹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 봉정암의 전설이 완성되는 순간이랄까. 소원 성취의 배경에는 자아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경지에 다다르는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아 피식 웃게 된 것이다. 





두오모 앞을 차지한 브린델로네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추기경은 미사가 끝난 직후 두오모 앞에 운집한 시민들을 향해 성수 세례를 하고 다시 두오모로 향했다. 그리고 합창단의 노랫소리와 조또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광장 가득히 울려 퍼졌다. 마침내 브린델로네가 불을 뿜기 시작했는데 점화 방법이 특별했다. 성전 내부에서 바깥으로 날아온 지팡이가 브린넬로네 옆구리(?)에 박히면서 부활절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것. 


사람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제히 두 손을 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었는데 브린델로네가 내뿜는 불꽃 전부를 기록하며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 10분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봉정암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처럼 소원을 이룬 것인지. 종교 혹은 신앙의 역할이 특별해 보인 날이자 행사였다. 낯선 땅에서 출발한 종교가 또 다른 곳에서 둥지를 틀고 그들과 함께 몸을 이루고 있는 것. 


또 하나, 이날 행사를 통해 목격한 특별한 장면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쥔 휴대폰의 역할이었다. 시민들은 마치 당신의 기도를 휴대폰에 실어 세상에 날려 보내는 것 같았다. 기도는 신격화된 대상과의 영적 호흡 내지 교감이라 생각하지만 현대인의 사고는 다른지.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앞에는 브린델로네와 휴대폰 혹은 카메라와 종교가 한데 어우러지며 무아지경에 빠뜨리는 것. 브린델로네를 만나면 액운은 달아나고 행운만 남을까..



밀착_피렌체의 부활절 축제 현장

-SCOPPIO DEL CARRO PASQUA 2019_CATTEDRALE DI SANTA MARIA NOVELLA, FIRENZE

본문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이어진 사진과 영상(맨 아래)은 순서대로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담았다.





















 SCOPPIO DEL CARRO PASQUA 2019_CATTEDRALE DI SANTA MARIA NOVELLA, FIRENZE




SCOPPIO DEL CARRO PASQUA 2019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FIRENZ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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